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의 동반자 필드가이드. 흔히 캐디라 불리는 이들은 수많은 골퍼와 동행하며 온갖 희로애락을 가슴에 담는다. 여기 라비에벨CC 박세원 필드가이드가 캐디를 대표해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골퍼들은 알지 못했던 코스에서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라비에벨CC 박세원 필드가이드
이른 아침 세수를 하다 보니 코피가 흐른다. 아마 밤새 건조했던 공기 탓에 코 안이 바짝 말랐었나보다……

간신히 지혈을 하고 출근을 하는 길엔 라디오에서 건조주의보라고 나들이 길에 불조심을 하란다. 가뭄이라더니 심각하긴 한가보다. 출근을 해서 배치를 받고 백을 실어 나가보니 인상 좋게 생긴 남자 네 분이 카트 쪽으로 걸어오신다. 손에는 커피와 파우치, 그리고 담배가 모두 들려있었고, 이미 한 분은 뽀얀 연기를 내뿜고 계셨다. 카트에 타자마자 구비돼 있는 재떨이를 보시더니 화색이시다.

“언니, 여긴 재떨이도 갖다 놓고 좋네요!? ^^”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안내 멘트가 필요한 순간이다. “네, 고객님. 카트에 재떨이가 구비돼 있으니 흡연은 카트 내에서만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라운드가 이어질수록 한 분씩 담배를 들고 티잉그라운드로 올라가기 시작하셨고, 말로만 제지를 해봤자 그다지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조용히 재떨이를 들고 티잉그라운드로 올라서서 고객 앞에 내밀었다. 깜짝 놀란 듯한 고객님의 표정에 좋지 않는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예전 회원제 골프장에서 무척이나 자주 오셨던 회원님…… 볼도 잘 치셨고, 라운드 분위기도 무난하신 분이었는데, 한 가지 단점이 엄청난 애연가셨다. 한 라운드를 하시면 한 갑은 기본이셨고, 백안에도 항상 여분의 담배가 들어있는 듯 했다. 그냥 담배만 피우시면 상관이 없는데, 문제는 장소를 가리지 않으신다는 점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느꼈던 나는 어느 날 내가 생각해도 지독하게 따라다니며 꽁초를 줍고, 카트로 모셔가고, 말씀도 드렸다. 나 때문에 볼이 안 맞는다며 9홀 내내 나와 실랑이를 벌이던 회원님께서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드시고 9홀이 끝난 후 경기과로 찾아오셔서 다시는 나를 배정하지 말아달라며 부탁하셨다.

혹시 또 같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하던 나에게 고객님은 크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하셨고, “언니처럼 센스 있게 제지하는 필드가이드는 처음”이라며 기분 좋게 그 자리에서 담배를 끄셨다. 그리고 절대로 잔디 위로는 담배를 들고 올라가지 않으시며, 18홀 내내 동반자분들의 담배제지도 도맡아 해주셨다. 그 고객님 덕분에 나는 남은 라운드를 더 이상 재떨이와 씨름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사실 담배는 사람에게도 해롭지만, 잔디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요즘처럼 건조한 시기엔 더욱이 위험하고 말이다. 새까맣게 타들어간 잔디를 본적이 있다면 아마 모래로 메워놓은 디보트에 꽁초를 떡하니 세워놓지는 못할 것이다. 카펫 같은 잔디와 깨끗한 골프장을 가꾸는 건 우리 필드가이드의 몫이기도 하지만, 찾아주시는 고객님의 도움 또한 꼭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언제까지나 함께 푸른 잔디 위를 누빌 수 있길 바란다.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