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밀리미터 홀에 골퍼의 백팔번뇌가 담겨있다. 홀의 위치는 페어플레이가 가능한 지역에 꽂혀야 한다.

골프의 희비는 홀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은 볼을 뱉어내기도, 절묘하게 빨아들이기도 한다. 퍼팅한 볼이 홀에 빨려 들어가 울리는 ‘땡그랑’ 소리는 골퍼의 청각을 자극해 행복 도파민을 생성하는 강한 중독성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퍼팅에 실패할 때마다 홀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다.

이러다 보니 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고 크기가 얼마일까, 혹은 홀의 크기가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홀의 표준 사이즈는 직경 4.25인치(108밀리미터)다. 골프의 일반룰이 골프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 생겼듯이 홀의 크기도 머슬브루로부터 지원을 받은 세인트앤드루스의 로열 앤드 앤센트 골프클럽의 규정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1891년 제정된 새로운 규정을 통해 홀의 크기를 모든 골프장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정했다.

홀 크기를 108밀리미터로 정한 것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근처의 머슬브루(지금은 대중제 9홀 골프장인 레벤홀 링크스)에서 1829년에 처음으로 개발해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활용했다. 그때 사용했던 홀 커터는 아직도 로열 머슬브루의 클럽하우스에 전시돼 있다. 불교에서 중생의 고통을 백여덟 가지로 규정해 백팔번뇌라고 하는데 홀의 크기가 108밀리미터인 것은 홀인을 위한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홀의 위치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홀 위치 선정은 코스레이팅, 코스설계, 그리고 관리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 홀은 까다롭지 않으면서 공정한 플레이가 가능한 위치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골프협회(USGA)에서 권장하는 홀핀 설치 가이드라인에서는 설계자의 의도를 감안하고, 기상 상태, 잔디 상태, 그린 상태 등을 잘 파악해 설치하고, 원하는 샷을 할 수 있도록 그린 에지에서 최소 네 걸음 이상 안쪽에 설치해야 한다. 홀 주변 반경 3~4피트(90~120센티미터) 범위는 평탄한 지역에 설치한다. 홀을 뚫고자 하는 곳의 잔디 상태를 고려해야 하고 홀은 수직으로 뚫어야 한다. 단 그린 지형의 경사에 따라 수직으로 뚫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전후좌우, 그리고 중앙이 균형에 맞도록 배치한다. 즉 한 쪽으로 치우친 위치 선정은 안된다. 홀의 직경은 108밀리미터, 깊이는 최소한 101.6밀리미터(4 인치) 이상 , 원통은 지면으로부터 최소한 25밀리미터(1인치)아래로 묻어야 한다.

얼마 전 한 골프매체에서 국내 골프장의 홀 위치에 대해 쓴 소리를 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에서 꼬집은 내용은 홀의 위치 설정이 올바르지 않고 오로지 잔디 보호 측면에서 편의적으로 설치된다는 것이었다. 골퍼 입장에서 보면 100%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한편 잔디를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는 그린키퍼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코스 관리나 세팅의 궁극적 목표는 공정한 플레이와 좋은 샷밸류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최적의 그라운드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면 플레이를 고려한 홀 위치선정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심규열
한국잔디연구소 소장
월드컵조직위원회 잔디전문위원
한국잔디학회 회장
경상대학교 겸임교수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