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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나무가 그 자리에 서있듯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한국] 산과 들을 거닐다 보면 그 많은 식물들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음에 놀라게 된다. 같은 종이라도 서있는 모습이나 가지를 뻗은 모양이 모두 다르다. 심지어 한 둥치에서 뻗어나간 줄기와 가지, 나뭇잎, 꽃잎조차 미세한 차이로 똑 같지 않음에 놀란다.
식물의 씨앗은 같은 종의 DNA를 공유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에 떨어져 싹을 틔우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독립된 개체로 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씨가 떨어진 장소, 토양의 성분, 계절변화에 따른 온도와 강수량 일조량 등의 기후조건에 따라 개체로서의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리라.

이런 눈으로 산야의 식물들의 모습을 둘러보면 ‘지금 여기’에 터를 잡아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 씨앗을 만들며 자라는 식물들이야말로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절하게 적응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식물의 세계에까지 ‘인연과보(因緣果報)’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식물의 세계가 이럴진대 인간세계의 개체 다양성은 무한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런 깨달음은 사실 골프를 통해 얻었다.
골프를 제대로 하려면 지켜야 준칙들이 수없이 많지만 스탠스를 올바로 서는 것도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연습장에서는 잘 맞아나가는데 필드에선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 것은 스탠스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연습장에선 매트가 깔려 전후좌우의 기울어짐이 없이 평평하지만 현장에선 평평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지형과 만나게 된다.
볼이 놓인 지형에 맞게 스탠스를 취하고 스윙도 여기에 맞게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골퍼들은 연습장에서 하듯 골프채를 휘두르다 미스 샷을 내고 만다.
뒤늦게 골프의 매력에 빠져 오랜 기간 골프와 씨름한 필자 역시 스탠스 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었다.
연습장과 현장의 지형이 판이하다는 사실을 숙지하고도 스탠스 서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골프코스에서 자주 대하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깨우침을 얻었다.
유심히 코스 주변의 소나무 숲을 살펴보다 한 그루도 같은 모습으로 서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잎의 모양이나 줄기의 껍질, 솔방울의 생김새만 비슷할 뿐 어느 한 그루도 같은 것이 없었다.
평지라고 해서 모두 같은 모습으로 서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세한 차이로 기둥줄기의 기울기와 방향이 다르고 잎의 밀도도 달랐다.
경사진 곳에서는 지면의 기울기에 맞춰 쓰러지지 않을 자세로 버티고 서 있었고 심지어 도저히 나무가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벼랑의 작은 틈에서도 뿌리를 내려 마치 인도의 요기처럼 서있기도 했다.

소나무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나무와 야생화, 풀들이 모두 주어진 지형에 맞게 제각기 다른 자세로 흔들리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치하는 것이라곤 모든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장소에서 도태되지 않고 가지를 뻗으며 자라기에 알맞은 모양으로 서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이후 필자는 평지나 비탈에서 선 나무의 모습에서 어떤 스탠스가 최상의 동작인지 힌트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볼이 놓인 장소가 내리막이냐 오르막이냐, 앞으로 기울었느냐 뒤로 기울었느냐 등 다양한 라이에 따른 스탠스와 몸의 유지는 골프코스에 자라는 나무들이 잘 보여주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 골프 스코어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에이지 슛(Age shoot; 나이와 같거나 그 아래의 스코어를 내는 것)까지 기록했으니 내겐 매우 귀중한 깨우침인 셈이다.

자연스럽게 산책길 등산길에서 만나는 식물은 물론 고양이나 개, 새 등을 같은 시각으로 보게 되고 필경 사람도 이런 시선으로 대하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특히 사람의 걸음걸이를 유심이 관찰했다. 직립보행(直立步行)이 오늘의 인류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이듯 사람의 걸음걸이는 개인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걷기의 역사』라는 매력적인 책을 쓴 조지프 A. 아마토는 ‘걷기는 곧 말하기’라고 단정한다. 말하기가 인간 개체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듯 걸음걸이는 자기 나름의 방언과 관용구를 지닌 언어라는 것이다.
몸매와 눈빛, 얼굴 표정, 팔 다리의 움직임, 엉덩이와 어깨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나는 걸음걸이는 그 사람의 지위와 신분, 현재의 신체적 감성적 상태는 물론 앞으로 그에게 닥칠 운명의 정보까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걸음걸이를 표현하는 의태어(擬態語)가 유난히 풍부한 것은 그만큼 걸음걸이가 인간의 개체적 특징을 구분 짓는 중요한 행동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비틀비틀. 흐느적흐느적, 비실비실, 비척비척, 휘청휘청, 휘적휘적, 기우뚱기우뚱, 건들건들, 흔들흔들, 아장아장, 어정어정, 어기적어기적, 성큼성큼, 살금살금, 타박타박, 터벅터벅, 뚜벅뚜벅, 사뿐사뿐, 살랑살랑 등은 걷는 주인공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심을 못 잡고 건들거리는 걸음. 꼿꼿한 자세로 흔들림이 없는 걸음, 자신감 넘치는 걸음, 의기소침한 걸음, 쫓기는 걸음, 생활의 무게에 짓눌린 걸음, 깃털처럼 가벼운 걸음, 쑥스러운 걸음, 당당한 걸음, 불안에 찬 걸음, 희망과 기대에 찬 걸음 등을 그대로 드러낸다.

놀라운 것은 걸음걸이 주인공의 미래가 대부분 걸음걸이가 시사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골프칼럼과 골프 소설을 쓰기 위해 수많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선수들의 걸음걸이가 선수들의 골프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소나무의 서있는 모습에서 촉발된 깨달음의 여정은 결국 임제(臨濟)선사의 ‘수처작주(隨處作主)’에까지 닿았다.
중국 당나라의 대표적 선사인 임제는 우리나라에선 ‘수처작주’의 원작자로 유명한 편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니라.)’이 한 문장인데 후세사람들이 수처작주를 애용하는 바람에 독립된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되었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가르침은 필자의 시각으로 보면 ‘나무처럼 그곳에 서라’로 들린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17-10-28 14:5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