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5.16, 8.15, 10.26의 교훈.

겨울이 깊어짐은 봄이 가까이에 와있음을 의미한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 벌써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지만 필드는 여전히 누렇게 겨울잠(휴면)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맘때면 겨울잠을 자던 골퍼들도 푸르른 필드를 그리워하며 언제쯤 그린 위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을까 고대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언제쯤 그린업이 될까? 매년 되풀이되는 상황이지만 막상 때가 되면 지난해에는 언제쯤 그린업이 됐던가하고 궁금해 하게 된다. 그린업 시기를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굵직한 사건과 연관해보면 된다. 중부지역의 한국잔디를 대상으로 하면 4월19일(4.19혁명)에 잔디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완연한 그린업을 이루지는 못하는 시기다. 5월16일(5.16군사정변)이면 4월 말부터 돋아난 새싹들이 완전히 그린업을 이룬다. 이때부터 골퍼들이 고대하던 완연한 그린을 만끽할 수 있다. 이시기부터 잔디는 점점 더 좋아지면서 8월15일(8.15 광복절)이 되면 절정을 이뤄 최고의 품질을 보인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한국잔디 생육은 점차 쇠퇴하고, 10월26일(10.26사태)에 누렇게 휴면에 들어간다.

다시 정리하면 한국잔디의 그린업 시작은 4월말부터 시작돼 5월말이 되면 완벽한 녹색을 완성한다. 그리고 점차 그린업이 향상돼 8월말에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게 된다. 이후 10월말이 되면 휴면상태에 들어가 황색의 그라운드를 만들게 된다. 남부지역은 중부지역에 비해 봄이 약 2주 정도 빠르고, 가을은 2주 정도 늦다는 점을 감안하면 된다.

골퍼들은 1년 내내 푸른 잔디, 에버그린을 원한다. 하지만 잔디는 기후조건에 의해 에버그린이 될 수도 있고, 휴면에 들어갈 수도 있다. 즉 연중 잔디의 생육이 가능한 적도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에버그린이 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중위도 지역에서는 어떤 잔디도 연중 녹색을 유지할 수 없다.

잔디의 휴면은 온도와 습도에 의해 좌우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온도에 의해 잔디의 휴면이 결정되는데 한국잔디는 따뜻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난지형잔디로서 생육최적온도가 25~35℃이고 15℃ 이하로 떨어지면 휴면에 들어간다. 하지만 소위 양잔디라고 하는 벤트그래스와 켄터키블루그래스는 서늘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한지형잔디로 생육최적온도가 15~25℃이고 5℃ 이상의 조건에서는 녹색이 유지된다. 그래서 제주지역의 경우 겨울에도 휴면에 들어가지 않고 녹색이 유지되는 것이다.

잔디가 누렇게 변하는 현상 즉 휴면은 잔디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잔디는 생육에 한계가 되는 고온과 저온, 그리고 건조한 조건에 처하면 불필요한 영양분의 손실을 막기 위해 생육을 멈추고 지상부 잎의 생육을 포기해 죽게 만든다. 이후 다음을 위해 매우 중요한 줄기 및 뿌리 일부만 생존한 채로 겨울을 나게 된다. 이렇게 살신성인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딘 월동 잔디는 또 다시 골퍼들에게 멋진 그린을 제공해 줄 것이다.


심규열(한국잔디연구소 소장)
월드컵조직위원회 잔디전문위원
한국잔디학회 회장
경상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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