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회 디오픈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조던 스피스와 캐디 마이클 그렐러.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조민욱 기자] 24일(한국시간) 잉글랜드 사우스포트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파70).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오픈) 4라운드 13번홀(파4)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때린 조던 스피스(24)가 공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음을 직감한 듯 머리를 감싸 쥔 뒤 바로 오른팔을 들어 공의 방향을 가리키며 신호를 보냈다.

단독 2위 맷 쿠처(미국)에 3타 앞선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스피스는 이날 샷 난조에 빠져 후반 12번홀까지 힘겹게 파로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13번홀에서 티샷한 공이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날아가더니 갤러리마저 훌쩍 넘겨 경사면의 깊은 러프에 박혔다.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 1벌타를 받은 스피스는 원래 공이 있던 곳과 홀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상의 후방으로 공을 옮겼다. 그러나 그곳은 방송중계를 위한 투어 밴이 있어 칠 수 없었다. 스피스는 2명의 경기위원과 의논 끝에 후방으로 볼을 더 옮겼다.

공을 다시 놓은 지점과 핀과의 거리는 약 260야드였고, 앞에 수풀로 된 언덕이 버티고 있어 그린은 보이지 않았다. 스피스는 3번 우드를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캐디 마이클 그렐러가 강하게 3번 아이언을 쓸 것을 권유했다. 조언을 받아들인 스피스는 아이언을 들어 세 번째 샷을 날렸다. 공은 그린 근처에 안전하게 떨어졌다.

그린에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벙커에 빠지지도 않았다. 네 번째 샷으로 어프로치를 시도한 스피스의 공은 홀 2m 근처에 떨어졌다. 까다로운 퍼트에 성공한 스피스는 쿠처에게 처음으로 선두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자칫 더블보기 이상까지 범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금쪽같은 보기로 막아냈다. 이 홀에서만 21분이 소요될 정도로 스피스와 그렐러은 사투를 벌였다.

지난해 마스터스 토너먼트 2연패에 도전했던 스피스는 마지막 라운드 12번홀(파3)에서 참사를 당했다. 티샷은 워터 해저드에 빠뜨렸고, 1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마저 뒤땅을 치면서 물로 향했다. 다시 1벌타를 받고 친 다섯 번째 샷은 그린 뒤 벙커에 떨어졌다. 결국 이 홀에서 '쿼드러플보기'를 적어내야 했던 스피스는 눈물을 머금고 우승컵을 대니 윌렛(잉글랜드)에게 바쳐야 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13번홀에서 정신을 차린 스피스는 14번홀(파3)에서 홀인원에 근접한 티샷으로 1타를 줄였고, 연이어 15번홀(파5)에서는 이글을 잡아냈다. 이후 홀에서도 2개의 버디를 추가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스피스는 이날 13번홀까지 4타를 잃었으나 이후 4개 홀에서만 무려 5타를 줄이는 뒷심으로 디오픈 챔피언십의 우승컵이자 상징인 '클라레 저그'를 처음 들어올리는 기쁨을 누렸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에 따르면, 캐디 그렐러는 "(세 번째 샷을 할 때 홀까지의 거리를) 스피스는 270야드, 나는 230야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정말 최고였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명장면이다.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스피스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렐러의 의견을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했다. 스피스는 "나와 그렐러 중 누구의 거리 계산이 더 정확한지 묻는다면, 보통은 나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렐러는 아주 확신에 차 있었다. 어떤 클럽으로 쳐야 할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이 모습은 나에게 자신감을 줬다. 그는 옳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렐러는 최종 라운드에서 압박과 긴장감에 힘들어하는 스피스의 멘탈 코치 역할도 톡톡히 했다.

스피스가 1번홀(파4)부터 보기를 적었을 때 그렐러는 "이겨낼 수 있다"라고 격려했고, 3번과 4번홀에서 연속 보기 이후 5번홀(파4)에서 버디에 성공했을 때, 그렐러는 스피스의 클럽을 바로 돌려받지 않았다. 자신과 주먹을 마주친 후에야 클럽을 받아 가방 안에 넣었다.
이후 스피스는 13번홀에서 최대 위기에 몰리고도 그렐러 덕분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렐러는 "오늘 온종일 감정들과 싸움을 벌였다”면서 “스피스가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평정심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스피스 디오픈 챔피언십 우승 인터뷰를 마친 직후 우승 트로피 '클라레 저그'를 캐디 마이클 그렐러에게 안기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과거 학교 수학 선생님이던 그렐러는 2010년 주니어 아마추어 골퍼이던 스피스의 임시 캐디를 맡았다. 이때 둘을 연결해준 사람은 바로 PGA 투어 선수이자 스피스의 절친인 저스틴 토머스(미국)다.
스피스는 2012년 프로로 전향할 때 그렐러를 다시 찾아가 풀타임 캐디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렐러는 수학 교사를 그만두고 스피스의 캐디로 본격적인 투어에 나섰다.

그리고 불과 5년 사이에 2015년 마스터스 토너먼트와 US오픈에 이어 올해 디오픈까지 스피스의 세 번의 메이저대회 우승을 합작하는 영광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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