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27·KB금융그룹)가 3일(한국시간) 끝난 리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역전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사진은 스코틀랜드의 턴베리 골프장 에일사 코스 8번홀의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유서 깊은 턴베리 골프코스도 태극낭자들의 질풍노도에 무릎을 꿇었다.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코스와 함께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턴베리는 한국 선수와 한국계 선수들의 파상적인 공세에 강하게 저항하는 듯 했으나 결국 두 손을 들고 우승컵을 박인비에게 바쳤다.
우승 가능한 태극낭자들은 즐비했고 그 중에서도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을 위해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오픈의 우승컵이 절실했던 박인비가 온갖 악조건을 딛고 경이적인 플레이를 펼쳐 LPGA투어 메이저대회 7승과 함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위업을 이루었다.

지난 30일부터 2일(현지시각)까지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 아일사코스에서 열린 제 39회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오픈은 골프의 발상지에서 지구촌 여자골프는 태극낭자들이 지배하고 있음을 의문의 여지없이 증명했다.
미국의 골프 전문채널은 물론 프랑스의 르 피가로까지 이번 브리티시오픈은 한국 대 미국의 대결로 보고 ‘한국의 주도 속에 미국이 대항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현지 언론과 도박사들은 일찌감치 박인비를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했는데 이 같은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첫 라운드에서 김효주(-7), 리디아 고(-6), 백규정, 유소연(-5), 고진영(-4), 박인비, 이민지(-3) 등 해외교포를 포함한 범 태극낭자들이 언더파를 기록하며 리더보드 상단을 점령하면서 이번 대회는 필경 태극낭자들끼리의 경쟁구도가 될 것임이 예고되었으나 턴베리 골프코스는 이런 도도한 흐름을 거부하려는 듯 거친 비바람으로 태극낭자들을 시험했다.

사실 턴베리는 스코틀랜드에서도 악명(?) 높은 링크스코스로 이런 코스에 낯설고 경험이 적은 한국선수들로서는 상쾌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턴베리가 안고 있는 함정에 빠질 위험이 걱정되었던 게 사실이다. 

턴베리 골프클럽은 1901년 설립되었으나 1906년 제임스 밀러라는 골프코스 전문디자이너에 의해 45홀로 리모델링해 재개장했다. 특히 이번 대회가 열린 아일사 코스는 클라이드만에 연해 펼쳐진 정통 링크스 코스로 세계 100대 코스 중 10위권에 오를 만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프코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코스의 시그내처 홀인 파4 9번 홀은 그 유명한 하얀 등대가 보이는 홀로, 세계 베스트 18홀에 뽑힐 정도다. 1935년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진 사라젠은 이 홀을 두고 “가장 위대한 파4홀”이라고 극찬했다.
이 같은 명성에 걸맞게 턴베리에서는 미국과 영국.아일랜드 아마추어골퍼 국가대항전인 워커컵(1963), 시니어오픈(1966, 1995년), 디오픈(1977, 1986, 1994, 2009년) 브리티시 여자오픈(2002, 2009년, 2015) 등이 열렸다.
아일사 코스는 1977년 톰 왓슨(당시 28세)과 골프황제 잭 니클러스가 대접전을 벌여 톰 왓슨이 마지막 홀에서 버디로 우승한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로 더욱 유명한데 이 대결은 디 오픈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다.
골프는 물론 승마 양궁 사냥 산악자동차 산자전거 등을 즐길 수 있는 고급 복합 리조트단지로 개발된 등 이곳은 두바이정부의 자회사가 소유했던 것을 요즘 막말을 쏟아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미국의 부호 도널드 트럼프가 2014년에 구입했다.

화려한 턴베리의 역사만큼 한번 볼이 들어가면 쉽게 내어놓지 않는 깊은 러프와 항아리벙커, 언듈레이션이 심한 페어웨이와 그린, 링크스 코스 특유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태극낭자들에겐 쉬 극복하기 힘든 요소들인데 이번 대회에서 특히 시속 40km에 달하는 강한 비바람은 한겨울 복장을 하고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강한 비바람에 선두를 달리던 김효주 리디아 고가 속절없이 타수를 잃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이런 와중에서도 국내파 고진영이 선두에 치고 올라서고 ‘침묵의 암살자’ 박인비와 유소연이 저력을 발휘하면서 브리티시여자오픈은 완전 태극낭자들의 경연장으로 변했다.    

태극낭자들에 대항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미국선수들은 크리스티 커가 눈에 띄는 듯했으나 공동 13위에 머물고 미국 대표선수 스테이시 루이스는 공동 17위, 안젤라 스탠포드 공동 21위가 고작이었다. 그런대로 태극낭자에 저항한 경우는 노르웨이의 바이킹 후예 수전 페테르센(5위), 스웨덴의 안나 노르드크비스트(공동 7위), 영국의 에이미 볼든(공동 9위) 정도였다. 오히려 대만의 테레사 루(6위), 일본의 이마자토 미카(공동 7위) 등이 선전했다.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의 수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규모이고 리더보드 상단 점유율을 놓고 봐도 세계 최강이다. 올 시즌 열린 LPGA투어 대회 20 개중 비 태극낭자는 5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선수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번에 박인비의 우승으로 메이저대회 7승을 포함한 LPGA 통산 16승을 거둠과 동시에 아시안 최초, LPGA사상 7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함으로써 한국여자 골프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참가한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컵을 거의 거머쥘 뻔 했던 고진영은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리디아 고, 김효주, 이민지 등과 함께 세계 여자골프의 새로운 강자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무엇보다 흐뭇했던 것은 스스로 불가사의한 스포츠를 창안해 발전시킨 주인공으로서 자부심에 차있던 영국의 골프팬들이 골프 신생국이나 다름없는 한국의 여자선수들이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무소처럼 고고한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에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는 장면이었다.
동시에 머지않아 태극낭자 독주체제에 저항할 새로운 도전세력의 등장을 걱정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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