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카팔루아 골프클럽, 세 번째 이야기

하와이 마우이에서 보낸 시간은 필자에겐 실로 간만의 여유였다. 공식일정이 없을 때는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가능한 한 많은 라운드를 즐겼다. 베이 코스에서 LPGA 대회가 열리고 있을 때는 플랜테이션 코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대회 일정 전후로는 베이 코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카팔루아 골프장 플랜테이션 코스(파73, 7411야드)는 2003년 1월 PGA투어 개막전이었던 메르세데스 챔피언십에서 최경주가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골퍼들에게도 유명세를 탔다. 당시 그는 대회 3라운드에서 11언더파 62타로 코스 최저타수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플랜테이션 코스는 누구나 골프를 즐길 수 있는 퍼블릭 코스로, 그 명성에 비해서는 평범한 느낌이다. 카팔루아 리조트에서 숙박할 경우는 그린피가 20%정도 할인되었다. 전날이건 당일이건 우선 골프장에 전화를 한 후 원하는 라운드 시간을 말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예약이 가능했다. 함께 할 동반파트너가 없어도 문제 없었다. 1인 라운드도 가능했으며, 원한다면 그 자리에서 팀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국내에선 혼자 골프장에 간 적이 없는 필자였지만, 이곳에서의 라운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1인 라운드를 두세 차례 하다가 무료해질 쯤 미국인 노부부와 함께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 필자의 선배들 중에도 간혹 이들처럼 부부가 함께 골프를 즐기는 경우가 있다. 백발이 성성했지만 세련된 차림의 남편과 주름은 많았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수줍음을 타는 아내는 70세 전후였다. 라운드 중 이런저런 간단한 대화들이 오갔는데, 남편은 철강회사의 CEO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결혼기념일에 맞춰 아내와 하와이로 골프여행을 왔다고 했다.

집을 떠나 타지에 있어서일까. 그 노부부를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거리 여행과 계속되는 라운드를 즐길 수 있는 건강이 부러웠다. 그들은 라운드 내내 노부부 특유의 여유와 풍미(風味)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조금은 호사스런 여행도 즐길 수 있는 경제력이 부러웠다. 일흔 가까이에도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서인지 남은 인생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는 듯 했다.
필자 주변에도 첫 직장에서 임기를 채우고 은퇴하신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제2의, 제3의 인생을 살고 계신다. 은퇴라는 말보다 오히려 ‘새로운 도전’이 더 적당할 정도다. 그만큼 우리 인생은 길어졌는데, 과연 나는 멋진 노후를 위해서 준비된 사람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나이가 들어도 골프를 함께 칠 평생의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처음 골프를 시작하여 한참 실력을 쌓아갈 때는 그냥 ‘골프를 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런데 3년 전쯤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오더니 골프가 재미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예전에 듣던 ‘장타’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거리는 줄어들었고, 전성기의 스윙 폼도 나오지 않았다. 비즈니스상 계속적으로 라운드를 하긴 했지만, 예전에 골프에 대해 가졌던 즐거움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 년을 뒷걸음질 치고 있었을 때, 다시 골프에 대해 열정과 즐거움을 찾아준 것은 필자의 동반자들이었다. 그 슬럼프 경험 이후로 필자는 골프에 대한 가치관이 조금 달라졌다. 골프를 잘 치고 좋은 스코어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소중한 사람들과 골프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특히, 노후에 아내와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의 마지막 날, 석양에 물든 바다를 바라보면서 다음에는 아내와 이곳을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카팔루아 골프장에서 봤던 그 노부부처럼 필자 역시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어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푸른 바다가 보이는 초록빛 필드를 거닐며 라운드를 즐길 날을 기대해 보았다.

하와이 카팔루아 골프장, 첫 번째 이야기
하와이 카팔루아 골프장,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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