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의 동반자 필드가이드. 흔히 캐디라 불리는 이들은 수많은 골퍼와 동행하며 온갖희노애락을 가슴에 담는다. 여기 라비에벨CC 박세원 필드가이드가 캐디를 대표해 자신의눈으로 바라본, 골퍼들은 알지 못했던 코스에서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라비에벨CC 박세원 필드가이드
여유로운 주말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 맑은 아침공기가 상쾌한 하루를 예감하게 했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가장 좋아하는 날씨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실무라운드교육(신입 캐디 교육)을 위해 티잉그라운드에 올랐다. 기분 좋게 1번, 2번홀을 지나 3번홀 세컨드 지점. 한 친구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인다.
“언니, 저는 볼이 잘 안보여요. 어떻게 하면 볼을 잘 볼 수 있나요?”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고객의 시야에 거슬리지 않게 뒤쪽 45° 밖에 서서 바른 자세로 볼을 봐야한다는 것만 얘기해줬을 뿐, 볼이 안 보일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보일 리 없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으니까.

사실 날아가는 볼을 보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친구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며, 서브 중이 아닐 때에는 고객 옆에 잘 붙어서 볼보는 연습을 해 보라고 했다. 5번홀 세컨드 지점. 내 옆에 서서 열심히 볼을 보던 친구의 품 안에 생크로 높이 뜬 볼이 날아들었다. 볼 보는 법은 알려주고, 볼 조심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타구사고’ 필드를 조금 밟았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겁내는 부분이다. 둥근 볼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고, 유독 사람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아픈 경험이 있다. 여자고객 4명과 나간 라운드, 모두 나와 비슷한 실력인 덕분에 부지런히 뛰고 있었다. 사건은 그린 앞뒤로 벙커가 있는 아름다운 아일랜드 그린의 파4 홀에서 일어났다. 사건의 주인공인 고객은 티샷은 잘 날렸지만 세컨드샷이 짧아 볼이 그린 앞 벙커로 들어갔다. 시원하게 벙커샷을 한 고객의 볼은 앞에서 뒤로, 다시 앞으로 벙커를 오가기에 바빴다. 어쩔 수 없이 그린에 올라와 다른 고객의 볼을 먼저 닦으러 걸어갔다. 그 순간 묵직하고 따끔한 느낌이 견갑골(어깨 뼈) 아래쪽을 관통했다. 벙커에서 힘을 다 뺀 고객이 회심의 벙커샷으로 어마어마한 톱볼을 날린 것이었다. ‘악’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깜짝 놀라고 아파하는 나에게 그 고객이 날린 발랄한 한마디는… “와! 언니!! 정말 고마워! 언니 덕분에 해저드에 안 들어갔어!"

고객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이 악의가 없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해맑은 표정인 고객에게 차마 아프다고 말하기도 죄송했다. 나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 후로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볼은 언제나 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혹시 라운드 중 “포-어!!” 혹은 “뽀~올!!!”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주변을 살피지 말자, 그 순간 볼이 날아온다. 머리를 웅크리고 몸을 숙이는 게 최상의 대처법이다. 물론 볼을 잘 보고 미리 피한다면, 그리고 볼이 나에게로 오지 않는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무사안녕한 라운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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