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6주년 기념 독자 이벤트

샷을 멋지게 때리며, 동반자와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그대에게도 초보 시절이 있었다. 볼 찾으러 코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그 시절 말이다. 골퍼라면 누구나 잊히지 않을 첫 라운드의 추억. 독자들이 보내온 아련한 나의 초보 시절, 그날의 추억들을 소개한다.


“고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때, 우리는 골프에 푹빠져 있었습니다. 입사 동기인 우리 4명은 어느 날 골프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회사에서 차장급 이하에 대해 암묵적인 골프 금지령이 있었기에 비밀리에 골프를 즐겼습니다. 요즘처럼 스크린골프가 활성화되지 않은 시점이라 연습장과 파3 홀을 다니며 실력을 키웠습니다. 그러던 중 1명이 머리를 올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나머지 3명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였습니다. 함께 머리를 올리자고 약속했는데, 배신을 당한 거죠. 부랴부랴 3명은 대책회의를 열었고, 당장 골프장으로 가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래도 친구라고 배신자를 동행하게 됐죠. 그런데 이 친구, 유경험자라 그런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습니다. 첫 라운드 때는 이렇다, 저렇다 온갖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얘기한 것들을 토대로 준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샷 연습과 함께 우리는 큰 아이스박스를 준비했습니다. 골프장 식음료 값이 비싸다고 해서 이것저것 음식을 싸갈 생각을 한 것이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지인의 도움으로 예약한 골프장에 도착했고, 유경험자인 친구의 지시대로 골프백 하차, 주차, 입장, 락카 사용, 스타트 광장 집결, 카트 탑승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일사천리였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각자의 아이스박스를 카트에 실었습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발밑에 뒀죠. 캐디는 대수롭잖게 여기더군요.

라운드가 시작됐고, 우리는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캐디도 덩달아 이리저리 뛰었습니다. 어찌나 미안했는지요. 그래서 아이스박스에서 음료를 하나 꺼낸 뒤 살며시 전했습니다. “OO 씨, 수고 많아요.” 캐디는 썩소를 날리며 “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늘집이 등장했습니다. “잠시 쉬었다 가시겠냐”는 캐디의 말에 우리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각자의 아이스박스에서 김밥, 음료수, 빵 등을 꺼냈습니다. 친구 1명이 준비한 돗자리를 블랙 티잉그라운드에 깔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 그늘집 뒤편으로 사라졌다가 돌아온 캐디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뒷팀이 도착했고, 우리의 모습에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캐디는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는 말만 할뿐 왜 안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으니까요. 우리는 먹을 것을 다 먹었기에 플레이를 이어갔고, 라운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음식 싸가서 돈 굳었다”는 흐뭇한 마음을 안고서요. 이 이야기를 꺼내놓는 지금도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지네요. 송영길_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골프장 갈 때 볼을 가져가세요?"
스크린골프 동호회 활동 6개월, 제 골프 경력은 이게 다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스크린골프 모임에 나가서 두세 게임을 하며 제 골프 커리어를 키워왔습니다. 회원이 많은 동호회였는데 사람들이 띄엄띄엄 나오는 탓에 빠른 시간에 친해진 사람도 없었죠.

석 달째 접어들었을 때 나름 절친 팀이 꾸려졌습니다. 저는 50대 형님과 나이가 비슷한 40대 동생 2명과 팀이 됐습니다. 동호회 모임이 없을 때에도 스크린 모임을 하고, 술도 한 잔씩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머리를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이들이 발 벗고 나섰습니다. 머리를 올려주겠다는 것이죠. 날을 잡고, 부킹까지 다 챙겼습니다. 그리고 결전의 날이 됐습니다. 스크린이지만 워낙 라운드 횟수가 많고, 친했기에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스크린에서 즐겨 치던 코스(몽베르)라서 익숙함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렇게 골프장에 도착해 몸과 마음을 준비한 뒤 코스로 나갔습니다. 캐디가 순서를 정하는 제비뽑기를 했는데 아뿔싸 제가 첫번째입니다.

당황스러웠지만 티를 내지 않고 티잉그라운드에 올랐습니다. 연습 스윙을 두세 번 한 뒤 잠시 머뭇했습니다. 볼이 없었던 것이죠. 스크린에서는 항상 볼이 나오니까 필요성을 인지 못했습니다.

클럽이나 골프화, 골프웨어, 모자 등은 있는데 볼이 없었던 것이죠. 동반자를 향해 "볼이 없다"고 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골프장 오는 데 어떻게 볼을 안 가져올 수 있냐"부터 온갖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게 볼을 이리저리 굴리고, 산으로 물로 볼 찾으러 다니다가 남이 잃어버린 볼을 많이 주운 겁니다. 잃어버린 것보다 주운 게 많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죠. "골프장 올 때 볼 안가져와도 되겠네.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있어." 강진호_서울 서초구 서초동


“당신 퇴장감이야”
2099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첫 회사는 무역업계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소위 업계를 리드하는 메이저 회사였죠. 말단인 저조차 거래처에서 정성껏 챙길 정도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당시 회사에는 골프붐이 일었습니다. 스크린골프 덕분에 젊은이들도 골프를 많이 했죠. 저도 덩달아 동료들과 골프 삼매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연습장을 몇 번 가기는 했지만 대부분 스크린골프로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러던 중 동료들이 코스를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걱정보다는 설렘이 컸습니다. TV에서 보던 코스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즐겁더군요. 갖가지 장비를 구매하고 그날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라운드의 날이 밝았습니다. 동료들과 카풀을 하고, 목적지인 용인의 어느 골프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즐거움에 들떴습니다. 머리를 올려주는 동료에게 고맙다는 말, 한턱 크게 쏜다는 말, 오늘 첫 라운드지만 스크린에서 보여준 실력을 그대로 코스에서 보여주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감 가득한 제 모습은 1번홀 그린에서 사라졌습니다.

볼을 이리저리 굴리고 그린까지 오는데 땀을 한바가지 흘렸습니다. 처음 몇홀은 옆에서 이끌어주던 동료들도 지쳤나봅니다. 어느 순간 저 혼자 볼을 굴리고, 또 굴리며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7번홀 쯤인 것 같습니다. 골프장이 2 그린으로 운영되는 곳이었죠. 왼쪽 그린에 핀이 꽂혔는데 제 볼은 오른쪽 그린에 올라갔습니다. 저는 오른쪽 그린에 올라가서 볼을 봤습니다. 그리고 반대편 그린을 향해 볼을 쳤습니다.

뒤땅을 쳤는데 페어웨이와 달리 잔디가 훌러덩 뒤집어졌습니다. 볼은 1미터 정도 굴렀습니다. 다시 볼을 치고, 또 쳤습니다. 세 번을 그렇게 쳤는데 그린에서 벗어나질 못했죠. 그때 갑자기 저를 쳐다본 캐디가 소리를 쳤습니다. "거기서 볼 치면 안돼요!!!!!" 저는 무슨 말인지 몰랐죠.

잠시 후 무전을 받은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습니다. 2 그린에서 반대편 그린에 올라가면 볼을 드롭해야한다는 사실을 모른 저는 대참사를 일으켰습니다. 직원은 "퇴장감"이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수십 번 한 후 라운드를 이어갔지만 기분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 한동안 클럽을 손에서 놓았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네요.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김경훈_서울 중구 신당8동


“진작 얘기 좀 해주지”
누구나 첫 라운드 때 실수를 하죠. 당연히 볼을 제대로 못 칩니다.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첫 라운드 때 있었던 온갖 자잘한 일들을 모았습니다.

아마 대부분 골퍼가 첫 라운드를 정신없이 맞았을 겁니다. 머리 올려주는 걸 좋아하는 골퍼가 많죠. 그들이 순식간에 나타나 골프장으로 데려 가니까요.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지만 대부분 “볼을 제대로 못 맞히니 진행을 위해 7번 아이언 들고 뛰어라”입니다.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거든요.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2009년 9월 가을날, 날씨 아주 좋았습니다. 여주의 자유CC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첫 라운드가 잡힌 경기도 1시간 일찍 도착해야 한다고 해서 서둘렀습니다. 5시50분이었습니다. 골프장에서 예약시간이 6시50분, 도착 목표 시간은 밥 먹고 라운드하니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 ‘부족한 시간’ 얘기에 집중한 탓에 사전 준비를 했습니다. 골프웨어를 미리 입은 것이죠. 골프웨어에 골프화까지 착용하고 골프장에 갔습니다. 5시30분이었습니다. 주차 들어서자 갑자기 ‘이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 골프백을 베고 클럽하우스로 갔습니다. 클럽하우스에 소파에 앉아서 일행을 기다렸죠. 한참 후 전화벨이 울립니다. 언제 오냐는 겁니다.

일행은 로비로 나왔습니다. 도착했다고 하니 제 이름이 없어서 안 온줄 알았답니다. 언제 옷을 갈아입었나, 백은 뭐냐 이런저런 얘기가 쏟아집니다.

짚고 갑니다. 골프장 가시면 클럽하우스 가야합니다. 직원이 기다렸다가 앞까지 자동차를 끌고 트렁크 속 골프백을 내려줍니다.

주차 후 클럽하우스로 들어갑니다. 프론트에 예약자와 예약시간을 말하면 이름표를 줍니다. 거기에 이름을 적고 라커키(번호)를 받습니다. 정해진 라커에서 옷 갈아입고, 식당이든 코스로 나가면 됩니다. 저처럼 골프백 갖고 들어가시지 마세요. 배성일_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삼촌, 다른 홀로 티샷하면 안 돼”
30대 후반으로 구력 5년, 핸디캡 12인 골퍼입니다. 처음 골프를 접한 것은 10년 전입니다. 후배가 연습하는 연습장에 놀러갔다가 골프를 접했죠. 7번 아이언 풀스윙까지 했는데 클럽을 구매하려니 돈이 많이 들더군요.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이후 회사를 다니며 골프를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연습을 하고, 클럽을 사고, 골프웨어도 샀습니다.

언제 올지도 모를 첫 라운드의 기회를 엿보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라운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연습장 월례회 공지가 뜬 것이죠.

막상 첫 라운드가 잡히니 걱정이 엄습했습니다. 석달동안 7번 아이언 풀스윙을 한 게 다였습니다. 그날부터 맹훈련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잠을 못 이루고 단체 버스가 기다리는 장소로 1시간이나 일찍 나갔습니다. 한참 후 일행이 모였고, 버스는 목적지 군산CC를 향했습니다. 그런데 골프장에 도착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티오프시간에 늦었다며 첫 홀을 건너뛰어야 한다는 골프장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일단 같은 조에 편성된 40~50대 여성 세분과 카트에 올랐습니다. 첫 홀을 건너뛴 것에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셔서 분위기가 싸~~했습니다.

그렇게 역사적인 첫 티샷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초보인 저 먼저 치라는 겁니다. 난감했죠. 일단 초보 티를 안 내고 티잉그라운드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티를 꽂고 연습스윙을 한 뒤 어드레스를 취했습니다. 그때 일행이 “삼촌~~~~~~~”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페어웨이 반대편을 향해 어드레스를 한 겁니다. 자칫 1번홀 페어웨이로 볼을 칠 뻔했습니다. 다행히 첫 티샷은 페어웨이에 안착했습니다.

묵묵하게 집중한 탓인지 더블보기, 트리플보기로 막으며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그늘집. 쌀쌀한 날씨니 정종을 한잔씩 했습니다. 저는 첫 라운드라는 사실을 밝혔고, 누님들은 “왜 진작 얘기 안 했냐”며 난리 부르스였습니다. 다음 홀부터 레슨을 해주시겠다고 하더군요.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늘집 비용은 제가 내겠다고 했습니다. 누님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여기 얼마냐”를 외쳤습니다. 직원은 “이름과 티오프 시간만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됐다”며 “지금 계산하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네요.

다시 돌아온 코스. 볼이 제대로 안 맞았습니다. 누님들의 끊임없는 레슨이 혼란을 불러온 것 같습니다. 스코어는 109타로 집계됐습니다. 제대로 타수를 셈했으면 120타는 훌쩍 넘겼을 겁니다. 누님들은 어디에 계실까요. 제가 밥 한번 사고 싶습니다. 심태섭_대전 유성구 상대동


오리를 때려잡은 생애 첫 라운드
그날은 몹시 맑았습니다. 연못에 거위와 오리가 헤엄치고 멀리 포토맥 강이 보이는 골프장에 들어섰을 때의 기분은 정말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클럽하우스 입장을 거부당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죠.

때는 1999년 6월 초순. 미국 메릴랜드주의 프라이빗 클럽인 TPC포토맥에서였습니다. 명문 골프장에 입장할 때 재킷을 입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깜빡했죠. 집에 가서 옷을 가져올 수도 없고, 방법이 없었습니다. 골프장에서 낸 아이디어는 일행 중 1명이 입장한 후 입고 온 옷을 되받아 입고 들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편법으로 가까스로 라운드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골프를 시작한지 불과 2주가 된 즈음이었습니다. 연수생 신분으로 미국 동부에 와 있는데, 회사 지사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골프 라운드를 제안해 참석한 것입니다. 골프채도 친구한테 빌린 터. 연습장에 몇 번 나가 본 것이 전부였던 상태. 볼을 맞히는 것부터 힘이 들었습니다.

사건이 터진 것은 3~4홀이 지난 뒤였습니다. 티샷이 훅성 타구로 연못을 향해 날아가는 게 아닌가요. 아니나 다를까, 연못에서 새들이 날아올랐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오리 한 마리가 볼에 맞아 물에 떠 있었습니다. 즉시 마샬에 신고했죠. 마샬은 미국 야생동물보호법으로 최고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고 겁을 줬습니다. 마샬이 오리를 건져내는 동안 다른 일행은 라운드를 이어갔고요. 저도 간단히 조사받은 후 라운드를 했지만 정신은 반쯤 나가버렸습니다. 이후 거의 매홀 양파를 기록해서 최종 스코어가 140타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며칠 뒤 골프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고의가 아니었으므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얘기였습니다. 안도하면서도, 다시는 골프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 일이 트라우마가 돼 골프채를 다시 손에 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흐릅니다. 최원석_서울 서초구 반포본동


연습생 꿈 을 날려버린 첫 라운드의 추억
저의 첫 라운드는 2003년이었습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는데 우연히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죠. 지금처럼 스크린골프가 있던 시기도 아니고, 닭장 같은 곳에서 연습을 할 때였죠. 아르바이트였지만 대학 교양체육시간에 배웠던 골프스윙을 기본으로 소위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프로님의 칭찬에 힘입어 골프 선수를 꿈꾸던 제가 기억납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기에 주위의 반대가 심했습니다만 오기와 집념을 가지고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개월 후, 제게 첫 라운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저렴하고 부킹도 쉬워졌지만 그때는 아니었습니다. 어렵사리 정규 코스 옆에 따라붙은 9홀 퍼블릭 코스에서 머리를 올리게 된 것이죠. 포천 아도니스CC 퍼블릭 9홀이었습니다. 예약 없이 선착순이었습니다. 골프장에 당시 이 골프장은 도착해 백을 놓은 순서대로 플레이하는 것이죠. 4명이 안 가도 짝을 맞춰주고, 캐디도 없이 수동카트를 끌고 다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드디어 첫 티샷의 순간이 왔습니다. 심한 내리막 파4 홀이었습니다. 자욱한 안개가 끼어있는데 첫 티샷을 했습니다. 볼이 제법 잘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페어웨이에 가 보니 볼이 안 보이는 겁니다. 완전 실망했습니다. 그때 동반한 프로가 “도로를 맞은 것 같으니까 앞으로 더 가보라”고 했습니다. 볼이 도로를 타고 그린 근처까지 가 있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그렇게 첫 홀에서 파를 기록했습니다.

동반자들의 찬사에 으쓱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첫 시작과 달리 뒤이어서는 참사의 연속이었습니다. 티샷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리고, 이리저리 없었습니다. 9홀 라운드에 볼 찾아 다니기에 정신이 볼을 20개는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나름 연습생이라며 룰을 최대한 지키려 애썼는데, 이제 와서 보니 엄청난 민폐였습니다. 그날 후 이틀동안 몸살을 앓았습니다. 프로 골퍼의 꿈도 접었습니다. 지금은 골프 관련 회사에 다니며 가끔 골프를 즐기는 아마추어 골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생 첫 라운드의 추억을 잊을 수 있을까요. 이재용_서울 노원구 월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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