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휴마나 챌린지에서 함께 한 노먼과 클린턴 전 대통령.
노먼은 1991년에 구입한 플로리다 남부의 저택에 ‘고요’라는 이름을 붙였다. 낚시용 보트인 호를 정박해놓은 선착장은 뒤쪽 출입문에서 불과 로브웨지 하나 거리다.
1986년도 마스터스에서 노먼은 14번홀부터 17번홀까지 연속 버디를 하며 거침없이 진격하는 니클로스를 따라잡았지만 18번홀에서 보기를 하고 말았다. 그는 그때를 “내 선수 생활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노먼은 2015년부터 폭스가 중계권을 가져간 US오픈과 USGA에서 주관하는 다른 대회의 해설을 맡았다.
백상어가 황혼의 바다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날이 올까? “5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상황을 만족스러운 수준에 올려놓는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마지막으로 PGA 투어에서 우승을 거둔 게 어느새 거의 20년 전이지만, 그렉 노먼은 지금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올해 예순의 노장은 폭스스포츠의 수석 골프해설가를 맡아 US오픈에서 마이크 앞에 앉았다. 물론 노먼이 아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이유가 단지 중계석에 앉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레이트 화이트 샤크 엔터프라이즈’는 작년에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고, 상어의 이빨만큼이나 날카로운 견해를 솔직하게 표출하는 노먼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메이저 2승(그리고 메이저 준우승 8회) 챔피언인 노먼은 골프 중계에 어떤 변화를 불어넣을 예정인지, 왜 US오픈 중계에서 조니 밀러를 그리워할 염려가 없는지(“우리 팀은 신선하다”), 메이저 대회에서 석패하며 그가 뭘 배웠는지(“운명의 힘이 작용한다”), 그리고 그가 골프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많은 걸 이룬 그렉 노먼의 이야기에는 삶과 골프에 대한 지혜가 가득했다.

*이 인터뷰는 US오픈 개최 이전에 진행됐다
.


플로리다주 호브 해협의 주피터 아일랜드에 있는 그렉 노먼의 저택은 집이라기보다 성지 같은 느낌이었다. 서쪽으로는 인터코스털 워터웨이, 동쪽으로는 파도가 크게 일어나는 대서양이 지키고 있는 그곳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야자수가 늘어선 낙원 같은 그곳에서 화창한 4월의 어느 금요일 아침에 만난 노먼은 고향인 호주의 드넓은 대지만큼이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들려줬다.
주의: 상어 출몰 지역!


진실을 말하라
나는 늘 진실을 말했다. 솔직함은 다른 사람들의 공격뿐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해준다. 내가 지금까지 한 모든 말에 대해 옳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후회도 없다. 중계석에 앉았을 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본 대로 말할 것이다. 내가 보호해야 하는 건 US오픈이라는 신성함뿐이다. 누군가의 심사를 거스르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침착함을 유지하라
어렸을 때 하루는 호주에서 서핑을 하다가 심하게 물에 빠졌다. 당시에는 보드에 끈이 달려 있지 않았고 내가 파도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보드는 해안으로 밀려갔다. 나는 상당히 멀리 나가 있었고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이렇게 끝이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구조 방법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비축하자는 것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덕분에 결국 안전하게 구조됐다.

그건 내가 경험했던 첫 번째(사실상 유일한) 죽을 고비였다. 그 일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 후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가야 할 곳, 그곳까지 갈 방법을 분석한 다음 최대한 침착하게 그 방법을 실행에 옮긴다. 무작정 공포에 질리기는 쉽지만 상황이 정말 최악인지, 아니면 그냥 나쁜 정도인지 침착하게 분석하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적절한 해법을 고안해내게 된다.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라…
나는 30년 넘게 전동 사슬톱을 사용해왔고 콜로라도에 있는 농장에서 쓰는 것은 길이가 1.2미터가 넘는다. 그런데 지난 가을에 25센티미터의 조그만 날로 플로리다 집 마당 근처의 나무를 다듬다가 왼손을 자를 뻔했다. 사람 일은 장담할 수 없다.


…특히 대통령이 방문할 때는
아프기는 톱으로 인한 상처가 더 컸지만, 클린턴 대통령이 1997년 우리 집에서 계단을 오르다가 미끄러져서 내 왼쪽 무릎 위로 넘어지면서 받은 충격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 사건 후로도 나는 투어에서 2승을 거뒀지만 내 무릎은 아직도 조금 틀어진 상태다.


대통령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클린턴 대통령 외에도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플레이를 해봤고, 조지 W. 부시와는 상이용사 대회에 함께 참가한 경험이 있다. 국가 원수와 함께 하는 라운드가 여느 라운드와 다르지 않다고 하면 놀라워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주변에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플레이를 한 적이 없다.

백악관에서 전화를 해서 의향을 묻는다면 나는 미국의 대통령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플레이 할 것이다. 하지만 빈둥거리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플레이하고 싶다는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아들이나 딸, 아니면 여기 이 섬에서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편이 더 행복하다.


선배들의 지혜
1986년 모든 메이저에서 54홀까지 선두를 달렸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때였지만 아직도 배울 게 많다고 느꼈다. 나는 늘 잭 니클로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로이 플로이드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봤는데 골프에 관련된 것에 국한하지 않고 인생 전반의 지혜를 구했다. 나는 호주의 전 총리였던 봅 호크와 친했고, 그래서 그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잭과 레이, 그리고 호크 총리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 그 경험에서 교훈을 얻으면 좋지 않겠는가? 우리 집과 타이거 우즈의 집은 가깝다. 그가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면을 통해 여러 번 보도됐다. 그야 그의 마음이고 나 역시 비록 도움이 될 게 틀림없다고 해도 내 경험을 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선택하는 건 각자의 권리다.

세상에는 자신이 그 방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골프 발전을 꾀하려면
이건 간단하다. 어린이든 직장동료든, 아니면 배우자든, 최소한 1명이라도 자신이 아는 사람을 골프에 입문시키면 된다. 나는 골프를 가르쳐준 어머니에게 감사한다. 내가 열여섯 살 때 우리 가족은 퀸즐랜드에서 브리즈번으로 이사를 갔다.

친구를 사귀기 전까지 조금 외로웠다. 어머니는 골프를 했는데 하루는 나한테 캐디를 해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키가 158센티미터에 흠뻑 젖어도 몸무게가 45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았지만 핸디캡이 3일만큼 실력이 대단했다. 어머니가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어머니의 클럽으로 네 홀 정도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는 골프에 완전히 매료됐다. 몇 주 만에 나는 핸디캡 27의 자랑스러운 골퍼가 됐다. 그리고 1년 반 후에는 스크래치 골퍼가 됐다.


오거스타의 고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그 어떤 마스터스보다 1996년 닉 팔도에게 패한 것을 속상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986년 잭 니클로스에게 밀려서 준우승을 했던 게 훨씬 고통스러웠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78타를 하며 일요일에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친 닉 팔도에게 패한 건 그저 잘 풀리지 않은 라운드 탓으로 돌릴 수 있다. 그는 그날 67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1987년에 연장전 두 번째 홀에서 칩샷을 그대로 성공시킨 래리 마이즈의 샷은 그야말로 평생에 한 번 나올 만한 플레이였다. 하지만 잭이 1986년의 일요일 후반에 30타를 몰아치며 갤러리를 흥분에 빠뜨렸어도 내가 18번홀에서 파세이브만 했어도 동타가 될 수 있었고 버디를 했다면 그대로 우승을 차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보기를 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불운을 적잖이 겪은 나이지만 그 대회는 여전히 내 마음을 짓누른다.


2위의 운명
패배는 어느 정도 자초했다고 볼 수 있지만 사람이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니다. 1986년 마스터스 몇 달 후, 봅 트웨이는 PGA챔피언십의 72번째 홀에서 벙커샷을 그대로 홀인시키며 나를 한 타 차로 물리쳤다. 이듬해 봄에는 마이즈가 오거스타에서 다시 칩샷을 그대로 성공했다. 1990년에 베이힐에서는 로버트 가메즈가 72번째 홀의 페어웨이에서 이글을 기록하는 바람에 승리를 내줬고, 한 달 후에는 데이비드 프로스트가 일요일 18번홀에서 벙커샷을 홀인시키며 USF&G 챔피언십(지금의 취리히 클래식)의 우승을 낚아챘다. 한동안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겪는 건가?” 공동, 또는 단독 선두 상황에서 이런 일이 너무 많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게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그런 일이 벌어졌을 뿐이다. 운명은 모든 상황에서 작용한다.


그렉 노먼에게서 한 가지만 바꿀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겠다. 뭔가를 원할 때면 나는 대단히 몰아붙이는 편이다. 사업 구상이 떠오르면 빠르게 진행한다. 나는 그레이트 화이트 샤크 엔터프라이즈의 미래를 200년 앞까지 내다보는데 이사회는 이런 식이다. “아이고, 그렉! 속도 좀 늦춰요.” 결과물이 바로 눈앞에 있더라도 목표를 성취하기까지는 일정한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그게 사업의 기술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사업이 쉽다면, 너 나 없이 다 하고 있겠지.


돈의 장단점
제일 좋은 점은 안전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한 가지는 행복이다. 재력과 인생의 즐거움이 항상 같이 가는 건 아니다.


훔치고 싶은 스윙
다른 사람의 스윙을 가질 수 있다면 1970년 즈음에 톰 와이즈코프가 하던 스윙을 갖고 싶다. 톰은 골프 역사상 최고의 롱아이언 플레이어였다. 요즘 선수 중에는 헨릭 스텐손을 선택하겠다. 그의 아이언 스윙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임팩트에서도 다른 선수들과 소리가 다르다. 현역 시절에 내 임팩트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했었지만, 헨릭의 임팩트는 예전의 나보다도 훨씬 뛰어나다.

순수한 파워와 콤프레션이 압권이다. 그는 샷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하지만 쇼트게임만큼은 어느 누구와도 바꿀 생각이 없다. 어느 정도는 세베 바예스테로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세베의 거룩한 업적
세베 바예스테로스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었던 건 내게 행운이었다. 연습 라운드를 함께 하는 것 외에, 특히 선수 생활 초반에 나는 그의 드라이버샷을 도와주고, 그는 내게 쇼트게임을 가르쳐줬다.

그는 뛰어난 선생님이었고,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빚졌다. 우리의 우정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세계 랭킹 1인자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면서 조금 덜그럭거렸다. 둘 다 승부욕이 대단했지만 그 시기를 잘 넘겼다.

세베는 카리스마와 성격, 그리고 골프에 대한 공헌의 측면에서 아널드 파머에 버금가는 최고의 선수였다. 그리고 거의 혼자 힘으로 골프의 세계화를 개척했다. 내년 여름에 리우에서 현대 올림픽 역사상 첫 샷이 시도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하늘을 우러러보며 이렇게 말해야 한다. “고마워요, 세베.” 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올림픽에 대한 생각을 심어줬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렉, 우리는 이걸 해야 해. 나 좀 도와줘!” 그리고 그는 IOC 의장이자 같은 스페인 출신인 사마란치에게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했다.

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아무개가 공헌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해낸 장본인은 세베였다


중계방송에 임하는 마음
나는 대체로 골프 중계를 시청하지 않지만, 조 벅과 함께 폭스스포츠의 수석 골프 해설가가 된 후로는 열심히 챙겨봤다. 그런데 음소거 상태로 본다. 나는 화면을 보면서 생각한다. “US오픈에서 저런 상황을 보게 되면 뭐라고 말할까?” 코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몇몇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확보했다.

나는 단순한 예측이나 의견을 넘어 솔직한 이야기와 수준 높은 통찰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상황을 전달하는 중계방송은 이미 충분히 많다.

나는 오랜 기간 믿음직스러운 파트너였던 NBC와 결별하고 폭스에게 US오픈 중계를 맡긴 USGA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건 새로운 시도였고, 폭스는 스포츠중계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래도 우리 팀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골프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전통적인 측면이 있지만 기술과 소셜미디어, 그리고 현장의 실시간 전달의 힘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목표는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메이저 중계를 맡아본 적이 없고, 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프로듀서인 마크 루미스는 이전에 MLB 네트워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우리 팀은 신선하다. 아직 틀을 갖추지 않았다. 그 점이 시청자들에게는 흥미로움을 안겨줄 것이다.


USGA vs. PGA 투어
나는 더 많은 기업들이 USGA를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개최하는 대회는(폭스가 중계하는 여섯 대회를 포함한 15개 대회 모두) 골프 인구 증가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날에 아버지와 아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챔피언십인 US오픈을 시청하게 된다. 엄청난 드라마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대회를 보면서 아이들은 골프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고 순식간에 골퍼가 된다. 프라이스닷컴오픈은 아무리 시청해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PGA 투어는 자신의 조직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투어의 일정은 숨 가쁘고 부담스럽다. 매주 새로운 대회가 열린다. 그곳은 보다 기업 지향적이다.

PGA 투어는 회원들, 즉 선수들에 대한 책임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투어는 최소한 USGA와 다른 조직들의 골프 발전 노력에 동참해왔다. 하지만 투어가 더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투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골프계를 어슬렁거리는 늑대들
골퍼들(프로 선수들)은 불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심각한 경기 하락세에도 우리는 여전히 두둑한 돈을 번다. 그렇다면 팬들은? 대부분은 불황의 여파에 노출돼 있지만 그래도 경기를 보려면 고가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의 지갑 사정이 좋지 않을 때 투어의 입장료를 조금 저렴하게 낮추는 걸 본 적이 없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나도 대여섯 번의 경기 불황을 겪었지만 그때는 한 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케이, 올해는 26개 대회에 출전해서 그 중 몇 번을 우승하고 얼마의 상금을 벌어야지.” 그저 이런 식이었다. 이건 탐욕이 아니라 둔감한 것이고 이제 그런 태도에 대해 후회한다. 나이가 들고 보니 세상을 더 잘 알게 됐고 지난 시절에 대한 후회가 적지 않다.

요즘 선수들은 지금 받는 수준의 상금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현장에서 골프를 지켜보기 위해 적잖은 돈을 지불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에 비해 자신의 형편이 얼마나 나은지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 그건 투어도 마찬가지다.


골프의 미래는 밝다
2011년부터 2014년 사이에 미국의 주니어 골프 인구는 33퍼센트가 증가했다. 미국골프재단에서도 같은 기간에 여학생의 수가 80퍼센트가 급증했다고 보고했다. 내가 보기엔 발전의 긍정적인 신호 같다.

그러니 이제 골프가 하락세라는 얘기는 그만두고 숫자를 늘리는 데 집중하거나 아니면 골프 인구 관련 데이터를 아예 잊어버리자. 그런 데이터는 경제를 반영할 뿐이다. 내가 전성기를 누렸던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경제가 요동치면서 골프도 부진했다. 요즘도 뉴스에서는 뭐라고 하건 경기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골프는 가처분소득에 좌우되는 게임이다. 골프 증진 노력은 뭐가 됐던 사람들의 지갑 수준에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붉은색 숫자
내가 중국의 2016년도 올림픽 대표팀 자문단에 합류한 것은 골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건 그렉 노먼을 위한 일이 아니다. 나는 최소한 2,500만 명의 새 골퍼를 창출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어떤 장비업체에서 이 전망을 거부하겠는가? USGA와 프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이제 그 수요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을지나 궁리해보자.


로리의 재패를 전망하는 이유
나는 331주 동안 골프랭킹 1위 자리를 지켰었다. 타이거가 넘버원이었던 기간은 683주였다. 로리 맥길로이는 80주를 넘어서면서 독주 체제에 들어갔다. 리키와 부바, 그리고 조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로리가 대세다. 게임의 판도를 바꿔놓는 장본인. 그는 위대한 선수가 되기 위한 신체적인 조건을 모두 갖췄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들, 정신력과 열정도 지녔다. 그는 또한 내부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그것도 현명한 점이다. 그리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터득했다. 그의 위대함은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높이를 가늠할 수 없다.


타이거는 그럴 수 없는 이유
작년 여름에 나는 타이거 우즈가 두 번 다시 메이저에서 우승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일단 그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너무 많고, 린지 본과의 결별에 따른 스트레스도 간과할 수 없다. 둘이 함께 한 동안 그녀는 타이거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존재였던 것처럼 보인다. 이제 타이거는 또 다시 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렇게 조정해야 하는 것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있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선수 생활의 마무리
엘리트 선수는 결코 “이게 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수 생활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이다. 선수 수명이라는 게 있다. 어떤 선수들은 남들에 비해 오래 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더 젊고 간절하며 겁 없는 선수가 자리를 가로채가기 마련이다. 내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그런 과정들이 보이고, 솔직히 말하면 오랜 시간에 걸쳐 게임과 선수들의 진화를 보는 게 즐겁다. 인생이나 스포츠의 사이클에는 제동을 걸 수 없다.

나는 2012년 이후로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게 아니라 호들갑 떨지 않고 선수 생활의 황혼으로 기품 있게 옮겨가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기울였다는 뜻이다. 세계를 순회하거나 세인트 앤드루스의 스윌컨 다리에 앉아서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 때가 됐네요.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격식을 중시하는 골퍼가 아니다. 그리고 나이든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젊은 후배가 메이저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빼앗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괜찮다. 볼 만큼 봤고 할 만큼 했다.


나만의 “해피 하우스”
나는 전성기가 최고조에 올랐던 1991년 플로리다주 호브 해협에 집을 한 채 구입했다(위 사진). 그리고는 당시 내게 필요했던 걸 모두 갖췄다. 이곳에 오면 집에만 머물렀다. 체육관 시설도 완벽하다. 테니스 코트도 있다. 뒷마당에서 보트 선착장으로 바로 이어지고 해변에 나가면 더없이 편안하다.

운이 좋게도 이런 사치를 누릴 여력이 있지만 지금 하려는 얘기는 그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탈출구가 필요하다. 취미를 통해서도 그걸 얻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따금 무한경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골프를 잠시 벗어날 공간이 필요했다. 프로 선수는 단순히 시합에 참가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해야 한다.

언론과 인터뷰, 후원자와의 저녁식사, 사업 제안을 해오는 사람들, 자선행사, 끝없는 이동. 물론 그런 생활을 사랑하지만 분위기와 긴장감과 소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다. 내가 이 집에 ‘고요’라는 이름을 붙인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SHARK BITES TIP
손쉬운 파워 팁
백스윙 때 왼팔이 지면과 평행을 이뤘을 때 헤드와 몸의 간격을 최대한 벌린다. 백스윙에서 이렇게 팔을 쭉 뻗으면 스윙아크의 폭이 넓어지고, 스윙아크가 넓을수록 헤드스피드가 높아지면서 몸과 보조를 맞추게 된다. 이건 천장의 선풍기와 비슷하다.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더라도 날개의 가장자리가 중앙의 모터보다 더 넓은 원을 그리기 때문에 사실상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다. 아담 스콧을 한 번 눈여겨보라. 그는 이 점에서 다른 어떤 선수보다 더 탁월하다.


손쉬운 쇼트게임 팁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은 피치샷이나 칩샷을 할 때 팔을 너무 많이 움직인다. 나는 예전부터 쇼트게임 스윙이 풀스윙의 미니 버전이며 어깨 회전은 똑같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팔 스윙보다 어깨 스윙을 더 많이 활용하면 백스윙은 짧아지고 임팩트 구간에서 가속을 붙일 수 있다. 팔에 의존하는 피치샷이나 칩샷은 임팩트 때 멈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얇게 빗맞는 샷이나 청크샷이 나오게 된다.


손쉬운 풀스윙 팁
전성기 시절에 나는 어깨와 양팔이 그리는 삼각형을 톱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백스윙 초반에 일찌감치 손목을 코킹하거나 팔뚝을 회전하는 건 금물이다. 몸을 회전하면서도 이 삼각형을 그대로 유지하면 톱에서 완벽한 자세를 갖추게 된다. 이러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탄탄한 백스윙은 다운스윙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확실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손쉬운 퍼팅 팁
두 가지만 알면 퍼팅 실력을 높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립을 가볍게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립 강도를 1에서 10까지로 봤을 때 3 정도가 적당하다. 두번째는 언제나 볼을 통과하듯이 퍼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위 사진). 나는 ‘톡’ 치거나 ‘맞히고 멈추는’ 스트로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볼의 타깃 쪽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헤드가 그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밀어준다. 스트로크의 느낌이 더 매끄럽고, 퍼터는 타격 구간 내내 그라운드에 닿아 있기 때문에 볼의 스위트스폿을 맞히기가 더 수월해진다.

볼의 앞쪽에 초점을 맞추고 그 지점을 지나칠 때까지 스트로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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