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에 올라있는 캐이프 키드네퍼스(38위, 사진 위)와 뮤어필드(48위, 아래)
<골프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 1위에 오른 파인밸리 1번홀 전경과 계획평면도
오크몬트(8위) 18번홀 그린 주변 경관과 계획평면도
로열도노크(14위) 8번홀 전경과 계획평면도
로열도노크(14위) 14번홀 전경과 계획평면도
골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떻게 생긴 코스가 좋은 코스인가”라는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생각과 주변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25년 이상 국내 지형을 설계하면서 국내외 전문가들과 한국형 자연환경을 연구해왔다. 그 결과 시공 전인 설계 단계에서 평면도로 의논을 주고받다 보니 실제 코스 조성 후 공간의 결과 물이 평면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느끼곤 한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제 공간에서는 전혀 감지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축소된 설계도의 평면 이미지였던 것을 가지고 갑론을박 논쟁을 벌일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가 파배열이다. 즉 각 코스별로 1번홀부터 9번홀까지의 아홉 개 홀을 계획함에 있어 세가지 종류(파3, 파4, 파5)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다. 두 번째는 동선에 대한 계획으로, 홀내 구간과 홀과 홀을 연결하는 홀외 구간에 대한 선행과 경사도, 그리고 경관 등을 결정하는 계획이며, 세번 째는 플레이 거리 계획이다. 그 밖에도 클럽하우스 위치에 따른 코스 조망, 벙커의 개수, 카트로 위치 설정과 같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 하며, 무엇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환경적 계획의 수립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의도와는 다르게 실제 코스가 완성되고 나면 그런 고민은 언제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질 때도 많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로지 설계도 속에서만 좋은 코스의 의미를 찾는 것은 관계된 이들 각자의 의도대로 설계를 완성시키기 위한 괜한 에너지 낭비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상적이라고 얘기하는 파배열의 요건은 18홀 파72를 기본으로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를 절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이름난 뛰어난 코스나 토너먼트 개최 코스들 중에는 예외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세계 100대 코스’ 1위를 자랑하는 파인밸리GC(USA/7,057야드, 파70), 로열카운티다운GC(북아일랜드/7,186야드, 파71), 로열도노크GC(스코틀랜드/6,704야드, 파70), 케이프키드네퍼스(뉴질랜드/7,147야드, 파71), 써닝데일GC(영국/6,627야드, 파70) 등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유수한 코스들이 ‘세계 100대 코스’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그 예다.

또한 파72를 절대적으로 고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웃 코스 인 코스가 파36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8홀 파72로 하더라도 파35, 파37로 조합이 가능한데 이는 외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곳도 보기 힘들다.

이와 같이 파배열의 정형화 현상은 코스 설계에서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 환경친화적 접근이라기 보다 외형을 갖추는 것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 관념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9홀당 파배열의 유형은 파 3홀 2개, 파4 홀 5개, 파5 홀 2개라는 것이 공식처럼 됐고, 거기에 파3 홀은 경기진행의 문제로 초반이나 마지막에 배치하는 것을 피하고 티잉그라운드 근처에 티하우스를 만들어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그런데 티하우스는 네 번째, 혹은 다섯번째 홀을 마치는 곳에 배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므로 첫번째 파3 홀은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 홀이 되고 있고, 같은 파의 홀이 3개 이상 연속 배치되면 플레이가 지루해질 수 있으니 지양한다. 또한 파3 홀과 파5 홀을 적절히 조합해 진행 속도의 완급 조절도 해야 한다. 이렇게 파배열 하나만으로도 계획 및 설계에 반영해야 하는 규범이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이런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파배열의 유형을 보면 4, 4, 5, 3, 4, 5, 3, 4와 같은 형태가 된다. 여기에서는 첫 번째 파3 홀이 다섯 번째가 되는데, 첫 번째나 마지막에는 파3 홀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다고 보면 한 홀 건너 같은 파의 홀이 배치되는 것도 좋않기 때문에 결국 어떠한 경우에도 첫 번째 파3 홀은 여섯 번째에 놓여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파3 홀들은 각각 다섯 번째와 여덟 번째 홀을 벗어날 수가 없고, 파5 홀들만 앞뒤 파4 홀들과 자리를 바꿀 수 있는데 그나마 첫 번째 파5 홀이 1번홀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파3 홀이 고정돼 있고, 파5 홀이 1번이 되면 그사이에 파4 홀 3개가 연속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외의 명 코스들은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따를까? 그야말로 원칙과는 관계 없이 한홀 한홀 자연지형과 잘 어울리는 모양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전체적인 파배열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우선은 각각의 홀들이 놓여지는 위치의 자연조건(지형, 식생, 호수, 계류, 해수면, 암반 등 홀의 공략적 또는 경관적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언급했던 파배열의 기준을 엄격하기 적용하기 보다, 마치 이를 무시한 것 같은 코스들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심지어 18홀 전체가 파72보다 많거나 적게 조성된 곳들도 눈에 띈다.

어떤 코스는 파3가 3개, 파4가 3개, 파5가 3개로 배치돼 파36을 이루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국내의 파인크리크CC 파인 코스가 4, 5, 3, 4, 5, 3, 5, 3, 4로 파배열이 돼 있는데도 이 코스에서 플레이한 골퍼 대부분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좋은 골프코스를 정의할 수 있는 아이템들은 코스의 제원, 공략적 특성, 경관 및 환경 등 매우 다양하지만 국내 코스와 외국 코스의 파배열이 보여주는 특성 하나만 비교해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규범적 계획보다는 환경에 적응하는 태도로 계획한 코스들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공략적으로도 다양한 특징을 가지게 된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의 코스들이 산악지형에서 한정된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가지고 개발되다보니 환경친화적 개발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크지만 어쨌든 좋은 코스는 그것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운 코스를 말하며, 이것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았지만 지금 검토하고 있는 지형에 가장 어울리는 새로운 패턴을 실행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용감한자가 미인을 얻을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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