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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마이클 조던의 이유 있는 골프 열정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한국] 불세출의 ‘농구황제’마이클 조던의 골프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17일로 만 55세가 되는 그가 내년 개장 예정으로 플로리다 주 웨스트팜비치 북쪽 호브 사운드에 골프장을 건설 중이라는 뉴스는 그가 예사로운 골프광이 아님을 보여준다.

2003년 은퇴하기 전까지 미국프로농구(NBA) 15 시즌 동안 최우수선수(MVP) 5회, NBA 파이널 MVP 6회, 득점왕 10회라는 불멸의 전설을 남긴 조던은 스포츠전문가들로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그가 NBA는 물론 지구촌 농구계와 스포츠계 전체에 미친 영향과 만능 스포츠인으로서의 면면을 보면 이런 극찬도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균형 잡힌 골격, 이상적으로 발달한 근육, 그리스 조각상을 능가하는 잘 생긴 외모에 공중에서 유영을 하듯 마음대로 자신의 육체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을 보면 그는 ‘100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선수’가 아니라 지구촌의 유일무이한 인간개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덩크슛을 할 때 보여주는 공중을 걷는 듯한 자세에서 유래된 '에어워크(Airwalk)'가 농구팬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이 이름을 단 농구화 등 각종 스포츠용품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온전히 마이클 조던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를 놓고 다투는 조던 스피스의 이름도 그에게서 따올 정도로 그는 만인의 숭배 대상이었다.
  
골프와 얽힌 마이클 조던의 일화들을 보면 만약 그가 농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타이거 우즈를 능가하는 골프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 농구부 선수로 활약할 때 그는 골프의 매력을 간파하고 마음을 빼앗겼으나 이미 촉망받는 선수로 지목되어 농구선수로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조던과 골프의 조우는 극히 우연히 이뤄졌지만 그 파장은 강렬하고도 길었다.

대학 3학년이던 1984년 3월 어느 날, 농구팀 숙소에서 같은 대학의 골프팀 선수인 데이비스 러브3세를 만났다. 농구팀 선수로 룸 메이트인 버즈 피터슨이 심리학 수업을 듣다가 새로 사귄 친구라며 데이비스 러브3세를 방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피터슨은 당시 2학년이던 러브의 제안으로 골프장에 처음 가볼 참이었다.
조던은 룸메이트에게 “나도 가면 안 돼?”라고 물었다. 피터슨은 승낙했고 조던은 친구들을 따라 학교 골프장으로 갔다.

데이비스 러브3세의 술회에 따르면 조던은 그날 친구들을 쫓아다니다가 가끔 공을 치고 싶어 했고 이따금 퍼트나 드라이브를 잡아봤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보고 러브는 조던을 위해 중고 골프채와 공을 모아 선물했다.
조던의 첫 라운드는 그해 봄에 이뤄졌다. 러브와 같은 대학의 또 다른 농구스타 알 우드가 함께 했다. 러브는 조던이 17 홀에서 보기 이상을 기록했고 단 한 개의 홀에서 파를 쳤다고 회고했다.

후에 조던은 “첫 라운드를 하고부터 골프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농구스타로 인기가 높은 때인데다 198㎝인 거구에 맞는 골프채를 마련하기 어려워 본격적인 연습은 할 수 없었으나 그의 골프사랑은 불이 붙었다. 경기가 없을 땐 수시로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각종 골프대회에도 참가해 ‘마이클 조던이 농구를 그만두고 골프선수를 꿈꾼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자신의 애마인 페라리 번호판에 ‘RESERVED GOLF NUT’(예약된 골프광’이라고 쓴 번호판 붙일 정도였다.

1988년 NBA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 MVP로 선정되고도 정작 시상식 날 그는 홈구장(시카고 불스)에서 1400km나 떨어진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골프클럽에서 라운드를 했다. 이듬해에도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르자마자 시카고에서 밤새 차를 몰아 파인허스트로 달려가 이른 아침부터 라운드를 했다.
조던은 1989년 미국 골프광협회(Golf Nut Society)에 의해 ‘올해의 골프광’으로 선정될 정도이니 그의 골프에 대한 광적인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미국 드림팀 선수로 출전했던 조던은 36홀 라운드를 마친 뒤 농구 경기장으로 달려가는가 하면 사기꾼 골퍼와 열흘간 내기 골프를 쳐 125만 달러를 잃기도 했다.

농구선수로서 현역에서 물러난 뒤 그는 플로리다주 베어스클럽에서 어니 엘스, 키건 브래들리, 루크 도널드 등 PGA투어 선수들과는 물론 저명인사들과 매일이다시피 골프를 즐겼다. 1년에 적게는 100라운드 이상, 많게는 380 라운드에 이른다니 왕년의 농구황제가 지구촌 최고의 골프광으로 변한 것이다.

한때 그는 핸디캡 1.9까지 쳤으나 요즘은 3 정도라고 한다.
그는 “아마추어는 US오픈 코스에서 100타를 깨기 힘들 것”이라는 타이거 우즈의 말에 자극받아 US오픈 이벤트대회에 출전해 92타를 친 후 우즈에게 자랑하는가 하면 NBA 명예의 전당에 오른 척 댈리와의 내기 골프에서 지자 그를 고급 호텔에 묵게 한 뒤 다음 날 새벽 리턴 매치를 벌여 설욕하는 등 승부욕이 대단했다.
스스로 저명인사를 초청해 골프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잭 니클라우스의 홈코스인 플로리다의 베어스클럽 드라이빙 레인지에 대형 텐트를 치고 2000여명의 하객을 초청한 가운데 재혼식을 여는 등 그의 생활은 골프가 중심이었다.
  
우연히 골프와 조우한 마이클 조던이 30여년이 넘도록 골프열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남긴 어록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9000번도 넘게 슛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300번 넘게 져봤다. 26번이나 클러치 슛(clutch-shoot, 승부를 결정짓는 슛)을 실패했다. 계속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나는 실패는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기초를 소홀히 하면 바탕이 무너진다.”
“삶의 매 순간을 즐겨라. 절대 지난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라.”

수많은 실패를 딛고 농구선수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의 신념과 철학이 골프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로 하여금 골프에 매달리게 만든 것 같다. 결코 뜻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끝없이 새로운 목표가 나타나는 골프의 특성이 마이클 조던을 매혹시키는 게 아닐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18-02-17 0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