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 톰슨과 유소연. 사진제공=LPGA
[골프한국] 지난 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 미션 힐즈 GC에서 유소연(26)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의 뒷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답게 라운드마다 숨 막히는 각축전이 벌어졌다. 유소연, 양희영, 전인지, 박성현, 허미정 등 상승세를 타고 있는 태극낭자들과 리디아 고, 이민지 등 한국계 동포선수들, 렉시 톰슨, 그리스티 커, 수전 페테르센, 안나 노르드크비스트, 제시카 고다 등 미국과 북유럽 대표선수들이 난전을 벌이며 보기 드문 명승부를 펼쳤다.

이번 대회가 골프계의 태풍의 눈이 된 것은 렉시 톰슨의 4벌타. 최중 우승은 꾸준하고도 눈부신 플레이를 펼친 유소연이 차지했지만 뉴스의 초점은 렉시 톰슨에게 맞춰졌다. 최종 라운드 12번 홀까지 3타 차 단독선두를 달리던 렉시 톰슨이 전날의 3라운드 중에 벌어진 일로 느닷없이 4 벌타를 받은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가 논란의 초점이 되었다.

3라운드 경기를 TV를 통해 구경하던 시청자 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 사건의 요지는 간단하다.
톰슨은 3라운드 17번 홀(파4)에서 버디 퍼트를 했는데 볼은 홀에서 40cm도 안 되는 거리에 멈췄다. 톰슨은 마크를 한 뒤 공을 잡았다가 다시 놓고 파 퍼팅을 성공시켰다. 이 과정에서 공이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홀 쪽으로 아주 살짝 가까이 놓여졌다는 사실이 비디오 판독에 확인되었다.

경기규칙에는 '경기자가 오소(잘못된 장소)에서 스트로크한 경우 그는 해당하는 규칙에 의하여 2벌타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고 '경기자가 스코어 카드 제출 전에 규칙 위반을 몰랐을 경우는 경기 실격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적용규칙에 정해진 벌을 받고 경기자가 규칙을 위반한 각 홀에 2벌타를 추가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규칙에 따라 모두 4 벌타를 받게 된 렉시 톰슨은 다음날 12번 홀에서 경기위원으로부터 이 사실을 통고받았다. 

12번 홀을 마치고 3타 차 단독선두에 있던 렉시 톰슨은 4타를 잃고도 잘 버텨냈으나 유소연에게 추격을 허용, 결국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버디를 한 유소연에게 우승컵을 넘겨야 했다.

많은 선수들이 불만에 찬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심판관이 아닌 TV시청자가 심판관 역할을 할 수 있느냐로 모아지는 것 같다.

리키 파울러는 “TV 시청자가 게임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결코 그 게임을 즐겁게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된다”며 “이런 관행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인 리디아 고는 자신의 SNS에 "말도 안 된다. 사람들이 전화로 경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룰 개정과 방지책이 필요하다.”고 룰 개정을 촉구했다.
2014년 마스터스 대회에서 드롭을 잘못한 사실을 TV시청자가 지적하는 바람에 2벌타를 받은 뒤 “집에 있는 시청자가 심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집에서 보는 시청자들이 경기 승패를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로라 데이비스는 “모든 샷이 감시를 받는 게 아니라 TV에 자주 잡히는 선두권 선수들이 주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리치 빔은 노골적으로 “심판이 200만명(TV 시청자수)이나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 같은 선수들의 불만 혹은 이의 제기는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
골프를 두고 왜 ‘신사의 스포츠’라고 하는지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정답에 도달할 수 있다. 남은 물론 스스로도 속이지 않고 철저하게 규칙을 지키고 남을 배려해야 하는 스포츠인 골프에서 잘못, 즉 규칙위반은 내가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팩트로서 확인이 되면 규칙위반이다. 고의 여부를 떠나 남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심판이 현장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저지른 잘못(규칙위반)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지금 선수들의 주장이나 불만 토로는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추앙받는 ‘구성(球聖)’바비 존스(Bobby Jones;1902~1971)가 제시한 골프철학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해에 당시 4대 메이저대회(미국과 영국의 오픈 및 아마선수권대회)를 석권해 골프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바비 존스는 오거스타 내셔널코스를 조성해 지구촌 최고의 골프제전인 마스터스 대회를 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에게 ‘구성(球聖)’이란 위대한 헌사가 붙은 일화는 골퍼들의 마음을 울린다.

1925년 US오픈에서 그는 골프사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를 만들어낸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차 선두를 유지, 우승을 목전에 둔 존스는 러프에서 어드레스 하는 사이 볼이 움직이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고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았지만 경기위원회에 자진 신고해 1벌타를 받았다. 이 때문에 공동 1위가 되어 연장전에 들어가 결국 우승컵을 놓쳤다.  
이를 두고 그의 친구인 O.B 킬러 기자는 “나는 그가 우승하는 것보다 벌타를 스스로 부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한 타가 없었더라면 플레이오프는 없었을 것이고 존스의 우승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멋있는 것이 바로 존스의 이 신고사건이었다.”고 기록했다.
이 사건을 두고 매스컴이 칭송하자 존스는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당신은 내가 은행 강도를 하지 않았다고 나를 칭찬하려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바비 존스의 시각에서 보면 누가 보든 안보든 내가 저지른 규칙위반은 되돌릴 수 없는 규칙위반인 것이다. 동반자나 경기위원, 현장의 갤러리들이 지적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이 저지른 규칙위반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수백만 TV시청자가 지적했다고 해서, 현장에서가 아닌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뒤 지적되었다고 해서 규칙위반 딱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선수들이 ‘렉시 톰슨의 4벌타 사건’을 두고 이의 제기를 하며 불만을 털어놓는 것은 ‘들키지 않는 규칙위반’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다행히 LPGA투어의 커미셔너 마이크 완이 이번 판정의 합법성을 재확인했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 “좌절을 느끼고 한편으로 부끄럽다”고 하면서도 “LPGA가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운드 중 규정을 어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올바르게 판단된 것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규칙위반을 적발해내는 수단이 다양화해질수록 오히려 골프의 정직성은 훼손되지 않고 ‘신사의 스포츠’로서의 골프의 위상은 견고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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