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의 지반은 스펀지의 보수력과 배수성, 그리고 해변 모래밭의 내답압성이 적용돼 있다.

골프코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그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린에서는 볼을 굴려 홀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표면이 매우 정교해야 한다. 또한 많이 밟아도 토양이 단단하게 굳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비가 많이 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잘 빠져야 한다. 때문에 그린의 뿌리층 토양은 이러한 세 가지 명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매우 과학적인 구조로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린의 지반구조에는 어떠한 과학이 숨어있는 것일까. 바로 스펀지의 보수성과 배수성, 그리고 해변의 모래와 같이 아무리 밟아도 단단하게 굳지 않는 내답압성의 원리가 숨어 있다.

먼저 강우 시에도 물이 잘 빠질 수 있는 배수성을 갖춰야 하고 평소에는 적당한 수분을 함유해 잔디의 생육이 가능한 구조라야 한다. 그래서 30cm 깊이의 모래로 조성돼 있다. 시간당 150~250mm 이상의 물이 빠질 수 있도록 설계된 것. 이러한 원리는 두꺼운 스펀지에 물을 부었을 때 물이 빠지는 현상에서 착안한 것이다. 스펀지에 물을 부으면 물이 스펀지의 공극에 완전히 채워질 때까지는 물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공극이 물로 가득 채워지면 그때부터는 중력이 작용해 공극에 포함된 물이 한꺼번에 쭉 빠져 나가게 된다. 그래서 경기 중에 비가 많이 와도 그린에 물이 고이지 않고 플레이가 가능한 조건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밟아도 단단하게 굳지 않아야 한다. 그린은 골프코스 전체 면적의 2~3% 정도로 매우 작은 부분이다. 그러나 경기를 하는 모든 골퍼들은 그린을 거쳐 간다. 또한 그린 깎기, 시비, 시약, 갱신작업 등 그린 관리를 위해 매일 무거운 장비로 답압이 이뤄진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그린표면이 단단하게 굳어 배수가 어렵고, 토양이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잔디의 뿌리가 자랄 수 없는 조건이 된다. 그래서 많은 골퍼와 무거운 장비에 의한 답압에도 토양이 굳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린 토양이 이러한 답압에도 불구하고 굳지 않은 이유는 해변의 백사장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해변 백사장의 모래는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마모돼 각이 지지 않아 둥근면을 형성하고 모래입자의 크기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입자와 입자 사이에 공극이 생겨 굳지 않는 것이다.

쉽게 설명한다면 똑같은 크기의 구슬을 모아 놓은 것처럼 구슬 사이사이에 일정한 공극이 만들어지고 그 공극 사이로 물이 잘 빠져 뿌리가 필요로 하는 산소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모래 입경이 큰 사이즈에서부터 작은 사이즈까지 다양하게 분포됐다면 큰 입자 사이의 공간에 작은 입자들이 끼워져 공극이 메워지고, 단단하게 굳는다. 그래서 그린 상토층에 사용하는 모래는 채로 걸러서 0.25~1mm 크기의 모래를 모아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그린에서 무심코 퍼팅하고 지나치지만 관리자들은 늘 좋은 퍼팅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섬세하고도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좋은 퍼팅면을 만드는 것은 관리자의 몫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그린을 사용하는 골퍼에게도 작은 부분의 몫이 있다고 본다. 특히 무덥고 습한 여름철에는 잔디의 생육이 가장 어려운 시기여서 퍼팅 시 스파이크로 잔디에 상처를 입히거나 잔디를 짓눌러 망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골프는 에티켓 운동이다. 다른 플레이어를 위해 배려가 필요한 운동이다. 스코어를 잘 내는 플레이어보다 잔디를 사랑하고 아끼는 매너 좋은 플레이어가 진정한 골퍼가 아닐까.


심규열
한국잔디연구소 소장
월드컵조직위원회 잔디전문위원
한국잔디학회 회장
경상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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