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우리나라 국보 83호인 삼국시대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공통점은 신비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미소다.

기쁨과 슬픔이 절묘하게 혼재한 신비스러운 미소의 모나리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인류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반가사유상 역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미소로 보는 이를 황홀한 신비의 세계로 인도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310월부터 5개월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황금의 나라, 신라라는 제목으로 신라의 문화재 130여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시회가 열렸을 때 반가사유상에 대한 언론의 인상적인 소개가 기억난다.

관람객들은 많은 전시물 중에서도 특히 반가사유상이 은은하게 전해주는 미소를 대하곤 넋을 잃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세계적 수준의 세련미와 그 아름다움이 할 말을 잃게 한다.”고 극찬했다.

미소(微笑)는 입과 눈 주변의 근육이 움직여 만들어지는 소리 없는 표정이다. 보통은 즐거움을 나타내지만 불안이나 허탈, 불쾌함 등 다양한 감정이 미소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흔히들 미소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기쁨과 행복이 진정으로 우러난 미소를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 '뒤센 스마일(Duchenne Smile)'이라 하고 스튜어디스가 고객을 위해 짓는 미소처럼 억지로 지어내는 미소를 '팬 어메리칸 스마일(Pan American Smile)'이라 한다.

한자의 세계로 들어가면 미소의 세계는 더욱 다양하다. 빙긋이 웃는 미소(微笑) 외에 아양을 떨며 곱게 웃는 미소(媚笑), 소리 내어 웃는 홍소(哄笑), 어처구니없어 웃는 실소(失笑), 비웃는 조소(嘲笑), 쌀쌀한 냉소(冷笑), 요염하게 웃는 교소(巧笑), 부끄러워 웃는 치소(恥笑), 씁쓸한 감정을 드러내는 고소(苦笑), 남을 속인 뒤 웃는 기소(欺笑) 등 수십 가지에 이른다.

스마일(smile) 즉 미소는 나와 바깥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다. 미소는 나의 내부의 감정을 밖으로 전달하고 외부의 상황에 반응하는 나의 감정을 드러낸다.

미소는 말이 없이도 나와 나 이외에 대상과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기호이자 신호다. 영어로 하면 sign, signal, symbol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개개인의 수준에 따라 내면의 마음상태를 밖으로 표현하고 외부의 상황에 반응하는 필터가 다를 뿐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안으로 삭이거나 그대로 얼굴에 표출하거나, 외부 상황 변화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정수과정을 거쳐 은근히 반응하는 것은 각자 소유한 필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나 모나리자나 반가사유상을 닮은, 열락과 자비 연민이 절묘하게 조화된 승화된 미소를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와 나를 둘러싼 외부 상황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선 꽤 수준 높은 정신적 필터장치가 필요하다. 우리의 얼굴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미소는 바로 이 필터를 거친 표정인 것이다.

골프라는 스포츠는 유별나게 나와 바깥세계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

볼을 날려 보내는 데 필요한 거북스러운 스윙 동작, 까다롭게 만들어진 골프클럽, 늘 변하는 동반자,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코스의 환경,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자신의 생체리듬 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결코 만족스러운 라운드를 할 수 없다.

18(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투어 시즌 마지막이자 다섯 번째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전인지는 미소가 골프에서 얼마나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미적 감성을 타고난 프랑스의 골프팬들은 물론 중계방송을 지켜본 지구촌 골프팬들은 전인지의 품격 높은 골프, 그리고 우아한 미모에서 우러난 담담한 미소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스윙, 상황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 결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경기 운영 등 골퍼가 갖춰야 할 최고수준의 미덕을 전인지는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21언더파 263타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LPGA투어 메이저대회 최다언더파 기록(19언더파)과 최소타 기록(17언더파)은 물론 역대 남자 메이저대회의 기록(제이슨 데이와 헨릭 스텐손이 세운 20언더파)도 깼다. 지난해 7월 초청선수로 참가한 US오픈에서 우승, LPGA투어 풀시드권을 따낸 전인지는 데뷔 시즌 준우승 3차례 후 두 번째 우승을 메이저대회로 장식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대회는 한국선수들끼리 펼쳐진 수준 높은 우승 경쟁도 볼만했지만 전인지의 존재 자체로 골프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전인지가 보여주고 증명한 미소 골프의 위력이 그것이다.

흔들림 없는 플레이, 결을 거스르지 않는 부드러운 경기 운영, 소금이 물에 녹아들 듯 주변상황과 하나가 되는 뛰어난 조화력 등 승리의 바탕이 된 미덕의 뿌리는 그녀 특유의 미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된 그의 미소는 보는 사람을 편안하고 기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달래고 다스리고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만족한 샷을 날린 뒤에도, 미스 샷을 날린 뒤에도 미소라는 필터를 거치고 나면 그는 다시 담담한 초심으로 돌아가 본연의 플레이를 펼쳐보였다.

기량 면에서 전인지와 박성현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오히려 장타력이나 아이언의 정교함 등에선 박성현이 우위에 있는 듯 했다.

차이가 있다면 미소다. 전인지는 필요할 때마다 미소 필터를 작동시켜 주변상황과 적절하게 조화를 꾀할 줄 안다. 그러나 박성현은 기쁨이나 실망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미소라는 필터로 주변상황과 적절히 교감하지 않으니 한번 리듬이 흐트러지고 상승기류를 놓치면 자신의 경기를 펼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비앙 챔피언십 참가선수들은 물론 골프전문가들로부터 정상급 기량을 인정받은 박성현은 비록 역전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상금랭킹 40위 안에 들어 퀄리파잉스쿨을 거치지 않고 LPGA투어에서 활약할 수 있는 풀시드를 받게 됐다.

미소년 같은 외모에 검객의 그것 같은 파워풀한 스윙과 장타력을 갖춘 박성현은 주변상황과의 조화를 유도할 수 있는 미소의 마법을 터득한다면 LPGA투어의 새로운 아이돌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고 보면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이 던진 최고의 화두는 미소 골프였다.

전인지는 물론 유소연, 김세영, 아리야 주타누간, 브룩 핸더슨 등 강자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리디아 고, 아리야 주타누간, 김효주, 장하나, 노무라 하루, 신지은, 이민지 등 올해 LPGA투어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들의 면면이나 JLPGA투어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보미, 김하늘을 봐도 강자들은 훌륭한 기량과 함께 주변 상황과 적절한 조화를 꽤할 수 있는 미소의 소유자들이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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