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TPC 스코츠데일 16번홀의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프로골퍼로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다가오는 다양한 벽을 넘어야 한다. 최고의 기량만 갖추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지만 내로라는 포식자들이 즐비한 프로의 세계에선 기량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물론 천재적으로 타고난 기량은 프로골퍼로 성공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긴 하다. 그러나 롱런하기 위해선 극복해야 할 벽이 너무 많다. 극복했다고 해도 다시 새로운 벽이 막아서는 게 골프다.

프로골퍼에게 기량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필요조건이다. 많은 시간과 피나는 노력을 요하지만 이 과정은 프로골퍼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승리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춘 기량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판가름 난다.
3~4일간 버텨낼 수 있는 체력, 좌절이나 흥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정신력, 주변 상황과의 지혜로운 조화능력 등이 자신이 지닌 기량을 십분 발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캐디나 동료선수, 날씨 변화와 그에 따른 코스의 변화, 갤러리, 미디어관계자 등과 슬기롭게 조화하는 능력은 다른 조건이 비슷한 상황이라면 차별화된 효과를 발휘한다.
 
프로골퍼들에게 새로운 벽이 다가섰다. 소음(Noise)이다.

그동안 골퍼들은 소음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받아 왔다. 스포츠가 다중의 관중에 둘러싸인 가운데 펼쳐짐에도 골프만은 예외의 혜택을 누려왔다. 구기종목이나 육상, 빙상, 격투기 등 대부분의 스포츠는 관중의 소음에 완전 노출되어 진행되지만 골프만은 예외였다.
골프코스의 전반적 분위기 자체가 차분하고 정숙하다. 드라이버를 날릴 때나 퍼팅 순간에는 발소리도 죽이고 눈에 거슬리는 움직임조차 금기시 된다. 경기 중 ‘Quiet’라는 정숙 팻말이 등장하는 유일한 스포츠가 골프다.

그러나 지난 2~5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TPC스콧데일 골프코스에서 열린 PGA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에서는 이런 전통을 찾을 수 없다. 골프코스 전체가 갤러리들의 토해내는 소음으로 매우 높은 데시벨의 굉음에 포위된다.

심야에 대도시 부근 산에 올라가 보면 눈 아래 펼쳐진 도심에서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굉음이 들리는데 그와 흡사했다. 갤러리들의 웅성거림은 골프코스를 지배하는 배경음악이 돼버렸고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성, 야유가 터져 휴일의 광장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선수들이 티잉 그라운드에서 드라이브샷을 날릴 때, 그린에서 퍼팅을 하는 순간 진행요원이 정숙 팻말이 들지만 잠시 허공의 연기를 저어내는 듯한 침묵이 흐를 뿐 배경음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하다. 

주최 측은 코스 절반 이상 홀 근처에 스타디움 같은 스탠드를 설치해 관중들이 구속받지 않고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즐기도록 했다. 특히 180야드짜리 파3 16번 홀은 기존의 코스 금기사항이 해제된 ‘해방구’로 명물이 되었다. 코스는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에 에워싸여 로마시대의 검투장인 ‘콜로세움’으로 불린다. 음식에 맥주 등 주류까지 판매하고 있고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도 허용되고 있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갤러리들은 선수들의 한 샷 한 샷에 대해 주저 없이 환호와 야유를 퍼붓는다. 술을 마실 수 있는 록 밴드 공연장의 모습을 떠올리면 무방할 정도다.
선수들은 이 관중에 에워싸인 홀에서 천국과 지옥을 맛본다. 잘 나가던 선수가 긴장한 나머지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가 하면 오히려 기를 받아 멋진 플레이를 펼치기도 한다.

이 고장 애리조나 주립대 출신인 필 미켈슨, 체즈 리비, 존 람 같은 선수는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아 멋진 플레이를 펼쳤다. 골프선수로서 왜소해 보이는 체즈 리비는 착실하게 점수를 벌며 선두에 나섰지만 장타를 주무기로 탄탄한 플레이를 펼치며 성큼성큼 추격한 게리 우드랜드에게 연장전 끝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피닉스오픈은 갤러리들을 소음의 구속으로 해방시킨 덕분에 지구촌 최고의 갤러리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우고 있다. 대규모 스탠드 설치와 음주 허용 등의 조치로 지난 2016년 61만8천여명의 갤러리 입장기록을 세워 명인열전 마스터스나 US오픈 등 메이저대회 갤러리 수의 2배를 넘어섰는데 이 기록은 피닉스오픈이 매년 경신하고 있다. 2017년에 65만5천여명이었는데 올해는 70여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TPC스콧데일 외에도 유사한 코스들이 없지 않다.
‘골프황제’타이거 우즈가 출전할 제네시스오픈이 열리는 캘리포니아 패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 골프리조트의 파4 10번(315야드), 더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플로리다 폰테베드라비치 TPC쏘그래스 골프코스의 파3 17번 홀, 메모리얼토너먼트가 열리는 뮤어필드빌리지 14번 파4 홀.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TPC리버 하일랜드 파4 15번 홀, 그린브라이어 클래식이 열리는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화이트설퍼 스프링스에 있는 그린브라이어리조트 올드화이트TPC의 파3 18번 홀 등이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 설치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피닉스오픈의 흥행 성공에 자극받아 앞으로 PGA투어를 치르는 많은 코스들이 갤러리들에게 맥주 캔을 들고 소리치고 노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선수들로서는 온갖 소음의 도가니 속에서 경기한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겠지만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기 위해선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경기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 대회를 경험한 선수들은 라운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귀를 막아야 한다.” “낯가죽이 두꺼워야 한다.” “철심장을 가져야 한다.”는 등 나름의 비방을 내놓지만 시장바닥이나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현장의 분위기를 즐기는 길 외에 무슨 묘방이 있을까 싶다.

일부 선수들이 미리 관중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콜로세움 코스를 지날 때 관중석을 향해 선물을 던지는 이벤트를 벌이며 광란의 분위기를 즐기듯 관중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소통하는 길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소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골프기량에 버금가는 중요요인이 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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