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28·KB금융)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을 땄다. 사진제공=와이드앵글
[골프한국] 박인비(28)가 21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다 치주카의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막을 내린 4일간의 리우 올림픽 여자골프 대열전에서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온 국민들은 통쾌한 희열을 만끽했고 세계의 골프팬들은 박인비의 경이적인 플레이에 환호와 갈채를 아낌없이 보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리우 올림픽 골프종목에서 한국선수의 금메달 획득은 희망사항이었지 기대상황은 아니었다. 넷 중에 누군가가 운대가 맞아 훨훨 날아주면 금메달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인 상황은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한국팀의 대표주자격인 박인비는 올림픽 개최 몇 개월 전부터 허리와 손목 부상, 이에 따른 부진으로 참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 이어져온 터라 큰 기대를 걸 수 없었다.
나머지 세 선수 양희영(27), 김세영(23), 전인지(22)는 기량 면에서는 우승 가능한 후보지만 개인별로 뭔가 2% 정도 부족한 면이 마음에 걸렸다.

톱랭커 선수들이 일부 불참한 남자대회와는 달리 지구촌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출전해 한국선수들의 메달 획득 전망은 결코 밝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19세의 나이에 골프달인의 경지에 오른 세계랭킹 1위인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 올해만 파죽의 4승을 거두며 단숨에 세계 랭킹 2위에 오른 태국의 아리야 주타누간(20), 캐나다의 무서운 10대 골프천재 브룩 핸더슨(18), 누가 뭐래도 미국의 대표주자인 스테이시 루이스(31), 노르웨이의 바이킹 여전사 수잔 페테르센(35) 등이 버티고 있어 한국 선수들의 메달 획득의 길은 처음부터 험난해보였다.

그러나 정작 대회가 시작되자 가장 우려의 눈길을 받아왔던 박인비가 그동안 부정적 시각으로 보던 이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고 전성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저 선수가 수개월간 부상으로 기를 제대로 못 폈던 선수가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동안 그의 경기 장면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올림픽에서의 그의 플레이는 생애 최고였다. 첫 라운드에서 5언더파 공동 2위로 상쾌한 출발을 한 박인비는 2라운드에서도 5타를 줄이고 강풍이 휘저은 3라운드에서도 타수를 줄이며 단독선두를 지켜냈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아리야 주타누간이 무릎부상으로 기권한 상황에서 맞은 최종 라운드에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평정심과 신기의 퍼팅으로 리디아 고, 펑 샨샨 등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 골프코스에 태극 물결을 일으켰다.

골프는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가 남자대회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고 여자대회는 파리 올림픽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16년 만에 열린 역사적인 올림픽 여자 골프대회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올림픽 금메달을 보탠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란 대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박인비는 지난해 8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LPGA투어 선수로는 7번째로, 아시아인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에 이르기까지의 길도 대단한데 부상으로 대회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던 박인비가 낯선 골프코스에서 어떻게 저런 초연한 골프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교과서적인 아름다운 스윙과는 거리가 먼 4분의 3 스윙, 파5 홀에서 2온을 시도할 수 없는 짧은 비거리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경기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쳐나가는 모습은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어떻게 박인비가 저런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감탄을 갖고 TV 중계를 지켜보다 우연히 대회장 스코어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맨 꼭대기에 적힌 ‘In Bee Park’. 박인비의 영어식 표기다.
순간 내 눈에 ‘인비박’은 ‘人非朴’으로 변환되어 보였다. 물론 박인비의 한자 이름은 ‘어진 왕비’라는 뜻의 朴仁妃가 따로 있지만 내 눈엔 ‘人非朴’이 꽂혔다. 적어도 올림픽 여자골프대회 기간 박인비는 인간이 아니었다.

‘人非朴’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보니 나의 의문과 궁금증이 술술 풀렸다.
그럼 그렇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올림픽 참가를 강행할 수도 없고, 저런 거친 바람 속에 평화롭게 플레이를 할 수 없지.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긴 퍼팅을 넣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겠어.

보통 인간이라면 지난 6개월 동안 허리와 손가락 부상으로 겪은 고통에, 그동안 열린 22개 LPGA투어 대회 중 10여 차례 참가해 최종 라운드까지 마친 대회는 단 5개에 불과하고 세계랭킹도 2위에서 5위로 추락하는가 하면 올림픽 직전 실전경험을 위해 참가했던 KLPGA투어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컷 탈락이란 수모를 당하고도 출전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또 얼마나 많은 악성 댓글들이 그를 괴롭혔던가. 괜한 고집 욕심 부리지 말고, 올림픽 티켓 날리지 말고,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라는 비난의 화살을 무슨 힘으로 견뎌낼 수 있겠는가.

그는 정말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음에도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데 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를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을 위해,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는 당당하게 참가하기로 결정했고 이 결정이 헛되지 않도록 남몰래 눈물겨운 훈련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인간이 갖기 어려운 박인비의 배짱과 뚝심, 남편의 굳건한 신뢰와 후원, 박세리 대표팀 감독의 모성애가 넘치는 헌신적 뒷바라지 등등이 선순환의 효과를 발휘하면서 박인비가 ‘人非朴’이 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우리 모두 살아있는 전설을 갖는 행복을 안겨준 박인비에게 정말 많은 빚을 졌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