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노래방에서는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고 카바레에서는 춤을 잘 춰야 인기가 있다. 마찬가지로 골프장에서는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왕이다. 나 역시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지난 주말 이런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경험을 했다. 골프를 잘못 쳐도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골프를 잘못 치면서도 최선을 다하며 골프를 즐기는 자세는 존경심을 자아낼 만큼 우아하기까지 했다.
초면인 그는 50대 초반으로 골프를 배운지 5년 정도 된다고 했다. 잘 하면 보기플레이를 한다고 털어놨다. 그의 스윙은 부드러웠으나 임팩트가 부족해 비거리는 짧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방향성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다운스윙이 일정한 궤도를 그리지 못함에 따라 짧은 어프로치도 실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수에 눈에 짚이는 여러 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골프를 하는 강점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의도한 샷이 나오면 스스로 박수를 치며 결과를 자축했다. 다음 샷을 할 때까지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 결과를 되새김질 하듯 음미하는 모습이 역연했다.
그렇다고 미스 샷을 했다고 태도가 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계면쩍은 듯 씨익 미소를 지어보이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아무 거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최선을 다해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집중했다.
신경 쓰는 것이라곤 혹시 자신의 플레이가 동반자들의 경기 진행에 방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살피는 정도였다. 볼이 러프에라도 들어가면 캐디보다 먼저 달려가 볼을 찾고 볼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미련 없이 로스트 볼을 선언하는 등 동반자의 플레이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무엇보다도 그는 스코어에 정직했다. 그는 어느 홀에서 한참 헤맨 뒤 캐디가 적은 스코어카드를 보곤 “두 타가 날아갔다”며 정확히 기재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캐디가 스코어를 적기 전에 자신의 스코어를 신고했다.
어느 홀에선가 볼이 날아간 숲으로 들어간 그가 한참 만에 나오자 동반자 중 한 사람이 “거기서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이제 나오느냐?”고 묻자 “여기까지 나오는데 그만한 시간이 걸리더군. 바로 이게 골프의 묘미 아니겠어!”하고 유쾌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죽을 쑨 홀에서 누군가가 버디를 하자 자신의 일인 양 박수를 치며 그에게 달려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언뜻 보면 ‘저런 얼빠진 사람이 있나’ 싶겠지만 진정 동반자의 좋은 플레이를 축하해주고 스스로 즐기는 태도는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볼이 벙커에 들어가 한 번 만에 탈출하는데 실패해도 짜증내지 않고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진지한 자세로 벙커샷을 시도했다. 두 번 만에 벙커를 탈출을 해도 스스로 “나이스 아웃!”을 외치고 보기나 더블보기를 하면서도 혼잣소리로 “나이스 보기” “나이스 더블보기”를 속삭이며 그만한 스코어로 막은 것도 잘했다는 만족감을 표현하곤 했다.
일행은 어느새 최선을 다해 게임을 풀어가면서 게임 자체를 즐기는 그의 자세에 전염이 되어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드러내는 일 없이 전혀 새로운 차원의 골프를 할 수 있었다.

이날 라운드의 주인공은 단연코 그였다. 스코어는 가장 나빴으나 골프에 임하는 자세와 즐기는 자세, 그리고 동반자를 배려하는 자세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골프를 못 쳐도 얼마든지 우아한 골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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