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건 그녀의 기질에 잘 맞는다. 작년에 US여자오픈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미셸 위는 마침내 기대에 부응했다.그리고 올해 스물다섯 살인 그녀에게는 더 큰 야망이 생겼다. "넘버원이 되고 싶어요."

“도저히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녀는 파인허스트에서 거둔 우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셸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이 많지만, 우승에는 그렇지 않으며 더 많은 우승에 허기를 느끼고 있다. “메이저대회에서 더 많은 우승을 거두고 싶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스포츠 신동도 명성의 힘에는 당하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젊음의 힘을 내버려둔 채 어른처럼 옷을 입고, 성공보다 스타덤을 추구할 때가 많다. 미셸 위에게는 유명하다는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은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지켜봤다. 그러는 동안 풍선껌을 씹으며 장타를 날리던 열세 살 소녀는 실력을 잃고 시름에 젖은 채 명성의 무게 에 짓눌린 여인이 됐다. 심신의 소진과 강압적인 부모가 문제라는 진단이 나오면서 그녀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리셋’ 버튼을 눌렀다. 2012년에 스탠퍼드 대학을 갓 졸업한 그녀는 플로리다로 거처를 옮기고 새로운 태도와 새로운 퍼팅 스트로크를 익혔다. 그녀의 플레이는 향상됐다. 2014년 크라프트 나비스코에서 2위를 차지 하더니,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났다. 왕위 계승자가 끝내 권좌에 오른 것이다. 미셸 위가 파인허스트 No.2에서 거둔 US여자오픈 우승은 지나온 선수생활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다. 초반의 쾌조, 부진, 놀라운 재기. 게다가 심지어 엉덩이 춤까지 췄다.

우리는 플로리다주 주피터 인근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선수생활에 한 획을 그은 지난 우승과 지압사들의 놀라움을 자아내는 그녀의 퍼팅 스탠스, 그리고 생오징어를 먹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언론을 상대하는 세련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10대의 들뜬 말투가 느껴졌다).



US여자오픈 우승은 애니카 소렌스탐이 콜로니얼에서 남자선수들과 플레이를 했던 이후로 여자골프 사상 최대의 순간이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게 말해주다니 영광이다. 개인적으로 내 선수인생 최대의 순간이었던 건 분명하다. 트로피에 적힌 이름을 볼 때마다 꿈만 같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여자골프 역사의 맥락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생각까지는 해보지 않았다.


작년 6월 파인허스트에서는 남녀 US오픈이 연이어 같은 코스에서 개최됐다. 남자대회가 열린 일요일에 리키 파울러와 마틴 카이머의 마지막 조를 따라다니며 플레이를 지켜봤는데, 휴식을 취하거나 연습장에 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천만의 말씀! 그걸 놓칠 수는 없었다. 리키 파울러를 보면서 그를 응원하러 나간 것도 있지만, 그보다 그 코스에서 어떤 플레이가 펼쳐지는지 보고 싶었다.


마틴 카이머가 8타 차로 우승했다. 그가 파인허스트 No.2를 맹타하는 걸 보는 느낌이 어땠나.
자극을 받았다. 승부욕이 생겼고, ‘영리하게 플레이를 한다면 여기서 낮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에 볼을 올리는 건 까다로울 수 있지만, 일단 올라가면 평평한 퍼팅이 많은 곳이다. ‘마틴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했다.


코스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서도 정보를 얻은 걸로 아는데.
US여자오픈 주간에 리키 파울러와 키건 브래들리에게 문자를 보내서 플레이 내용을 적은 야디지북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기꺼이 내 부탁을 들어줬다. 메이저대회 때는 에너지를 아끼는 게 좋기 때문에 그런 노트가 도움이 됐고, 특히 연습 라운드 때 큰 도움을 받았다. 마치 시험에서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코스에는 위험한 지점이 많고, 메모 중에는 빤한 내용도 있었다. ‘왼쪽으로 휘어지지 말 것.’ 그런 걸 보면 이런 반응이 절로 나왔다.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3타 차로 앞서간 일요일의 16번홀에서 리키 파울러의 메모 때문에 샷을 와이어그라스에 빠트리게 된 건가.
(웃음)그럴 리가. 내 드라이버샷이 벙커에 빠져서 하이브리드로 레이업을 시도했는데, 그게 내 발목을 잡았다. 볼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볼을 찾은 후에는 더블보기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웃어야 했다.


16번홀에서 배짱을 요하는 1.5미터 퍼팅을 성공해서 트리플보기를 모면했다. 그리고는 17번홀을 향해 웃으면서 걸어갔다. 언제부터 US여자오픈의 일흔 번째 홀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되었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건 대회 막판에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 어렸을 때는 조바심을 치며 앞서가곤 했다. 하지만 내 캐디인 던컨 프렌치는 모든 걸 웃어넘기고, 그런 태도가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 더블보기를 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어.” 그리고 17번홀에서 긴 버디 퍼팅을 성공한 후에는 정말로 기분 좋게 웃었다. “이건 진짜 재미있네.” 그리고 2타 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재미있다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몸을 잔뜩 수그리고 퍼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적은 없나.
퍼팅만 성공한다면 내 자세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멋있게 보이는 건 내 일이 아니다. 실제 몇몇 선수들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도 우리 클럽에서 그렇게 해봤는데 누가 다가올 때마다 몸을 일으키게 되더라.’ 나는 농담처럼, 내가 비법을 알아냈지만 다른 사람들은 겁이 나서 그걸 시도하지 못하는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또 이렇게 말했다. ‘퍼팅 자세가 유혹의 수단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일 걸.’


승리를 자축하며 물구나무를 선 채로 엉덩이춤을 추는 것도 화제가 됐다. 그런 동작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손목이 아프기 때문에 두 번은 하지 않았다. 그걸 하게 되면 내가 완전히 나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또 다시 엉덩이춤을 춘다면.


뜻밖의 누군가에게서 축하의 인사를 받지는 않았나.
열세 살 때 소니오픈에서 함께 플레이를 했었던 영화배우 아담 샌들러가 꽃을 보냈다. 해피 길모어에게 꽃을 받는다는 건 골퍼로서 성공했다는 뜻이다.


당신의 재기가 대학을 졸업하고 플로리다에서 혼자 독립하면서 부모와 거리를 둔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신도 동의하나.
그게 내 플레이가 좋아진 진짜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님과 나는 늘 사이가 매우 돈독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주 함께 대회에 참가한다. 강아지까지 전부 함께 하는 그 시간을 나는 ‘가족 서커스’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독립이 성공의 비결이 아니라는 건가.
처음 투어에 나왔을 때보다 인간적으로 성숙했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게임과 승부를 즐긴다. 샷이 나무 사이로 날아가더라도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한 도전을 즐긴다. 난관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것이 도움이 됐다.

대회가 없을 때 리키 파울러와 키건 브래들리, 카밀로 비예가스 같은 남자 선수들과 플레이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멘탈을 본받게 됐다. 버디를 하지 못했다고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태도, 그리고 공격적인 플레이. 다른 여자골퍼들이 아닌 순전히 내 얘기일 뿐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남자들이 그린을 더 많이 노리고 모험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물에 빠지면 물에 빠지는 거지, 이런 태도다. 대수가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아이고 맙소사! 제발 물에는 빠지지 마!’ 나는 그들의 그런 태도를 받아들였다. 어떤 홀에 난관이 있더라도 그게 문제가 되는 건 내가 좋은 샷을 하지 못했을 때뿐이고, 열에 여덟은 좋은 샷을 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자신감을 갖고 그걸 믿는 문제인데, 혹시 알고 있나? 나는 상당히 실력 있는 골퍼다.


2004년 PGA 투어의 소니오픈에서 남자 선수들과 처음 플레이를 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지만, 그건 당신의 자신감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너무 어렸다. 사람들이 그걸 너무 큰일처럼 얘기하는 게 오히려 충격이었다. 그 경험에서 많은 걸 배웠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자극이 됐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게 명백했기 때문이다.


PGA 투어 선수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걸 얼마 만에 깨닫게 됐나.
금세 깨달은 편이다. 나는 열네 살짜리 여자아이였고, 연습장의 옆 타석에는 어니 엘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들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리디아 고와 렉시 톰슨을 비롯한 LPGA 투어의 젊은 스타들이 남자선수들과 실력을 겨루겠다면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은가.
이렇게 말하겠다. ‘정말 하고 싶다면 도전해 봐. 이건 네 인생이고 남이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니까.’


만약 할 수 있다면 과거의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해줄 건가.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고, 그런 경험을 했던 걸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기회는 매일 오는 게 아니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인생의 밑거름으로 삼기 위해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그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카밀로 비예가스의 첫 PGA 투어 대회에서 그와 플레이를 함께 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짧았다. 지금도 그걸 가지고 그를 놀리곤 한다.


티샷이 더 짧았다는 건가.
아니, 내가 말한 건 키다. 하지만 당시에 내 샷거리는 정말 길었다. 소니의 한 홀에서는 샷트래커로 측정했을 때 전체 참가 선수 가운데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남자선수들 사이에서 장타를 날릴 수 있나.
예전만큼 길지 않다. 부상을 겪으면서 어렸을 때만큼 채찍처럼 휘어지는 스윙을 하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LPGA 투어에서는 샷거리를 350야드까지 노릴 필요가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볼이 떨어진 위치이기 때문에 거기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지금이야 상황이 좋아졌지만 그 동안 어려운 일이 많았다. 가장 힘들었을 땐 언제였나.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일들이 많았다. “다시는 골프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전부 지나갔다. 나는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골프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무나 어렵고, 또 언제나 더 발전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저것 손보고 고치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때가 기억에 남을 텐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기억을 대부분 차단해버렸다. 2012년이 특히 힘들었다. 나쁜 라운드가 이어지면서 그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좋은 라운드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나는 결과를 보지 않고 열심히 연습만 했다.


어떻게 슬럼프를 탈출했나.
부모님이 실마리가 됐다. 모두가 나를 믿지 않고 포기했을 때조차 우리 부모님은 늘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뛰어나다고 여겼다. 워낙 흔들림 없이 나를 믿어줬기 때문에 나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됐다.


그래도 부모님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을 민망하게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부모님의 행동 중에서 가장 민망했던 건 뭐였나.
이 얘기는 하루 종일 할 수도 있다! 우리 아빠가 내 플레이를 지켜볼 때면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그건 정말 거슬린다. 하지만 작년에 티나(크리스티나 김)의 연장전을 지켜본 후로 그걸 이해하게 됐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나도 이상한 소리를 내게 되더라.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내 플레이를 지켜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작년 파인허스트의 일흔 번째 홀에서 플레이를 할 때는 부모님도 상당한 중압감을 느꼈을 것 같은데.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상당히 침착했단다.” 우리 아빠는 아마 망원경으로 내 볼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의상도 관심 대상이다. 여자 운동선수의 경우 실력만큼이나 외모가 화제를 일으킨다는 점이 못마땅한가.
LPGA 투어 선수들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스타일을 과시하고 레드카펫 위에서 멋지게 차려 입는 걸 즐긴다. 어디서든 멋을 부릴 기회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영복 잡지나 운동선수의 몸에 초점을 맞추는 잡지의 표지모델이 될 생각이 있나.
의뢰가 들어왔었다. 거절했다.


그런 모델을 하기에 적당한 선수는 누가 있을까.
벨렌 모조. 전에도 한 번 했었지만,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이 정말 근사하다.


여자들을 대상화했으니, 남자들로 넘어가보자. 투어에서 가장 잘 생긴 선수는 누구인가?
골프를 많이 보지 않아서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빠져나갈 생각하지 말고!
글쎄, 로리 맥길로이가 근사해 보이는 것 같다. 그가 입는 의상처럼 밝은 색이 좋다. 그리고 워낙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옷맵시가 더 사는 것 같다.


당신도 운동광인가.
늘 체력단련을 하고 음식을 조절했다. 젤리와 과자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오후에 당을 보충해야 했다. 나쁜 습관을 끊는 건 스스로를 테스트하는 좋은 방법이다.


동영상을 보니까 생오징어를 먹던데.
음식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도 너무나 많다. 글루텐과 유제품을 먹지 못하고, 과일 중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게 많다. 하지만 요리하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나쁜 음식을 먹더라도 재료를 바꿔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글루텐과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요리들로 추수감사절 식탁을 차린 적 있다. 피칸 파이. 펌프킨 파이.


침침한 해골의 이미지를 비롯해서 그림도 그린다고 들었다. 고딕 스타일의 골퍼인가.
인디언 스타일이다. 농담처럼 인디언 스타일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고딕 스타일은 고등학교 때 다 거쳤다.


코스에 나갈 때도 고딕 스타일을 유지했었나.
아니다. 그냥 검정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골프의상으로는 고딕 스타일을 유지하기 힘들다. 해골을 그린다고 해서 그게 꼭 슬픈 심리상태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는 게 나한테는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는 발산하는 효과가 있다.


골프팬들이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다면.
내가 어리석고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것. 나는 항상 티파니 조 같은 다른 선수들에게 장난을 친다. 그녀가 연습 그린에 있는 걸 보면 몰래 다가가서 치마를 들추곤 한다.


아직도 마스터스에 출전하는 게 목표인가.
목표와 꿈은 다르다. 꿈은 저기 저만치 놓여 있다. 꿈은 성취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오거스타는 여전히 내 꿈이다.


그렇다면 성취 가능한 목표는 무엇인가.
메이저대회에서 더 많은 우승을 거두고 싶다. 세계 랭킹 1위의 선수가 되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일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한다. 예전에는 모든 단계의 계획을 세우곤 했는데, 그러다가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예전에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살까지 이걸 하고, 스무 살까지는 저걸 하고 싶어.” 인생이란 그런 식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인생은 절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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