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비거리는 달리지만 집중력·쇼트게임·퍼트는 뒤지지 않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후배들 안쓰러워"

"내가 누군데…이런 생각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했다. 이 나이에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거 하나는 성공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후배들 보면 안타깝다. 경치도 보면서 골프를 쳤으면 좋겠다"

강수연(41)은 한국여자골프 첫번째 '황금세대'의 일원이다. 1976년생인 강수연은 박세리(40), 김미현(40)과 2년 후배 한희원(39) 등과 함께 한국 여자 골프를 인기 종목으로 끌어 올렸다.
이들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 언니들과 대등하게 겨뤘고 프로가 된 뒤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를 석권했다.
한국 여자 골프가 세계 최강으로 떠오른 건 이들 '황금세대'의 활약이 밑거름됐다.

박세리, 김미현, 한희원은 이미 은퇴했지만, 강수연은 여전히 현역이다. 그냥 현역이 아니다. 지난 5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리조트 트러스트 레이디스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준우승 한번에 3위 한번을 포함해 톱10 입상 네번에 상금순위 19위를 달리는 정상급 실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달 13일 NEC 가루이자와72 대회를 마치고 귀국해 한달 가량 국내에 머문 강수연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불혹을 넘겨서도 많게는 스무 살이나 어린 선수들과 우승을 다투는 경쟁력을 유지한 비결은 "즐기는 골프"라고 밝혔다.

"몸 관리는 당연히 한다. 아무래도 체력이 달리니까 음식도 신경 많이 쓴다"는 강수연은 "그래도 내가 이 나이에 이만큼 경기력을 유지하는 건 생각을 바꿔서다"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아, 내가 강수연인데…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책을 많이 했다. 강수연을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으니 골프가 더 재미있어졌다"는 강수연은 "이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산다. 물을 거슬러올라가려 않는다. 물 흐르는대로 산다"면서 웃었다.
강수연은 "30대 중반까지는 골프 치면서 골프장 경치를 못 봤다. 공기도 못 느꼈다. 주변이 보이면서 골프가 더 잘 맞더라"고 덧붙였다.

강수연의 이런 무욕(無慾)은 거저 생긴 게 아니다. 그도 사실은 일본으로 무대를 옮기기 전에는 은퇴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미국에서 첫 우승을 하고 나서 목과 허리 디스크가 심해졌다. 그런데 그냥 참고 쳤다. 그러다가 샷이 다 망가졌다. 은퇴하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안 될 때 은퇴하긴 싫었다. 안될 때 그만두면 잊혀지지 않나. 안되니까 그만두는구나라는 평가를 받기가 싫었다"
강수연은 "1년이 됐든 2년이 됐든 즐기면서 하자고 마음먹었다.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다. 일본에 처음 오니까 나한테 루키라고 하더라. 하하. 그 소리 들으니까 외려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 같았다. 신인처럼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을 때를 떠올렸다.

강수연은 주니어 시절부터 공 다루는 감각만큼은 천부적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지금도 우승을 다투는 경쟁력은 이런 타고난 재능 덕이기도 하다. 강수연도 인정한다. 강수연은 또 자신의 경쟁력의 원천은 집중력이라고 설명했다.
"첫날 경기를 치러보면 딱 느낌이 온다. 아! 이번에는 되겠구나 하면서 스위치가 딱 켜진다. 내 나이에 모든 대회에서 매샷 집중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스위치가 켜지면 온 힘을 다 쏟는다. 아이언샷도 날카롭게 들어간다. 비거리는 모자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쇼트게임과 퍼트는 투어에서 어떤 선수도 이길 수 있다."
"이 나이에도 좀만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거 하나는 성공한 것 같다"는 강수연은 "제법 고령 선수가 많은 일본에서도 이제는 나보다 연장자는 한 명 뿐"이라고 말했다.

강수연은 한때 '게으른 천재'로 불렸다. 훈련량이 다른 선수보다 한참 적었다. 박세리, 김미현의 전설 같은 맹훈련은 강수연에게는 딴 나라 얘기였다.
'좀 더 훈련을 많이 했다면 더 많은 우승을 하지 않았겠냐'고 묻자 강수연은 "어릴 때 다른 선수처럼 맹훈련했다면 아마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깔깔 웃었다.
"어릴 때부터 훈련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연습볼을 많이 치거나 연습장에 그저 오래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공 한 개를 치더라도 집중해서 했다. 그거 나한테 더 잘 맞는 훈련방법이고 효과도 봤다. 그래도 정말 연이는 연습하지 않는다는 말은 참 많이 들었다."
훈련 얘기가 나오자 강수연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후배들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장수하는 선수가 드문 이유도 어릴 때부터 오로지 훈련에만 매달리다 보니 일찍 지쳐버리는 것 같다고 그는 지적했다.
"나도 어릴 땐 합숙훈련을 많이 했다. 그때 훈련만 했던 건 아니었다. 선후배, 동료들과 얘기도 많이 했고 어울려 놀기도 했다. 수학여행 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요즘 어린 후배들은 오로지 골프만 하더라. 훈련에만 매달린다. 음식도 골프에 좋은 음식만 골라 먹고 운동도 골프에 좋은 운동만 하더라. 앞만 보고 달리면서 지쳐가는 것 같다."

강수연은 후배들에게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오래 못한다. 골프가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슬럼프에서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내 직업인데 잘못하면 직업을 잃는다는 위기감은 더 깊은 슬럼프로 몰아간다"는 강수연은 "힘드니까 도망가고 싶어진다면 골프가 될 턱이 없다"고 말했다.
강수연은 "일단 경기에 나서면 샷을 하고 나서 다음 샷만 생각할 게 아니라 다음 샷을 하러 걸어가면서 경치도 감상하고 동반 선수와 즐거운 대회도 나누라"고 '즐기는 골프'의 요령도 귀띔했다.
"미국이나 일본 선수들은 그런 면에서 우리 선수보다 여유가 있다. 그래서 30, 40대 선수가 많다"는 강수연은 "한국에서는 은퇴가 너무 빨라서 아쉽고 서른 넘은 선수들이 잘하면 반갑다"고 말했다.


강수연은 3년 전 경기도 화성시 리베라 컨트리클럽에 '강수연 골프 아카데미'를 열었다. 투어에 전념하느라 아직 그곳에서 레슨은 하지 않는다는 강수연은 "언제든 은퇴하면 해야 할 일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시작했다"면서도 '지도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여자 골프 최고의 테크니션답게 그는 "지도자의 자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배들 샷을 보면 뭐가 문제인지는 금방 안다"는 강수연은 "앞으로 프로 선수를 가르쳐보겠다는 생각은 있다"고 밝혔다.

'코치' 강수연의 1호 제자는 요즘 한참 뜨는 여고생 스타 최혜진(18)이다. 2년 전부터 틈날 때면 샷을 봐줬다.
"가르친다기보다는 시간 맞으면 한 번씩 봐주는 정도"라는 강수연은 "처음에 찾아왔을 땐 거절했다. 괜히 봐준다 해놓고 제대로 못 하면 안되니까. 2년 동안 스무번 정도 만나서 샷을 봐줬다. 워낙 잘하는 선수라서 딱히 내가 손본 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강수연은 JLPGA투어에서도 후배들이 샷이나 쇼트게임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언니, 좀 봐주세요라고 하면 그냥 경험에서 나온 요령 등을 조금씩 가르쳐준다. 도움이 됐다고 하면 기분은 좋다."
은퇴 시기를 묻자 강수연은 "시드 잃으면 바로 은퇴한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다시 시드전을 봐가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생각은 없단다.

강수연은 한국여자프로골프에서 '필드의 패션모델'이라 불린 첫번째 선수였다. 지금은 여자 선수 대부분이 패셔너블한 경기복을 입지만 1997년 데뷔한 강수연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미니스커트에 몸매가 드러나는 골프웨어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강수연은 "내가 좀 끼가 있다. 타고난 게 있다"면서 "이제는 그런 인기를 누리지 못해도 서운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미국, 일본에서 따르는 갤러리 없이 경기를 많이 하면서 익숙해졌다. 지금이야 새로운 얼굴도 많지 않냐"고 말했다.

결혼 얘기가 나오자 "난 골프와 결혼한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진 강수연은 "혼자서 살아온 세월이 오래라 그런지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게 편하지 않다. 은퇴한 다음에 생각이 바뀌면 몰라도 지금은 생각않고 있다"고 잘랐다.
강수연은 7일부터 일본 이와테현 아피고겐 골프클럽에서 나흘 동안 열리는 J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JLPGA 선수권대회에서 시즌 두번째이자 JLPGA투어 통산 네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