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 골프복장

멋쟁이 미녀 골퍼 안나 로손. 사진=골프한국
골프 의상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리키 파울러. 사진=코오롱 한국오픈 대회조직위원회
‘왜 그런 골프 옷을 가져갔을까?’
지금도 제주도 사건을 잊을 수 없다. 필자는 5~6년 전 업무상 제주에서 골프모임이 있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분야를 대표할 만한 분들이 모인 자리였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고 할까? 나름대로 신경써 준비해 간 옷들은 오랫동안 옷장에서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은 것들이었다. 유행이 한참 지난 통이 큰 칙칙한 체크무늬 바지에 색이 바랜 상의였다. 그 옷을 입고 클럽하우스를 나오는 순간, 한껏 멋을 부린 골퍼들 앞에서 갑자기 낯이 부끄러워졌다. 골프를 그만두고 빨리 숙소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 필자는 골프 실력이나 매너만큼 골프복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다. 잘 갖춰 입고 개성을 살린 옷은 골퍼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괜히 옷 때문에 마음이 쓰여 자신의 골프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올 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인기몰이를 했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 필자조차 인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처음 ‘신사의 품격’이란 제목을 접했을 때 정말 ‘신사가 갖춰야 할 품격’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가장 이슈가 된 것은 주인공 장동건의 옷차림이었다. 양복 옷깃에 장식된 옷핀을 비롯하여 웬만해선 감히 따라 하기 힘든 패션이었지만 그가 입었던 옷들은 날개 돋친 듯 판매되었다고 한다. 대중이 원하는 신사는 옷차림부터 남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골퍼의 품격’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매너나 에티켓을 꼽지 않을까? 골프에서는 실력만큼이나 룰을 지키는 모습, 그리고 자신을 다스리는 정신력을 중시한다. 하지만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는 골프 역시 옷차림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비싸고 화려하다고 골프의 품격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스포츠에는 그 운동의 특성에 맞는 옷차림이 필요하다. 바짓단이 나풀거리지 않도록 타이즈형으로 바뀐 야구복장, 거친 축구화의 발길질로부터 종아리를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축구선수들의 양말,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는 타이트한 수영복도 제각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요즘 필드에 나가면 여성 골퍼보다 남성 골퍼들의 의상이 더 화려한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성 골프복이 이렇게 화려하진 않았다. 하지만 프로 선수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골프의 복장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타이거 우즈의 세련된 레드 셔츠는 필드에서 그를 더 강하게 보이도록 한다. ‘오렌지 보이’로 불려지는 리키 파울러는 원색적인 옷차림만큼이나 신선하고 젊은 느낌을 상징한다. 깔끔한 체크무늬 바지를 입는 이안 폴터도 세련된 유럽풍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필자가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당시 골퍼들은 약간 정장 스타일의 바지를 입었다가, 이후 한동안은 활동하기 편한 면바지를 즐겨 입었다. 요즘은 어떤가? 기능성에 화려함이 곁들여진 멋진 옷을 입고 필드에 나서는 골퍼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필자는 얼마 전까지 새 옷을 필드에서 입지 않았다. 언제나 땀을 비 오듯 쏟고 자외선에 약한 피부 때문에 얼굴은 자외선 차단제로 범벅이었다. 필드에 한번 나갔다 오면 차단제 때문에 티셔츠의 어깨 부분은 하얗게 변색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필드에 나갈 때는 제일 헌 옷을 입거나 아예 운동할 때 입는 옷이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사건을 겪고서 최근 필자의 골프복장도 달라졌다. 형광 빛이 도는 오렌지 색상의 상의에 평상시 입기 힘든 화이트 바지, 장식이 요란한 파란색 운동화형 골프화, 은빛의 허리띠는 화룡정점이다. 조금 격식을 차릴 자리에는 세련된 남색 상의에 회색이 감도는 연하늘색 바지를 입고, 회색 골프화로 마무리한다.
최근 필드에 나가면 동료들이 필자의 옷차림을 보고 한마디씩 한다. 듣기 나쁘지 않은 소리다. 겉만 요란하고 실속이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물론 누구는 실력이 없으면 갖춰 입기라도 잘 해야 한다고 하지만. 때와 장소, 상황에 맞는 골프 옷차림은 골퍼가 갖춰야 할 또 하나의 에티켓이다. 화려하진 않더라도 개성 있는 나만의 골프 스타일을 갖는 것도 필드를 나서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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