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데이비드 듀발(David Duval·44).
세계 골프계에 출몰한 수많은 혜성 중 데이비드 듀발 만큼 등장과 퇴장이 극적이었던 선수도 드물 것이다. 2001년 29세의 나이로 최고 전통의 디 오픈(The Open)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 언론들은 ‘킹 데이비드의 출현(Appearance of King David)’이란 표현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그의 등장이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일한 다윗의 출현을 상기시킬 정도로 극적이었던 때문이다 .

180cm 79kg의 골프하기 딱 좋은 신체조건을 타고난 데이비드 듀발은 1995 PGA투어에 입문해 이듬해부터 2001년 디 오픈을 우승할 때까지 6년간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조지아공대 출신의 듀발은 하체에 비해 상체가 길고 허리의 유연성이 뛰어난 신체적 장점으로 PGA투어 입문과 동시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당대 최고의 골퍼로 명성을 날리던 타이거 우즈와 양강체제를 이룰 거목으로 기대를 모았다.

PGA투어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6년간 그가 이룬 업적을 보면 그가 짧은 기간 얼마나 불꽃  같은 황금기를 보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포함해 1999~2000년 18개월 동안 무려 11승을 올리며 타이거 우즈를 따돌리고 15주간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차지한 시기에는 아무도 그와 대적할 수 없는 듯했다. 

PGA투어 통산 13승에, 1999년 미국과 유럽의 대항전인 라이더스컵 미국대표, 2000~2001년 월드컵 골프대회 미국 대표, 2002년 라이더스컵 미국대표라는 이력을 보면 아무도 그가 타이거 우즈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골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듀발은 ‘꿈의 스코어’라고 불리는 59타(파72코스에서 13언더파)를 기록한 6명의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1999년 봅호프 클래식에서 PGA투어 사상 세 번째로 59타를 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PGA투어에서 처음 59타를 친 선수는 미국의 알 가이버로 1977년 대니 토마스 맴피스클래식에서 기록했고, 두 번째는 1991년 미국의 칩 백이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 클래식에서 기록했다. 세 번째 데이비드 듀발에 이어 2010년 미국의 폴 고이도스가 존디어 클래식에서, 같은 해 호주의 스투어트 애플비가 그린브라이어 클래식에서 59타를 기록하고 2013년 짐 퓨릭이 BMW챔피언십에서 여섯 번째로 59타를 친 뒤 ‘꿈의 스코어’ 행진은 멈춘 상태다.
 
데이비드 듀발은 2001년 디 오픈 우승 이후 급전직하로 추락, 우승은 고사하고 PGA투어 출전권마저 잃어 Q스쿨의 문을 두드리는 수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깊은 속사정을 모르는 골프팬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골프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의 경우는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때 세계랭킹 1위에 올랐지만 지금은 페덱스컵 랭킹이나 세계골프랭킹에 아예 이름조차 사라졌다. 

이런 그가 지난 14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로열 트룬 골프코스에서 열린 제145회 디 오픈에 출전했다니 세계 골프팬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Q스쿨을 거치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PGA투어 시드를 받지 못한 그는 이번 대회에 역대 우승자의 자격으로 초청받아 출전할 수 있었다.

전성기의 데이비드 듀발을 기억하는 골프팬들은 그에게서 재기의 징후를 찾으려 잠을 설치며 지켜보았으나 그는 TV 중계화면에 잠깐 등장했을 뿐 1라운드를 마치고 기권하고 말았다. 그의 1라운드 스코어는 82타(파 71)로 무려 11 오버 파. 버디는 단 한 개에 그치고 보기 3개, 더블보기 2개, 쿼드러플보기 1개라는 참혹한 기록이다.

도대체 왜 데이비드 듀발이 이 지경으로 추락했을까.
놀랍게도 잘 발달된 상체와 유연성이 뛰어난 허리가 부상을 자초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나치게 허리를 회전시키려다 허리는 물론 어깨, 팔꿈치, 무릎, 손목 등에 부상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자신의 최대 장점이자 무기가 자신을 망쳤다니 아이러니다.

누가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 데이비드 듀발은 철석같이 믿었던 애인의 불륜행각이 드러나면서 극도의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어린 시절 자신의 골수를 이식해준 친형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에 부모 이혼까지 경험한 그로선 애인의 배반은 삶에 대한 의욕 자체를 빼앗아 가버렸다. 방황 끝에 세 아이를 둔 싱글 맘을 만나 비로소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정을 지키며 재기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 때가 아닌 모양이다.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던 골프팬으로서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듯 데이비드 듀발이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헤어나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