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골프대회 우승자 박성현과 US여자오픈 대회장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지난 14~17일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트럼프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72회 US여자오픈은 한국과 미국의 골프사에서 매우 의미 깊은 대회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미국으로선 치욕의 현장으로, 한국으로선 세계 제패의 현장으로.

1998년 박세리가 동양인 최초로 US여자오픈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이후 촉발된 세리 프렌즈의 LPGA투어 진출, 세리 키즈의 골프 입문 붐으로 한국 여자골프는 골프 변방에서 주류로 급부상했다.

우선 선수 수에서 LPGA투어의 주류임을 부정할 수 없다. LPGA투어에서 정식 멤버로 활동하는 한국선수가 매년 20~30명에 이르고 있고 여기에 한국계 교포선수까지 포함하면 40여명을 넘나든다.
올 시즌 LPGA투어에 등록된 선수만 해도 한국인 23명, 한국계가 16명으로 범 태극낭자군은 39명에 이른다. LPGA투어에 등록된 선수 170명의 22,9%다. 한국국적의 선수만 따져도 13.5%에 이르니 미국선수를 제외하곤 최대 주류인 셈이다.

수적으로만 주류가 아니라 기량 면에서도 세계정상이다. LPGA 명예의 전당에 벌써 두 명(박세리, 박인비)이 이름을 올렸고 매년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두 자릿수 우승을 꾸준히 일궈내고 있다.
한국선수의 공세가 얼마나 드세었으면 영어 못하는 외국선수의 LPGA투어 진입에 제한을 두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을까. 각계의 반발에 부딪혀 실행되진 않았지만 LPGA투어를 휘어잡는 한국선수를 보는 미국 시각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이번 US여자오픈에는 여러 카테고리에서 총 156명이 참가했는데 한국선수가 28명, 한국계가 15명으로, 43명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선수였다. 총 참가 선수의 27.6%에 이른다.
참가선수 중 62명이 컷을 통과했는데 여기에도 한국선수가 15명, 한국계가 6명으로 컷 통과선수의 33.9%를 차지했다. 한국선수만 따져도 전체 컷 통과자의 24.2%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올해 US여자 오픈 대회를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횃불을 치켜들 요량이었던 것 같다.
자신 소유의 골프코스에서 열리는 US여자오픈에서 미국 선수가 당당히 우승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동시에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지지도를 올리겠다는 복심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그러나 첫 라운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첫 라운드는 중국의 펑산산이 리드를 했고 그 뒤를 한국선수들이 간발의 차로 추격했다. 한참 뒤처져 미국의 대표선수들이 헐떡거리며 따라오는 형국이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상황은 트럼프의 기대와 더욱 벌어졌다. 
펑산산과 한국의 17살 아마추어 최혜진이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막강한 태극낭자들이 기회를 엿보았고 미국선수들은 맥없이 뒤로 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란 글자가 새겨진 붉은 색 골프모자를 쓰고 대회장을 찾아 2라운드부터 미국 선수들을 격려했지만 US여자오픈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라운드를 끝낸 리더보드는 트럼프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톱10만 봐도 공동 5위의 펑산산과 스페인의 카를로타 시간다를 제외하곤 모두 한국선수였다. 톱20로 넓혀도 무명의 매리너 알렉스가 11위, 리젯 샐러스가 15위, 크리스티 커가 19에 머물 뿐, 미국을 구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렉시 톰슨, 스테이시 루이스, 안젤라 스탠포드, 저리나 필러 등 강자들은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오지 말아야 할 곳에 괜히 왔다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문제, FTA 재협상 등의 난제로 한국과의 관계가 순탄치 않아 심기가 불편한 마당에 자신 소유의 골프장에서 개최된 미국 여자골프 최고의 메이저 US여자오픈에서 미국 선수들이 한국선수들에 맥을 못 추고 지리멸렬하는 모습은 차마 지켜보기 끔찍했을 것이다.

미국 땅, 그것도 대통령 소유의 골프코스에서 한국선수들이 징기스칸의 병사처럼 미국선수들을 궤멸시키며 LPGA무대를 접수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트럼프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특히 미국선수들이 무명의 아마추어, 한국무대에서만 뛰어온 어린 선수들, LPGA투어에 온지 1년도 채 안된 루키에게 속절없이 주저앉는 것을 보며 한국 여자골프의 수준이 어떤가를 실감했을 것이다. 한국여자가 세계 여자골프를 지배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도 깨달았을 것이다. 왜 축제마당이 되어야 할 시상식이 실내에서 조촐하게 진행되었는지도 짐작이 간다.

일본에서도 이미 JLPGA투어의 승리 과반수를 한국선수가 차지하는 현상이 몇 년 째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번에 김해림(28)이 첫 참가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김해림은 14~16일 이라라키현 이글포인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JLPGA투어 사만사타바사 레이디스 토너먼트에서 합계 11언더파로 공동2위와 4타 차이로 여유 있게 우승, 한국 여자골프의 수준이 어떠한가를 증명했다.

중국의 인기 있는 미모의 선수 쑤이 상(18)이 KLPGA투어에 도전할 의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에는 골프를 잘 하는 선수가 너무 많아 KLPGA투어에선 성공하기 어렵다. 오히려 LPGA투어에 도전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는데 이 한 마디가 한국 여자골프의 수준을 말해준다.

한국선수들이 세계 여자골프 영토를 확장해가는 모습을 대견하게 지켜보면서도 세계 여자골프 시장을 불모지로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쓸데없는 기우를 가져본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