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 김운용의 세계 100대 코스를 가다

김운용 대표
“억!” 깊은 러프에서 볼을 치던 그는 외마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클럽이 억센 러프에 감기며 그 충격이 허리에 전해졌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통증으로 이어졌다. 고통에 온몸이 경직된 그를 부축해 클럽하우스로 옮기며 “이렇게 험난한 일정이 또 있을까”하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악몽과 동반한 선진 클럽 문화 경험

지난 2004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6월15일부터 27일까지 열한 곳의 코스를 둘러보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2003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유명 골프장을 두루 살펴보며 견문을 넓혀 나인브릿지를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라”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지시를 받고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를 둘러본지 일년 만이었다. 영국의 유명 클럽을 통해 ‘최고의 클럽은 최고의 회원들이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했기에 뜻이 맞는 회원 몇 명이 동행했다. 그들과 함께 최고의 클럽 문화를 눈과 마음으로 보고 나인브릿지를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자는 좋은 취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일정은 순탄치 못했다.

미국 동부부터 서부까지 이어지는 일정의 첫 목적지는 오션 폴리스트였다. 일행은 클럽에 도착한 후 호텔에 짐을 풀고, 코스 내 드라이빙레인지로 향했다. 명문 코스에 도전함에 있어 기량을 최고로 끌어올리고, 시설도 둘러보자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일행 중 김성도 회원은 평소 연습을 전혀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오직 코스에서 골프를 즐기던 그로서는 달갑지 않은 연습장 행이었지만 일행과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첫 어프로치샷을 했고, 두껍게 튀어 오른 흙이 얼굴에 쏟아졌다. 흙이 들어간 눈이 퉁퉁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인근 약국을 뒤져 안약을 구해다가 밤마다 눈에 넣어줬지만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눈병이 차도를 보일 즈음 또 다른 목적지 시내콕에 이르러서는 지독한 감기몸살이 찾아왔다. 그를 홀로 남겨둘 수 없었기에 그해 US오픈 개최지였던 시내콕을 눈앞에 두고 호텔에서 텔레비전 중계를 시청할 때의 씁쓸함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이달에 소개할 윈지드 풋(웨스트 코스 22위, 이스트 코스 75위)에 도착한 것은 25일이었다. 다행히 그의 몸 상태가 좋아져 내심 ‘이번에는 코스에 집중할 수 있겠다’며 안도했다. 2011년 세계 100대 코스에 변함없이 이름을 올린 윈지드 풋은 그 명성에 어울리는 멋진 자태를 뽐냈다. 일행은 두 코스를 모두 살펴볼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떴고, 먼저 웨스트 코스로 향했다.

1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서니 좁은 페어웨이와 이를 감싼 아름드리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평지에 조성된 코스라 페어웨이는 평탄했지만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페어웨이를 좁혔고, 그린 주변에 많은 벙커를 배치했다. 대부분 포대그린이었다. 우리는 첫 티샷을 한 후 페어웨이로 이동하며 왜 이곳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지 감상에 젖어들었다. 새로운 코스를 경험하는 순간이었고, 더욱이 세계 100대 코스였기에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그때 그 기분은 황홀하다는 표현이 제격일 것이다. 하지만 볼이 러프로 들어간 김성도 회원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순간 황홀함을 느끼던 평온도 희뿌연 연기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내게는 안약과 감기몸살약을 챙겨주던 것에 이어 허리마사지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춘 윈지드 풋

역사와 전통을 갖춘 이곳의 탄생 배경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뉴욕의 애슬레틱 클럽 회원들은 골프 라운드를 위해 롱아일랜드에 있는 링크스 코스를 자주 찾았다. 하지만 이동거리가 길어 불편한 점이 많았다. 때문에 회원들은 인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골프장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당시 코스 설계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틸링 거스트에게 설계를 의뢰해 윈지드 풋을 탄생시켰다. 1923년 웨스트 코스로 문을 열었고, 이후 이스트 코스를 개장하며 오늘날 36홀 코스의 규모를 갖췄다.

윈지드 풋은 오랜 역사와 전통만큼 이야깃거리도 많다. 먼저 클럽에는 두 명의 소속 프로가 있었다. 바로 타이거 우즈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지도한 교습가 부치 하먼의 아버지 클라우드 하먼과 클래이드 우드다. 클래이드 우드는 1941년 마스터스와 US 오픈에서, 클라우드 하먼은 1948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이들의 우승이 이색적인 것은 근래에는 보기 힘든 클럽 소속 프로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점이다(클라우드 하먼의 메이저 우승은 클럽 소속 프로로써 마지막을 장식했다).

클럽의 정회원은 500명으로 레귤러 회원 325명, 주니어 175명이다. 회원 가입 조건이 까다로운데 회원의 추천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고, 유대인을 회원으로 받지 않는 골프장으로 유명하다. 회원권 가격은 10만 달러, 연회비는 6,000 달러다. 1927년 US 오픈, 1930년 PGA 챔피언십, 1931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토미 아머가 이곳의 회원이기도 하다.

한편 유명 골프장은 코스 외에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페블비치가 클럽하우스에서 바다가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면 윈지드 풋은 중세 유럽풍의 웅장하고 멋진 클럽하우스로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레스토랑과 그릴룸은 회원들의 사교공간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같은 배경 속 다른 웨스트, 이스트 코스

윈지드 풋의 두 코스는 평지에 워터해저드가 거의 없다는 동일한 배경을 갖췄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웨스트 코스는 페어웨이를 감싼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나무에 둘러싸인 페어웨이는 더욱 좁게 느껴진다. 계속 자라나는 나무에 코스가 가려져 주기적으로 나뭇가지를 잘라낸다고 한다. 평지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그린 앞에 깊은 벙커를 많이 배치했다. 그리고 그린은 종잇장을 구겨놓은 것처럼 심한 굴곡을 줬다. 클럽하우스에서 코스를 바라봤을 때 평탄한 페어웨이와 울창한 숲 때문에 정원을 내다보듯 편안함을 느꼈지만 실제 코스에 섰을 때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외지인들은 각종 대회를 개최해 유명세를 얻고 있는 웨스트 코스를 선호하지만 회원들은 오히려 이스트 코스를 선호한다. 웨스트 코스처럼 다양한 모험을 선사해 재미있지만 길이가 500야드 정도 짧아 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채롭고, 재미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미적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골퍼에게는 이스트 코스가 훨씬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좀 더 쉽게 말한다면 이스트 코스는 난이도와 재미를 적절히 조화시켰고, 웨스트 코스는 훨씬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타이거 우즈 “내가 프로인지 생각”

언젠가 잭 니클러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스를 난이도별로 1점에서 10점까지 평가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오거스타 내셔널과 세인트앤드루스, 오크 힐, 세미뇰 등에 8점을, 페블비치와 발투스롤에 10점을 줬다. 그리고 윈지드 풋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남겼다. “11점도 모자라 12점은 줘야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윈지드 풋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코스다. 이러한 사실은 각종 토너먼트를 개최하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1929년, 1959년, 1974년, 1984년, 2006년 US 오픈과 1997년 PGA 챔피언십, 1940년, 2004년 US 아마추어 대회를 개최한 윈지드 풋은 출전 선수들이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그리고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조차 윈지드 풋을 경험한 후 “내가 프로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웨스트 코스는 평소에 7,264야드 파72로 구성된다(이스트 코스 6,750야드, 파72). 대회가 개최될 때는 7,309야드로 늘리고 파70으로 줄인다. 난이도가 더욱 높아지는 이유다.

한편 1996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마크 부륵스의 말 때문에 윈지드 풋은 더욱 악명 높은 코스가 됐다. 그는 “윈지드 풋에는 어려운 홀 여섯 개와 매우 어려운 여섯 홀, 그리고 죽음의 여섯 홀이 있다”고 말했다.

Tip

죽음의 여섯 홀

1번홀

450야드, 파4.

왼쪽으로 살짝 휘는 도그렉홀이다. 페어웨이가 매우 좁다. 그린 좌우에 벙커를 배치한 홀로써 스타팅홀로는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

3번홀

240야드, 파3.

그린 좌우에 깊은 벙커가 있다. 그린 가장자리에 볼을 떨어뜨리면 벙커로 흘러내려간다.

9번홀

489야드 파4.

평소에는 514야드인 파5홀이다. 메이저 대회가 개최된 코스 중 가장 긴 파4홀이다. 빽빽한 나무와 깊은 러프가 볼을 집어삼킨다.

10번홀

188야드, 파3

그린이 작아서 정확히 188야드를 쳐야 한다. 볼이 좌우로 살짝만 벗어나도 깊은 벙커로 들어간다.

12번홀

640야드, 파5

메이저 대회 역사상 두 번째로 긴 파5홀이다. 왼쪽으로 휘는 도그렉홀로써 아홉 개의 벙커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18번홀

450야드, 파4.

왼쪽으로 휘는 도그렉홀에 그린이 높게 솟아 있다. 페이드샷을 구사해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티샷을 보내야 세컨드샷이 쉽다. 그런데 그곳에 벙커가 있다.

Tip

윈지드 풋의 대학살

1974년이었다. 윈지드 풋에서 US 오픈이 개최됐는데 헤일 어윈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그의 최종 스코어가 7오버파였다. 역대 최악의 스코어로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다는 점에서 윈지드 풋의 대학살로 불린다. 챔피언이 7오버파라면 뒤로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지 않은가.

무지개의 전설

1997년 PGA 챔피언십이 윈지드 풋에서 개최됐다. 당시 메이저 챔피언은 데이비드 러브3세였다. 그는 메이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같은 해 아버지를 잃은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우승 퍼트를 성공시키던 순간 18번홀 뒤로 무지개가 떴다는 일화가 있다.

좋은 문화를 흡수한 나인브릿지

시내콕에서 US 오픈이 개최됐을 때 일행들과 갤러리로 참관할 계획이었는데 포기했다. 아픈 회원과 함께 골프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4km 정도 줄서있었다. 네 개의 게이트로 입장하면서 카메라와 휴대전화기 등 경기에 지장을 주는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그 문화가 너무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래서 지난해 해슬리나인브릿지에서 개최된 최경주 CJ인비테이셔널 대회 때 ‘휴대전화기와 카메라 반입하지 않기’ 캠페인을 벌였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였는데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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