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28)이 LPGA 투어 혼다 타일랜드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한국] 직립보행이 오늘의 인류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이듯 사람의 걸음걸이는 개인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의 저서 『문화인류학』에서 약 600만년으로 추정되는 직립보행의 역사가 바로 인류 진화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걷기의 역사』라는 매력적인 책을 쓴 조지프 A. 아마토는 ‘걷기는 곧 말하기’라고 단정한다. 걷기는 자기 나름의 방언과 관용구를 지닌 언어이며 걷는 사람의 몸매와 눈빛, 얼굴 표정, 팔 다리의 움직임, 엉덩이 움직임, 옷차림 등은 그 사람의 지위와 신분, 현재 상태, 목적지 등 풍부한 정보를 노출한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사막에 찍힌 발자국만 보고 발자국 주인공의 나이, 성별, 건강상태, 무기 소지 여부 등 수많은 정보를 알아낸다고 한다.

양희영(28)의 걸음걸이는 쉽게 다른 선수와 구별된다. 묵직한 체중을 싣고 떼어놓는 그의 걸음걸이는 먼 길을 가는 걸음이다. 의태어로 표현하면 ‘뚜벅뚜벅’이다. 가볍게 힘들이지 않고 걷는 ‘사뿐사뿐’이나 ‘살랑살랑’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의 타고 난 걸음걸이를 보면 골퍼로서의 그의 인생 역정이 어찌 그리 닮았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정상 수준의 기량을 갖추고도 LPGA 투어 9년 만에 세 번째 우승을 했다는 사실은 ‘대기만성(大器晩成)’형으로 보이지만 그의 시작은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국가대표 카누선수 출신의 아버지와 아시안게임 투창 동메달리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양희영의 스포츠DNA는 의심의 의지가 없다.

그의 부모는 양희영을 통해 못다 피운 스포츠스타의 꿈을 이루리라는 열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골프를 시켰고 보다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호주로 유학을 보냈다. 그리고 16세 되던 해인 2006년 LET(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 ANZ마스터스 대회에서 아마추어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아마추어 자격으로는 카리 웹 우승 이후 22년 만이다.
이후 당대 최고의 LPGA투어 스타였던 아니카 소렌스탐, 카리 웹 등으로부터 “북반구에 미셸 위가 있다면 남반구엔 양희영이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주변의 기대 속에 2007년 말 LPGA투어 Q스쿨에 도전했으나 공동 54위에 그쳐 조건부 시드를 받고 2008년부터 LPGA투어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양희영에겐 인내력과 지구력을 시험하는 고행의 기간이 이어졌다.
5년의 기다림 끝에 첫 우승을 경험했다. 2013년 10월 인천에서 열린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서희경(31)과 연장 접전 끝에 그렇게 갈구하던 LPGA 우승트로피를 품었다. 데뷔 이후 119 경기 만이다.

먼 길을 가는 걸음걸이 탓인지 이후에도 양희영 앞엔 고행길이 펼쳐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으로 골프를 접을까도 고민하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은 골프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재기의 담금질에 나섰다. 단내가 나는 담금질의 결과가 2015년 2월 태국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의 두 번째 우승이다.

그리고 2년 만에 같은 대회에서 LPGA투어 세 번째 우승을 올렸다.
지난 23~26일 태국 촌부리 시암컨트리클럽 파타야 올드코스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보인 양희영의 걸음걸이는 예전과 확실히 달랐다. ‘뚜벅뚜벅’ ‘성큼성큼’이란 의태어는 그대로 적용되겠지만 그의 걸음걸이에는 자신감과 즐거움이 넘쳤다.
우승 내용도 실팍했다. 유소연, 김세영, 렉시 톰슨, 전인지, 아리야 주타누간, 모리야 주타누간 등 쟁쟁한 추격자들을 멀리 따돌리고 4라운드 합계 22언더파 266타로 대회 최다 언더파기록을 세웠다. 2007년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과 2010년 미야자토 아이(일본)가 세운 21언더파 267타를 깬 것이다.

한층 고무적인 것은 전에는 탁월한 기량에 비해 결정적 순간의 기회 포착력이나 악력이 약해 눈앞에서 우승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그런 취약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인내심을 갖고 긴 고행 길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온 양희영에게 오아시스는 당연한 보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지치지 않은 걸음은 더 많은 승리를 약속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고행의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온 양희영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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