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존스와 공동으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코스를 설립하고 오랫동안 클럽 회장을 지낸 클리포드 로버츠. 사진출처=유튜브 인터뷰 동영상 캡처
[골프한국] 대부분의 스포츠나 도락은 심한 열병을 치르고 나면 그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없으면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취미생활이나 중독성 강한 도박 마약 등도 상당기간 쓴맛 단맛을 다 보고나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거리를 둘 수 있다. 중독의 정도가 강한 경우 순간순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받긴 하지만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골프광은 예외다. 골프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살아서는 물론 죽으면서까지 골프와의 인연을 이어가려고 처절한 기원을 하기도 한다. 형편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골프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골프와의 인연을 끈질기게 이어갈 정도의 골프광이라면 다음 생에서도 골프와 가까워지고 싶은 열망을 버리지 못한다.

진짜 골프광의 마지막 열망 중의 하나는 골프코스에 묻히는 것이다. 골프의 본고장인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골프를 사랑한 나머지 죽어서도 골프코스에 묻히거나 유골로나마 잔디와 가까워지려고 했던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제리 맥기라는 사람은 살아서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을 죽음을 통해 성취하길 희망했다. 그것은 바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코스의 12번 그린을 정규타수 내에 온 그린 시키는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그 코스에 뿌려줄 것을 당부하며 유서에까지 남겼다.

당시 대부분의 주정부는 토지소유자의 동의 없이 유골가루를 뿌리는 걸 금지하고 있었고(쓰레기 무단투기에 해당됨), 오거스타 내셔널 측도 이 코스 내에서의 장례 요청에 대해 정중하게 거절했다.
맥기의 가족은 할 수 없이 헬리콥터를 대절해 오거스타 내셔널 12번 코스 상공을 지나며 남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소량의 유골가루를 투하하는데 성공하고 기뻐했다고 한다.

골프코스 내에서의 장례 사절에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바비 존스와 공동으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코스를 설립하고 오랫동안 클럽 회장을 지낸 클리포드 로버츠가 자살했을 때 파5인 15번 홀의 유명한 호숫가에 묻혔다. 프로골퍼 데이브 마도 1997년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친지들과 함께 아버지가 다닌 세계 전역의 골프코스에 유골가루를 뿌렸는데 이 코스들 중에는 오거스타 내셔널, 로렐 밸리, 페블 비치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데이브 마는 “우리는 작은 유골자루를 갖고 아버지의 소중한 추억을 따라 즐거운 여행을 했다”고 회상했다.

달에서 골프를 쳤던 우주인 앨런 셰퍼드의 경우도 그의 유골 일부가 페블 비치에 묻혔다. 1998년 어느 바람 불던 날, 공군의 제트기들이 굉음을 울리며 페블 비치 상공을 비행하는 동안, 해군 헬리콥터가 17번 그린 근처에 그 골프광의 유골가루를 뿌렸다. 

나는 아내에게 장난 비슷하게 내가 먼저 죽으면 유골가루의 일부를 내가 즐겨 다니던 골프코스에 뿌려주고 일부는 내가 쓰던 골프클럽과 함께 묻어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다. 아들 녀석에게도 제사를 지낼 때 새로 나온 골프공과 생맥주만을 빼놓지 말고 올려놓으라고 부탁했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저승에서도 어떻게든 골프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의외로 나와 같은 골프광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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