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ult of Waiting

2015년 상반기 코리안 투어는 단 6개 대회로 마무리됐지만, 아무런 의미 없이 끝난 건 아니었다. 절반인 3개의 트로피가 늦깎이 우승자에게 돌아간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내심을 보여준 선수들은 다른 이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 오늘 스타플레이어에서 만날 이태희도 마찬가지다.


기회는 있었다. 2008년 조니워커 블루라벨오픈이 그랬고, 2013년 솔라시도 파인비치오픈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4년 SK텔레콤오픈 때에는 심지어 3라운드 후반까지 단독 선두였다. 그러나 우승 트로피에 입맞추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준우승만 세 번. 우승 한 차례 없이 10년을 보냈다. 이태희(31, OK저축은행)는 그렇게 잊혀질 뻔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배우고, 또 경험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룬 첫 승은 완벽했다. 와이어투와이어로 이룬 값진 승리. 이태희는 그렇게 다듬어졌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바쁜 시간 속에서도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이태희는 특유의 강렬한 눈빛이 검게 그을린 피부와 탄탄한 몸매를 더욱 빛나게 했고, 상냥한 미소와 친절한 인사로 더욱 정감을 줬다. 그리고 남자 투어가 흥행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실력’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코리안 투어 데뷔 10년만에 첫 우승이다. 감회가 남다르겠다.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또 행복했다. 비록 첫 우승이 많이 늦긴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 기쁜 것 같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주 많이 설렌다.


첫 우승이 와이어투와이어, 그야말로 완벽한 우승이었다.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 결과다. 우승을 위해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합에서 잘 안됐던 것에 대해 연구하며 배워나갔다. 그런 것들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결국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우승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3라운드가 끝낼 때까지 월등히 앞서있었다. 반면 4라운드는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았는데 언제 우승을 확신했나.
마지막 홀 마지막 퍼트 때까지 우승한 지 몰랐다. 그때까지 다른 선수들의 스코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레이가 끝날 때까지 불안하거나 조급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내 플레이에만 집중했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만 했다.


완벽한 우승이었지만 그전까지는 아니었다. 무엇이 그렇게 첫 우승을 방해했나.
운도 없었고, 경험도 부족했다.


운은 그렇다 치더라도 경험은 의외다. 무려 10년 동안이나 플레이 경험을 하지 않았나.
단순히 플레이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승을 다툴 때 해야 하는 플레이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챔피언조에서 1, 2, 3위를 두고 선두권 싸움을 했던 경험이 부족했다. 때문에 그 순간에 해야할 것과 할 수 있는 것, 코스공략법 등의 노하우가 없었다. 예전에는 그런 순간이 오면 뭔가 해야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뭔가를 시도했었다. 오히려 그런 것이 우승에 방해가 됐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우승할 수 있는 느낌을 조금 알 것 같다.


올 상반기에는 문경준, 박재범과 같이 유난히 늦깎이 우승자가 많이 나왔다. 경험자로서 이렇게 오랜 기간 우승 없이 투어에 임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
시즌 초 문경준 선수가 우승하는 걸 보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처럼 힘들었을 텐데 그런 걸 모두 이겨내고 우승한 모습은 나에게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지금 해왔던 대로 하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항상 응원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우승 후 상의 탈의하는 세리머니를 보였다. 무슨 의미였나.
올해 초 시즌이 시작되기 전 방송 매체와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우승하면 속옷 차림으로 그린 주변을 뛰겠다고 공약을 했었다. 그 공약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이벤트의 하나로 우스운 속옷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우승 당시에는 주변 상황 상 그럴 수 없어서 상의만 탈의한 것이다.


그럼 올해 우승을 예감한 건가.
예감보다는 자신이 있었다. 겨울 내내 훈련한 성과도 좋았고, 점점 나아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시즌 초 일찌감치 속옷을 사서 집에 준비해 놨었다. 아무튼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기분은 좋다.


그런 공약을 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골프팬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다. 그런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침체돼 있는 한국 남자 골프가 조금이라도 밝아지길 바랬다. 그리고 정말 속옷만 입고 뛸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속옷을 준비해 갔었다.


그럼 두 번째 우승 후에는 어떤 세리머니를 준비할 생각인가.
아직 어떤 걸 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팬들이 원하는 걸 하겠다. 나에게 직접 얘기해도 좋고, 방송이나 SNS, 인터넷 등으로 말해줘도 좋다. 어떤 것이든 팬들이 좋아한다면 하겠다.


우승 후 파티는 했나. 그리고 우승 상금은 어떻게 했나.
성대한 파티는 아니었지만 대회가 끝나고 응원 온 지인 50여명과 식사를 같이 했다. 모두들 진심으로 축하해줘서 그걸로 충분히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우승 상금은 아직 통장에 있다. 일단 지금껏 고생한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살 생각이다. 그리고 무얼 산다기보다 일단 저금하려 한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저금이 옳다.


첫 우승을 이뤘으니 조급함이 한결 줄어들었겠다. 투어에 임하는 마음이 달라지진 않았나.
전혀. 처음과 똑같다. 내 생활이나 마음가짐은 변함없다. 여전히 시합에 나가면 잘하고 싶고, 또 계속해서 우승하고 싶다. 사실 그렇게 달라질만한 여유가 없다. 시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 바뀐 게 있다면 연습장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조금 늘었다는 것 정도다.


이제 또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나.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준비만 잘한다면 언제든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바로 시합에 나가도 문제없다. 때문에 매 시합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투어에서 흔치 않게 배에 대고 퍼팅하는 롱퍼터(밸리퍼터)를 사용한다. 언제부터 사용하게 됐나.
2004년에 처음 썼다. 선배의 권유로 사용하게 됐는데, 그때는 그냥 시험 삼아 사용한 게 전부다. 그리고 2010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단순히 더 나아지고 잘하기 위한 연구와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다.


롱퍼터로 실제 얼마나 효과를 봤나. 그렇게 좋다면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나.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특히 스트로크가 많이 좋아졌다. 아마추어들이 쓰기에도 좋은 퍼터다. 단 무엇보다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 그리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자신에게 잘 맞춰서 사용해야 한다. 체형과 스타일에 맞춰 정확히 피팅해야 한다. 만약 배 나온 사람이 길이도 맞지 않는 긴 퍼터를 사용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올해가 지나면 롱퍼터 사용이 금지되는데 이제 짧은 퍼터 연습이 필요하지 않나.
지금 연습 중이다. 완벽히 준비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물론 짧은 퍼터가 완벽히 손에 익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 시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준비를 잘하고 있으니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스폰서인 OK저축은행의 스포츠 구단 운영이 꽤 좋은 것 같다.
작년 프로 배구 우승에 이어 골프도 빛을 발했다.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써준다.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선수들은 다른 잡념이 생기지 않는다. 특히 기업의 오너인 최윤 회장이 직접 나서서 선수들을 독려해주기 때문에 큰 힘을 얻는다. 단순히 기업의 오너와 선수 사이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진심 어린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선수들에게는 큰 에너지가 된다.


든든한 스폰서가 있지만 지금 남자 투어의 현실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남자 선수들은 정말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한 시즌에 대회가 10개 남짓인데 생활이 되겠나. 시드를 유지한다고 해도 1년 동안 벌 수 있는 상금액이 그리 많지 않다. 시합 경비나 훈련비 등을 제외하면 정말 마이너스인 셈이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이렇게 된 건 우리 모두가 잘못했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협회나 선수할 것 없이 모두가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한다. 잘못한 건 반성하고 배울 건 배워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럼 뭐가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가.
일단 선수들이 좋은 실력을 보여주는 게 최우선이다. 인기가 있든 없든 팬들이 좋아할 만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실력을 갖춘 스타 선수들이 배출되면 팬들의 기대는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흥행도 이뤄질 것이다. 선수 개개인이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력이 중요하다.


골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운동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축구나 야구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했는데 운동 선수가 되는 것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운동 선수에 대한 안 좋은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는 달랐다. 개인 운동이기도 했고, 골프에 대한 여러 가지 장점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때다.


수없이 플레이 해왔는데 인생 최고의 샷을 꼽자면.
우승한 대회 때다. 셋째 날 16번홀에서 세컨드샷이 벙커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볼이 모래 안에 묻히는 바람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었다. 벙커샷을 했지만 그린에 올리지 못했고, 이어 어프로치샷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어프로치샷이 그대로 홀에 들어가면서 파세이브로 마무리하게 됐다. 그 샷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럼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작년 SK텔레콤오픈에서 준우승을 했다. 그 대회 셋째 날이었는데 선두를 달리는 상황에서 14번홀 티샷 미스를 했다. 심리적인 아무런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기록했다. 그리고 17번홀에서도 보기를 했다. 그날 3언더파를 기록 중이었는데, 그 실수로 인해 1오버파로 마무리했다. 마지막 날 플레이는 좋았지만 셋째 날이 컸다. 14번홀부터 18번홀까지 조금만 더 잘했어도 우승이 더 빨리 오지 않았나 싶다.


만약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나.
후회는 없다. 그러나 만약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14번홀부터 18번홀까지만 다시 플레이하고 싶다. 지금껏 시합 중에서 그때가 가장 아쉽다.


시합 때 선캡과 선그라스, 그리고 염색이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이런 패션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선캡을 쓰는 이유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선그라스는 눈 보호를 위해서다. 눈이 조금 건조한 편이어서 바람이 불거나 하면 눈물이 많이 난다. 선그라스를 착용하면 눈물이 조금 덜 난다. 염색은 전에는 노란색으로 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진한 갈색으로 염색한 상태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그렇게 특별히 관심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깨끗하게 입고 다니려고 한다. 누군가 옷 입는 스타일을 코디해주진 않지만, 나름대로 옷 색깔이나 매치 등 신경을 쓰고 있다. 남들이 봤을 때 좀 깨끗하게 보여지고 싶다.


그럼 골프 외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운동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트레이너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특별히 골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을 위해 운동을 즐기는 것이다. 특히 트레이너인 선우원 원장(RX GYM 골프트레이닝)은 정말 고마운 분이다. 2009년부터 함께 했는데 나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나를 위해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만들어 몸 관리에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해준다. 이밖에 등산과 영화보는 것도 좋아한다.


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지금 몸 관리를 잘하고 있기 때문에 시니어까지도 가능하리라 본다. 또 그렇게 몸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힘이 떨어지거나 유연성이 부족해서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근력을 유지하면서 유연성과 밸런스를 갖추는 데 주력한다. 몸 관리는 자신 있다.


큰 부상은 없었나. 혹시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나.
2007년 겨울 전지훈련을 다녀온 이후 2008년 시즌을 앞두고 전 어깨가 아팠다. 팔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근육이 파열됐다는 진단이 나왔고, 수술과 재활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재활을 선택하면서 치료와 시합을 병행했었다. 지금까지 가장 큰 부상이었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합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또 감사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힘들게 하는 건 성적이다. 시합 나가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결과에 따라 심적으로 괴로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시합이 없으면 그것 때문에 힘든 것 아닌가. 항상 힘든 일의 연속이다. 모든일이 다 그런 것 아닌가. 그렇다고 그만두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골프가 좋기 때문에 그 정도까지 생각해 본적은 없다.


이제 결혼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비슷한 또래 선수들을 보면 결혼 후 훨씬 안정된 모습이다.
몇 년 전부터 결혼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결혼하면 더 안정적인 플레이를 할 것 같다. 가족만 생각하면 되니까. 그러면 집중도 더 잘될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긴장감이 더 열심히 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첫 우승을 이뤘으니 다음 목표는 뭔가.
일단 올해 일본 큐스쿨에 응시해서 일본 투어에 나서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그리고 남은 하반기 시합에서 승리를 더 추가하고 싶다. 자신감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상금왕도 생각한다. 꼭 하겠다는 것보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태희 Profile
생년월일: 1984년 5월 26일
신장: 179 센티미터
프로데뷔: 2004년
소속: OK저축은행
계약: 넵스, 오클리
주요기록
2015년 넵스 헤리티지 우승
GS칼텍스 매경오픈 6위
2014년 SK텔레콤오픈 2위
코오롱 한국오픈 3위
2013년 솔라시도 파인비치오픈 2위
세부기록
발렌타인대상포인트: 1,310 점(3위)
상금랭킹: 179,473,400원(4위)
평균타수: 70.6타(3위)
평균퍼팅: 1.768회(8위)?7월20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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