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현(32·골든블루)이 1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골프클럽에서 열린 KLPGA 투어 제30회 한국여자오픈 골프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은 2015년5월15일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의 모습이다. ⓒ골프한국
[골프한국] 많은 여성들이 신데렐라를 꿈꾸며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찾지만 그 꿈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가끔 평범한 가정 출신의 여성이 멋지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하루아침에 인생이 달라졌다는 ‘현대판 신데렐라’스토리를 접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거기까지다.
시작은 신데렐라로 출발했지만 그 이후는 십중팔구 신데렐라와는 거리가 멀기 십상이다. 오히려 평범한 선남선녀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만 신데렐라의 주인공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신데렐라의 축복은 저주로 변하기도 한다.

지난 1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막 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엄마 골프선수’ 안시현(32)은 비로소 ‘신데렐라의 저주’를 털어내는데 성공했다. 

12년 만에 KLPGA투어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는 2003년 제주도에서 열린 LPGA투어 CJ나인브릿지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었다. 갓 KLPGA투어에 데뷔한 신인이 LPGA투어 직행티켓이 걸린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했다.
2002년 2부 투어인 드림투어에서 우승하면서 KLPGA투어에 발을 들여놓은 신인이 국내외 골프여걸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하고 LPGA투어 직행티켓까지 확보했으니 안시현 스스로도 신데렐라가 된 행복에 빠졌을 것이다.
2004년 LPGA투어에 데뷔한 안시현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계속 이어지는 듯했다. 존큐 해먼스호텔 클래식에서 준우승하는 등 여러 대회에서 상위 입상을 한 덕택에 2004년 LPGA투어 신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KLPGA투어 MBC·액스캔버스 여자오픈에서도 우승, KLPGA 공로상과 특별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 안시현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빛을 잃어갔다. 2006년 렉서스컵 대륙 간 여자프로골프 대항전에 참가해 아시아팀 우승에 힘을 보태고 2005 LPGA투어 다케후지클래식에서 공동 3위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한 연예인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싱글 맘으로서의 생활이 이어지면서 그의 신데렐라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부진한 성적 때문에 LPGA투어 시드권을 잃은 그는 KLPGA투어로 철수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2011년 한화금융클래식 3위, 2014년 롯데마트 여자오픈 공동 2위, 2014년 채리티 하이원리조트 오픈 공동 3위 등의 성적으로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늘이 주신 선물이자 보물인 딸과 골프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작정한 그는 독한 싱글 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데렐라의 꿈에 젖어 LPGA투어에 뛰어든 그가 결국 승수를 보태지 못하고 신데렐라의 저주를 털어버리기 위해 귀국을 결심했을 때의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는다.

돌이켜 보면 그의 신데렐라의 꿈은 너무 이르고 성급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CJ나인브릿지에서 우승할 때 그는 촉망받는 스타급 신인은 아니었다. 운이 좋아 제주도에서 열린 LPGA 주최 대회에서 우승, 단숨에 LPGA 직행티켓을 땄을 뿐 LPGA투어에서의 성공을 예측할 정도는 아니었다. 리디아 고, 박인비, 류소연, 신지애, 이보미 같은 충분한 담금질을 거친 신데렐라와는 분명 다르다. 골프천재라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LPGA투어가 어떤 곳인가. 세계 각국에서 지옥의 레이스라는 Q스쿨이나 2부 투어를 거쳐 간신히 입문할 수 있는 무대다. 맹수들이 우글대는 정글이다.
2부터 투어나 Q스쿨의 담금질도 거치지 않은데다 국내에서도 기량 면에서 톱클래스라고 단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신데렐라의 꿈에 부풀어 LPGA투어로 건너간 안시현에겐 우승 없이 보낸 12년이란 기간은 지옥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이 속속 LPGA투어에 뛰어들어 우승을 거두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중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새로운 후배 선수의 등장을 구경만 해야 하는 그의 가슴은 어땠을까. 그것은 신데렐라의 저주나 다름없었다.

이런 혹독한 시련이 있었기에 신데렐라의 꿈, 아니 신데렐라의 저주에서 벗어나 지면에 발을 디딘 싱글 맘으로써 진정한 골프선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의 줄리 잉스터나 캐리 웹이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은 지나친 것일까.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