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한국에서 캐디가 하는 일은 격무다. 서양이나 이웃 일본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캐디는 단순한 보조자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까탈스럽기로 소문난 한국의 아마추어 주말골퍼를 만족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캐디들이 4명의 경기자를 상대로 별 마찰이나 문제없이 라운드를 이끄는 모습을 보면 한국 캐디들의 수준이 세계 최고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까다로운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캐디의 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진 셈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한 명이 아닌 네 명을 상대로 결정적 도움을 주며 물 흐르듯 라운드를 유도하는 것을 지켜보면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다.
미국에서 한국계 캐시어들이 경탄의 대상인 것처럼 한국 캐디를 접해본 외국인들은 혀를 내두른다. 한 명을 제대로 상대하기도 어려운데 한국의 캐디들은 4명을 도와주는데도 부족함이 없고 도움의 내용도 정확한데 외국인들은 경탄을 금치 못한다. 

3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캐디라면 대부분 한 두 홀 지나면 경기자 4명의 비거리와 구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선호하는 클럽도 알아내 경기자가 요청하기도 전에 클럽을 챙겨줄 줄 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린에 이르는 사이 수시로 거리를 알려주고 거기에 맞는 클럽을 챙겨 준다. 그린 위에서도 네 명의 볼을 닦아주고 마크를 해주는가 하면 라인까지 맞춰 볼을 놓아주기까지 한다.

경기자 스스로 거리를 재고 라인을 읽어내기도 어려운데 짧은 시간에 네 명에게 유용한 퍼팅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럼에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대부분의 골퍼들은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캐디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스탠스가 잘못 되었거나 스트로크가 잘못된 것은 생각지 않고 캐디가 볼의 라인을 잘못 맞추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어느 날 라운드 하면서 여유가 생겨 캐디와 얘기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그 캐디가 전해주는 ‘캐디를 기쁘게 하는 플레이어’에 대한 소감을 듣고 놀랐다. 네 명을 돌보기도 벅찬데 그 속에서 기쁨을 맛보다니! 그동안 플레이어들이 캐디의 입장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운드 중에 나모 모르게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때가 언젠지 아세요?”
내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캐디가 설명했다.

“말귀를 정확히 알아듣는 분이요. 거리를 말하면 비슷한 거리를 보내고, 어디가 위험하니 피하라고 하면 확실히 위험지역을 피하는 분이요. 그런데 대부분은 거리를 불러줘도 의심하고 멋대로 거리를 계산해 지나치거나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요.”
캐디가 전해주는 ‘캐디를 기쁘게 하는 골퍼’의 예는 계속 이어졌다. 

동료가 좋은 샷을 날렸을 때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동반자는 전체 분위기를 북돋워주는 역할을 해주기에 이쁘게 보인다고 했다. 말을 예의바르게 하고, 요란하지 않게 동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역시 고마운 손님이란다.

아무리 싱글 골퍼라 해도 스코어에 연연해하는 사람, 남이 잘 치면 시무룩해지는 사람은 별로라고 했다. 자신은 꼼짝도 않고 이것저것 주문만 하는 골퍼도 캐디를 피고하게 만든다고 했다.  

주머니에 티나 마크를 여유 있게 넣어 다니다 동반자가 필요할 때 꺼내주고 마크도 대신 해주는 사람, 볼에 미리 표시를 해두어 멀리서도 자신의 볼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사람, 홀 아웃 할 때 퍼터를 캐디에게 넘기지 않고 스스로 들고 가 카트에 싣는 사람, 다음 홀에 도착하면 카트에서 내리자마자 골프채를 스스로 챙기는 사람도 캐디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고마운 분들이란다.

캐디피를 주는데도 예의를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부분 라운드를 끝내고 클럽하우스 부근 신발 터는데서 캐디피를 모아 건네는데 기분이 별로라고 했다. 서로 얼마를 땄는지 다투고 억지로 주머니에서 구겨진 돈을 꺼내 건네는 모습을 보면 저런 돈을 받아야 하나 싶은 기분이 들 정도라고 했다.

드물게 봉투에 미리 캐디피를 넣어두었다가 전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자신 스스로 대우를 제대로 받았다는 기분이 든단다.
나는 마지막 홀 전에 미리 캐디피를 모아 조용히 전해주었는데 캐디는 진정으로 고마운 얼굴로 봉사료를 두 손으로 받았다.
“손님 덕분에 오늘 라운드 기분 좋게 했어요.”라는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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