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프로골프 투어 하산 2세 트로피와 모리셔스오픈 연속 우승

왕정훈(21)이 15일(현지시간) 열린 유럽프로골프 투어 모리셔스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제공=아이에스엠 아시아
[골프한국] “왕정훈이 도대체 누구지?”

지난 2주 유러피언(EPGA)투어에서 웬 낯선 한국 젊은이가 드라마 같은 역전극을 펼치며 연속 우승하는 중계방송을 보며 많은 골프팬들이 이런 물음을 던졌다. 간간히 아시아투어와 KPGA투어에 얼굴을 비쳤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 탓에 웬만큼 골프에 관심이 깊지 않은 골프팬이라면 그를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5년 9월 7일생에 180cm 73kg.
훤칠한 체격이나 앳된 얼굴은 영락없이 20대 초반의 탐나는 청년이지만 그의 플레이는 청년의 그것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얼굴색이 변하고 심장이 쫄고 팔딱거릴 나이인데도 그는 중압감 넘치는 상황을 즐기며 인내심을 갖고,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릴 줄 알고, 기회가 오면 몰입할 줄 알았다. 아직 만 21세가 안된 청년이 어떻게 저런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골프선수로서의 그의 굴곡진 역정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왕정훈이 모로코와 모리셔스에서 거둔 EPGA투어 2연승은 최경주나 양용은의 PGA투어 우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쾌거이자 새로운 신화의 서막이다.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으로서 EPGA투어 2연승은 처음 있는 일이고 EPGA투어에서도 10년 만에 나온 희귀한 기록이다. 물론 최연소 기록이기도 하다.

경기 내용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미국에서 열리는 더 플레이어스 대회 때문에 EPGA투어의 톱클래스 선수들이 자리를 비우기는 했지만 유럽의 쟁쟁한 선수들 틈에서 신출내기나 다름없는 왕정훈은 EPGA투어 처녀우승에 이어 2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 5~8일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라바트 근교 ‘다르 에스 살렘’(평화의 집) 골프코스에서 열린 핫산Ⅱ 트로피 대회에서는 마지막 라운드 17번 홀까지 나초 엘비라(스페인)에 한 타 뒤져 있었으나 마지막 홀에서 극적인 버디를 건지면서 연장전에 돌입,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하며 열렬한 골프광이었던 핫산2세 왕을 기리는 우승트로피로 모로코의 전통 보검을 받았다.       

여독을 풀기도 전에 동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 동쪽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로 날아간 왕정훈은 12~15일 아나히터의 포 시즌스 골프코스에서 벌어진 EPGA투어 아프라시아뱅크 모리셔스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선두 방글라데시의 시디커 라만에게 3타 차이까지 벌어졌으나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떨구며 역전극의 대미를 장식했다.
‘방글라데시의 최경주’가 될 뻔 했던 시디커 라만에게 후반에서의 추락은 천추의 한으로 남겠지만 어린 왕정훈의 포기할 줄 모르는 패기와 위기와 흥분의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근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골프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자세는 그가 타고난 프로골퍼임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었다.
특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왕정훈의 골프여정을 되짚어 보면 그가 최경주에 이어 한국 남자골프의 새로운 신화를 쓰기 시작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비상을 위해 둥지를 박차고 나간 한 마리 새였다.
그의 모로코 행은 예정에도 없었다고 한다. 정식 출전자격도 없고 대기 순번조차 3번째였지만 그는 국내대회인 매경 오픈 출전을 마다하고 아버지의 만류도 뿌리친 채 모로코 행을 결심, 무작정 항공 티켓을 끊었다. 운이 닿았는지 출발 직전 그에게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는 연락이 왔고 그는 멀고 먼 모로코로 날아갔다. 

그의 이런 결과는 그 동안의 골프역정의 산물이 아닐까 여겨진다.
주니어선수 시절부터 배려나 스포츠맨십과는 동떨어진 지나친 경쟁으로 올바른 선수로 키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아버지의 결정으로 그는 가족과 함께 초등학교 6학년 때 필리핀으로 이주했다. 어느 정도 기량이 궤도에 오르자 중학 3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해외 거주로 유급이 되어 3학년 선수로 뛸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1학년으로 대회에 출전했는데 기량이 너무 뛰어나자 나이 많은 선수가 1학년으로 출전하느냐는 탄원이 들어왔다. 결국 왕정훈은 중학교 3학년으로도, 1학년으로도 뛸 수 없었다. 한국의 골프풍토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실이다.

그는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필리핀의 4대 성인 아마추어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자 역시 항의가 들어왔다. 필리핀에서는 국가대표 선수에게 월급을 주는데 어린 왕정훈이 대회를 휩쓸다 보니 우승을 못한 대표선수들이 월급을 받을 수 없게 된 데 따른 원성이었다. 필리핀 대회 출전의 길도 막혔다.
어린 왕정훈은 한국에서도 필리핀에서도 거부당한 것이다. 한국도 필리핀도 그의 둥지가 되지 못했다. 둥지를 버리고 뛰쳐나오는 길밖에 없었다.

떠돌이신세가 된 그는 중국 PGA 투어 3부 투어에 뛰어들었다. 나이 제한도 없고 국적도 따지지 않아 만 16세 때인 2012년 프로로 전향하고 3부 투어 상금왕에 올랐다. 2013년부터는 아시안 투어에 뛰어들었으나 첫 해 카드를 잃었다가 2014년 상금순위 21위, 2015년에는 9위까지 끌어올렸다.
둥지를 박차고 나간 왕정훈은 결국 아시안 투어와 한국투어를 동시에 뛸 수 있게 됐고 어렵게 찾아온 모로코 핫산Ⅱ 트로피 대회 우승으로 EPGA투어 출전카드도 확보했다. 대망을 품고 둥지를 뛰쳐나간 왕정훈이 앞으로 얼마나 멀리 그리고 높이 비상할지 기대된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