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관악산 산자락에 자리잡은 우리 동네 골프연습장에는 60~70대가 많은 편이다. 젊은 층은 토·일요일이나 평일 아침 일찍 혹은 오후 늦게 바삐 다녀가고 노장 층은 좀 한가한 시간에 모여 연습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게 일상처럼 반복된다.
이중에는 연습 후 등산로입구 식당을 찾아 막걸리나 소맥으로 갈증을 푸는 이른바 ‘주류파(酒類派)’지인들이 꽤 된다.

어느 날 주류파들이 선점한 타석 부근에 골프채를 내려놓는데 늘 내 앞에 자리잡는 L씨가 인사를 하는데 얼굴이 좀 상기된 듯했다.
며칠 전 라운드 약속이 잡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살아났다.
“후배들과 라운드 하신다고 그랬는데 잘 하셨죠?”
L씨는 갓 피어난 함박꽃 같은 미소를 머금고 그날의 전율과 감동을 털어놓았다. 마치 봇물 터지듯 그는 그날의 감동을 쏟아 냈다. 

60대 중반으로, 여러 회사의 중역을 맡는가 하면 종업원 수천 명의 해외공장을 책임지기도 했던 그는 굉장한 미남이다. 은퇴 후 일본어를 익혀 일본을 여행하면 나이를 불문하고 일본 여성들이 그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경험을 한다는 그의 말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알랭 들롱, 조지 차키리스를 연상케 하는 마스크를 지닌 그는 나이와 달리 주름도 별로 없다. 머리만 약간 희끗할 뿐인데 희끗한 머리가 그를 더욱 품위 있게 했다. 부드러운 눈빛은 상대를 무너지게 하는 마력이 있다.

“골프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30년 이상 골프를 쳐왔지만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생애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 그는 후배들과의 라운드 약속을 털어놓으며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나가보겠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가 말한 후배들이란 20여 년 전 2년 정도 같은 회사에서 일한 동료들로 나이는 그보다 5살에서 10살 정도 적어 후배들은 그를 ‘큰형님’으로 불렀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가 부도처리 되는 바람에 L씨와 이들 후배들은 ‘난파선의 동료’로 지금까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가 후배들과의 라운드를 꺼리는 것은 후배들은 싱글이거나 80대 중초반을 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자신은 여전히 백돌이를 벗어나지 못한데다 1년 전 오른손 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당해 골프와 거의 결별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손 부상을 당한 뒤 한동안 골프채를 잡지 않다가 부상 핑계로 운동을 소홀히 하다간 몸이 금방 녹슬겠다는 생각에 골프연습장을 찾아 스윙을 통한 재활을 시작했다.

간신히 스윙을 하는 정도에서 서서히 스윙의 크기를 늘려나갔다. 볼도 힘들여 가격하지 않고 채의 무게로 떨어뜨리는 식의 연습을 계속했다. 볼을 가격하는 습관을 버리려다 보니 자연히 교과서적인 스윙자세도 터득하게 되었다. 물론 일주일에 한두 번 병원을 찾아 물리치료도 받았다.
이런 식의 인고의 세월을 견딘 덕에 내가 보기에도 그는 예전보다 더 좋은 스윙 자세를 터득했고 파워도 키우는데 성공해 비거리도 늘어났다. 특히 스윙 자세는 미국 PGA투어 로고와 흡사할 정도로 완벽했다.

이런 그에게 난파선의 후배들이 1년 만에 라운드 요청을 해온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사양하다 후배들의 간곡한 요청에 마지못해 승낙했다. 늘 그래왔듯 후배들을 이기거나 혼내줄 일은 없겠지만 성의껏 경기를 하는 것으로 후배들과의 골프 라운드를 끝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라운드 전날 연습장 지인들에게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하고 헤어졌다.

다음에 전하는 그의 라운드 일화는 순전히 그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여시아문(如是我聞)’이다.

망신만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첫 티샷을 했는데 눈을 의심할 정도로 볼은 멀리 날아 페어웨이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
“큰형님, 손 다치신 것 맞아요?”
“재활치료 한답시고 골프연습만 하셨습니까?”
후배들이 한 마디씩 하고 티샷을 날렸다. 어렵쇼! 하나는 러프로, 하나는 떼구르르, 또 하나는 하늘 높이 솟구쳤다.

첫 홀 파온에 성공해 여유 있게 파 세이브를 했다. 첫 홀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몇 홀 지나 후배들도 제 페이스를 찾는 듯했으나 이미 L씨의 달라진 모습에 혼을 빼앗긴 뒤라 라운드 내내 후배들은 맥을 못추었다.
특히 정통적인 스윙, 힘이 들어가지 않은 부드러운 스윙, 그리고 축을 무너뜨리지 않고 취하는 완벽한 피니시 자세에 후배들은 혀를 내둘렀다.
“아니 큰형님은 나이를 거꾸로 먹습니까? 남들은 나이 들면 몸을 좌우로 흔들고 벽도 무너지는데 60대중반을 지난 사람이 선수 폼으로 칠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도 후배들이 아우성이라 한마디 했다.
“우리 도장에는 나보다 더 고수인 분들이 수두룩하다네. 고수들 옆에서 곁눈질로 배워도 이렇게 되더라니까.”
마지막 홀에서 장갑을 벗고 악수할 때까지 L씨는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스코어카드에는 처음으로 자신이 최저타로 기록되어 있었다. 속으로만 ‘어찌 이런 일이!’하고 속삭였다. 후배들은 당장 다음 달 날을 잡자고 야단이었다.

생애 처음 최고의 라운드를 했음을 실감한 그는 후배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다음 라운드를 약속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어디서 들은 적 있는 “여보, 이제 골프가 뭔지 알 것 같애!”라는 오도송(悟道頌)을 연발하기도 했다.

내게 라운드 후기를 전해준 날 그는 어김없이 등산로 식당으로 일행을 이끌어 소맥이며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그날의 기쁨을 반추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의 연습 자세도 한결 진지해지고 중간 중간 그날의 한 순간을 떠올리는 듯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그의 눈빛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니들이 골프 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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