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소니오픈에서 극적 역전승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오픈 우승을 차지한 케빈 나.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한국 골프 팬들에게 케빈 나(38)는 애증이 엇갈린 선수다.

타이거 우즈에 비견되는 천재적 골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한 순간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냉정하게 경기하다가도 한순간 화염에 휩싸여 자신을 불사른다. 붉으락푸르락 하는 그의 얼굴에선 골프의 미덕인 평정을 찾기 힘들었다. 눈앞에 다가온 승리도 손에 쥐기 전까지는 보장할 수 없는 선수가 그였다.

그는 2003년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2004년 PGA투어에 본격 진출하자 매스컴들로부터 ‘준비된 우승후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의 골프이력을 보면 매스컴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9살 때부터 골프채를 잡은 뒤 ‘골프 신동’이라는 딱지를 달고 다녔다.

12살 때 US 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본선에 진출 미국골프협회(USGA) 주관대회 사상 최연소 출전기록을 세웠고 1999년과 2000년 로스앤젤레스시티챔피언십을 연속 제패했다. 고등학생이던 2000년 나비스코 주니어챔피언십, 핑피닉스 챔피언십, 스콧로버트슨챔피언십, 오렌지볼 국제챔피언십 등 100여개의 각종 아마추어대회를 휩쓸며 미국 주니어무대의 최고스타로 부상했다. 2001년에는 PGA투어 뷰익오픈 월요예선을 거쳐 출전권을 획득해 당시 49년 역사를 자랑하던 뷰익오픈 사상 최연소 출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세계적인 스윙 코치 부치 하먼은 그의 천재성을 인정, 파격적으로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미국 주니어골프랭킹 1위에 오른 그는 스탠퍼드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로 전향, 2002년부터 APGA(아시아프로골프)투어와 EPGA(유럽프로골프) 투어에 참가해 APGA투어 볼보마스터스 정상에 올랐다. 이어 퀄리파잉 스쿨을 거쳐 2004년 PGA투어에 본격 뛰어들었다.

그러나 PGA투어에서의 그의 활약은 예상을 벗어났다. 

2004년 서던팜퓨로클래식 공동3위, 2005년 PGA투어 투산크라이슬러클래식 준우승, FBR오픈 준우승, 2009년 FBR오픈 3위, 2010년 아놀드파머 인비테이셔널 준우승이 고작이었다. 2011년 11월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에서 그렇게 고대하던 PGA투어 첫 승을 올리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골프 팬들이 그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는 저조한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필드에서 자주 목격되는 그의 불같은 성격과 행동이 골프선수로서의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한때 그는 ‘움직이는 용광로’였다. 아무 때나 감정을 폭발시키고 골프클럽을 내던졌다. 게임이 뜻대로 안 풀릴 때의 그는 성난 멧돼지였다. 경고를 받을 정도의 늑장 플레이로 동료선수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그가 한번 화에 휩싸이면 얼마나 걷잡을 수 없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2011년 4월 발레로 텍사스오픈 1라운드 9번 홀(파4)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첫 티샷이 심한 슬라이스가 나면서 나무속으로 들어갔다. 공을 못 찾아 다시 티박스로 돌아가 드라이브샷을 날렸지만 첫 번째 샷과 비슷한 곳으로 향했다. 잠정구로 세 번째 드라이브샷을 날린 그는 덤불 속의 공을 빼내려 애썼으나 공이 나무를 맞고 다시 자신의 몸에 맞아 1벌타를 받는 등 13타 만에 겨우 러프를 벗어났다. 14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 가장자리로 보낸 나상욱은 결국 2 퍼트로 16타 만에 홀아웃 했다.

1998년 베이힐 인비테이셔널에서 파5 홀에서 18타를 기록한 존 댈리, 1938년 US오픈 파4 홀에서 레이 아인슬 리가 기록한 19타와 함께 골프 사상 최악의 장면으로 꼽힐 정도다.

우승 없는 선수가 PGA투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승을 위해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케빈 나는 스스로에게 가혹한 채찍질을 했다.

그 결과 2011년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미국의 닉 와트니와 피를 말리는 접전을 벌인 끝에 대망의 우승컵을 안았다. 210번의 좌절을 딛고 211번의 도전 만에 거둔 첫 우승이었다.

이후 상승세를 타는 듯했던 그는 2012년부터 입스(yips) 증후군에 시달렸다. 입스 증후군 때문에 샷을 날리기 전 연습 스윙을 10여 차례 넘게 해 동반자들로부터도 미운털이 박혔다. 그렇게 머뭇거리면서도 성급함은 버리지 못했다.

2013년 PGA투어 발스파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그는 2년4개월 만에 우승 기회를 맞았으나 너무 성급하게 덤비는 바람에 터무니없는 미스 샷을 연발해 존 센든(호주)에게 우승컵을 내주었다.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오픈 우승을 차지한 케빈 나가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그랬던 케빈 나가 2015년 5월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의 TPC 소크래스코스에서 열린 제5의 메이저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연습 스윙도 정상으로 되돌아와 입스 증후군에서 벗어난 듯했고 플레이의 내용도 견실해졌다. 표정도 경직되지 않고 때때로 미소를 지을 만큼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도 터득한 것 같았다.

리키 파울러(미국),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케빈 키스너(미국) 간의 긴박감 넘치는 연장 승부 끝에 리키 파울러가 우승을 차지한 이 대회에서 케빈 나는 공동 6위에 머물렀지만 끈질기게 선두권에서 버텨내 한국 골프 팬들에게 기대감을 주었다.
이후 그는 2018년 밀리터리 트리뷰트 앳 더 그린브라이어 챔피언십, 2019년 찰스스왑 챌린지, 2020년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2019년 10월이지만 2020시즌에 해당) 등 매년 우승을 보태는 데 성공했다.

이런 케빈 나가 18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와이알레이CC에서 막을 내린 새해 두 번째 대회 소니오픈에서 역전 우승에 성공, PGA투어 통산 승수를 5승으로 늘리고 페덱스컵 랭킹도 98위에서 10위로 뛰어올랐다.

한국 선수 중에는 이경훈(30)이 15언더파 공동 19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고 김시우(26)는 14언더파 공동 25위에 올랐다. 대회 전 파워랭킹 1위로 지목됐던 임성재(23)는 9언더파 공동 56위, 1~2라운드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톱10에 이름을 올렸던 최경주(50)는 5언더파로 71위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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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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