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에서 거의 잊힌 존재로 10년을 보낸 지미 워커는 2년간 5승을 거두며 위대함을 성취하기 위한 시동을 다시 걸고 있다. 검은 옷을 즐겨 입고, 구레나룻으로 멋을 부릴 줄 아는 그가 힘겹게 쟁취한 승리의 경험담을 들려ㅈㅝㅅ다.

지미 워커에 비하면 존 웨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전설적인 그 배우처럼 워커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게 잘 생겼다. 그는 샌안토니오 외곽에 있는 코딜레라랜치 골프클럽에서 진행된 <골프매거진>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간 웨스턴 스타일의 옷도 참 잘 어울렸다. 그렇다고 올해 서른여섯인 그의 옷장에 카우보이모자만 잔뜩 들어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옷은 입어본 적이 없다.” 워커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말을 타본 적조차 없다.” 워커는 전형적인 텍사스 남자는 아니다. 그리고 전형적인 프로도 아니다. 187개 대회에 출전하면서 단 한 번의 우승도 거두지 못하더니 2013~14년 시즌에 투어에서 3승을 거뒀고 2015년에 2승을 더하면서 세계 랭킹 20위권에 진입하는 동시에 메이저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게다가 만약 프로 골프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지더라도 워커에게는 또 다른 카드가 있다. 그는 뛰어난 천문 사진작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천문학적인 급상승이 전혀 놀라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소니오픈에서 9타 차의 놀라운 우승으로 2015년 시즌을 시작했다. 완전히 ‘경지’에 올라선 기분은 어땠나.
그린에서 라인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고 잔디의 결도 파악했다. 모든 걸 완벽하게 계산했다. 라인을 따라 볼을 굴려 보냈는데, 매번 너무 완벽했다. 백발백중이었다. 마음속에 단 한 점의 의구심도 없었다. 그런 게 모두가 말하는 경지인 건데, 모든 일이 다 벌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으면 이런 느낌이 든다. “이런 세상에,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두 달 후인 3월에는 투어에서 5승째를 거뒀다. 그것도 당신의 고향인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발레로텍사스오픈이었다. 그 우승은 어떤 의미였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열린 토너먼트는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일이다. 그런데 우승까지? 그건 너무나 대단하다. 우승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많은 친구들과 기쁨을 나눈 것은 내게 무척 큰 의미였다. 우리는 5리터 와인을 따고 피자를 먹고 뒷마당에 앉아 그날의 경험을 만끽했다. 그렇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든 우승은 각각 다르고, 전부 특별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를 배우게 된다. 발레로에서는 내게 달려드는 젊은 종마를 막아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성공했다. 돌진하는 조던 스피스와 같은 조로 출전했지만, 그를 잘 막아냈다.
엄청난 경험이었다. 그렇게 맞대결을 펼친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호적수였고,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였다. 다행히 나는 꽤 많은 격차로 앞서 나갔다. 재미있었다. 조던은 멋진 친구다. 그와 그의 태도에 대해서는 칭찬밖에 해줄 말이 없다.


요즘 잘 나가는 최고의 선수들 중에는 텍사스 출신이 많다. 일단 생각나는 사람만 해도 스피스 외에 패트릭 리드가 있다. 그 지역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나.
뭐, 그렇다. 나는 늘 이런 농담을 한다. “텍사스, 그곳은 세계 최고의 나라”라고(웃음). 그곳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리고 단언컨대, 텍사스 사람들처럼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나는 미국 전역, 세계 곳곳을 다녀봤지만, 텍사스를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


투어에서 첫 승을 거뒀을 때 스피스는 열아홉 살이었다. 당신은 서른네 살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우승의 돌파구를 연 것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을까? 떠돌이 생활이 품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었나.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많은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투어에 등장하자마자 성공하는 사례는 드물다(스피스처럼). 물론 그건 골프계에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골프계에는 또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도 필요한데,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다. 나는 단지 골퍼 지미 워커이기만 한 게 아니다. 내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 어린 두 아들이 있으며, 멋진 가족이 있다. 내가 발전한 데에는 이런 점들이 모두 기여했다.


투어에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우승을 하는 것도 참 힘들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동안, 오래 버티기만 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테니 오래 버텨보겠다는 식의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겐 기회가 있었다. 출전 카드를 손에 쥐었다는 건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사실상 한두 주 운이 따르면 그걸로 끝이다. 스무 대회만 나갈 수 있으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나도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큐스쿨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배우고 깨달으면서 더 발전하게 된다. 내가 큐스쿨을 통과하자마자 조던 스피스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를 제패하며 골프계를 석권했다면 다른 사람이 됐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거야 나도 모르고,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오직 내가 겪은 일,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들만을 알 뿐이다. 이제 나는 서른여섯 살이다. 많은 경험을 했다. 아내와 아이들, 가정이 있고, 일상 속에서 많은 일이 벌어진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겪어온 일들 중에 바꾸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


어려운 일도 겪었을 텐데.
2007년에 아내인 에린이 생활비가 없다며 다시 직장에 나가겠다는 얘기를 했다. 정말 힘들고 버거운 대화였다.


그때가 제일 밑바닥을 쳤을 때인가.
아니다. 제일 밑바닥이었던 때는 2008년, 2009년 무렵이다.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거면 이걸 계속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물론 PGA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정말 힘겨웠고, 상금랭킹 125위로 시즌을 마쳤을 때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2009년에 내가 그랬다. 그러면 하나도 재미가 없다. 그저 버티는 생활이고, 그 생활이 본인과 가족과 삶 전반에 미치는 압박감은 엄청나다.


그러다가 어떻게 됐나.
4년쯤 전에 패턴을 바꿨다. 상금랭킹 125위에 머물러 있는 것에 신물이 났다.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방법이 잘못됐었고, 뭘 바꿔야 할지 알고 싶었다. 내가 더 나아지려면 어떤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야 할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교습가를 찾아갔다. 매니저도 새로 얻었다. 내 몸과 부상을 책임져주는 트레이너도 구했다. 이 모든 사람들로 팀을 이뤘고, 아주 큰 도움을 받았다. 공을 인정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의 발전에 정말 큰 힘이 되어줬다.


그런 변화를 이끈 주역 가운데 1명이 스윙 코치인 부치 하먼이었다. 당신의 게임과 선수 인생에서 그는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가.
처음 부치를 찾아갔을 때 나는 나를 빈 서판이라고 표현했다. ‘샷을 할 테니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지적했고, 둘이서 그걸 해냈다. 아직도 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고, 이런저런 것들을 다듬을 것이다. 그가 옆에 있어준 덕분에 정말 바람직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2년 동안 5승이면 바람직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비결 몇 가지만 말해 달라. 부치의 지도하에 어떤 변화를 시도한 건가.
그는 내게 엄청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세계 최고의 교습가가 계속 잘한다고 말해주고, 우승할 거라고, 그것도 아주 많이 할 거라고 말해주는데, 그러다가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기분이 묘하다.(웃음). 그는 정말 말 그대로 자신감을 내게 주입해준 것 같다. 부치는 선수에게 자신의 말을 믿게 만들고, 스스로를 믿게 만든다.


처음 만났을 때의 분위기는 어땠나.
말할 수 없이 주눅이 들었다. 그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그가 ‘그래서 뭘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실력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지켜보는 앞에서 샷을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거들먹거리거나 거물인 척하지는 않았다. 그는 구식 스타일의 친절한 노인이었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샷을 하고 났을 때는 이런 느낌이 들었다. ‘와, 정말 생산적인 기분인데.’ 정말 좋았다.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좋은 교습가를 말해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옳다는 걸 믿게 만들었다. ‘느낌이 어떠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는 느낌 같은 것에는 개의치 않는다. 스윙 변화가 처음에는 좋은 느낌일 리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이렇게 말한다. ‘잘하고 있어.’ 아니면 ‘잘못하고 있어.’ 그는 직설적이고, 그 점이 좋다.


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당신 스스로를 믿고, 과정을 신뢰하게 된 것 같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믿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고, 우리는 이렇게 할 텐데, 그 이유는 이렇다.’ 그 말을 들으면 ‘맞아, 맞아, 바로 그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반박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대단한 신뢰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신뢰하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늦게야 부치를 찾아왔다. 사람들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나이가 들수록 변하는 건 어렵다. 그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많은 수양이 필요했다.


부치에게서 그렇게 큰 도움을 받고 보니 그런 사람을 떠난 타이거의 결정이 미친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던가.
나로서는 타이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 않겠나. 저렇게 잘 나가면 모든 게 순조롭다는 건데 왜 바꾼다는 거지? 타이거의 행동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은 마음에 든다.


일단 그런 수준에 도달하면 선수들은 메이저 대회를 중심으로 시즌 일정을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도 그렇게 하고 있나.
그렇게 하는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세계 랭킹이 올라가면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세계 대회가 달라지고, 그렇게 다른 일정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그런 상황이 내게는 너무 새롭다. 나는 아직까지 그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가속 페달’을 밟고 있지는 않다. 준비만 제대로 진행된다면 어떤 코스, 어떤 토너먼트라도 나가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메이저대회도 그냥 골프일 뿐이다. 여전히 매주 만나는 그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요란하지 않고 조용히 처신하는 사람이다. 그런 태도 때문에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덜 받게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나.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서른다섯을 넘었다. 어린 친구들이 즐기는 재미있는 일들을 전부 하면서 살지만, 그걸 소셜미디어에 올려서 공개하지는 않는다.


투어 우승자 중에 아내의 트위터 팔로어 수가 더 많은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것이다.
(웃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에린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알고, 그에 맞춰 잘 처신한다. 나하고는 잘 안 맞는다. 트위터는 희한한 공간이다. 트위터를 통해 새로운 소식을 접하는 건 좋지만 악의적인 내용도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더 많이 한다. 골프코스를 벗어나면 나는 예술가에 가깝다. 나는 천문학을 좋아하고 천체 사진을 찍는다. 그걸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을 보여준다. 내가 생각하는 인스타그램은 진정한 팬, 내게 관심을 가지고 내 진면목을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인 것 같다. 트위터도 잠깐 해봤지만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내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아내의 트위터 팔로어보다 많다(웃음).


2014년에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열렸던 라이더컵 얘기를 해보자. 첫 라이더컵이었는데, 미국팀이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인 경험이었나, 부정적인 경험이었나.
팀과 미국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고, 엄청난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선수들을 새롭게 만나서 어울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많은 것을 얻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점을 알게 됐나.
내가 샷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대회를 마치고 나니 너무나 피곤했다. 라이더컵에서 내가 했던 샷은 하나하나가 전부 내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나는 리키를 위해 플레이를 했다(워커는 네 번의 매치에서 리키 파울러와 짝을 이뤘다). 그리고 팀을 위해 플레이를 했다. 그건 내게 큰 의미였고,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메이저대회에서 2승을 거둔 상태였던 로리 맥길로이와 맞대결을 펼치는 기분은 어땠나.
엄청났다. 퍼팅에서 로리에게 앞섰다는 게 하이라이트였다. 벙커샷을 그대로 홀인시키고(이글), 칩샷을 성공하면서, 싱글 매치를 차지한 것(워커는 리 웨스트우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모든 게 긍정적이고 놀라운 한 주였다. 그때의 사진을 다시 보면 수많은 관중들과 그들이 우리를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정말 놀라웠다. 다음 대회에도 참가하고 싶다.


천체 사진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천체 사진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나.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짬을 내서 취미생활을 한다. 그러기 위해 효율적인 생활을 하게 됐다. 아니면 그게 원래 내 스타일인지도 모른다. 몇 주씩 사진에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한두 시간 만에 뚝딱 완성하기도 한다. 이건 마음을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다. 두뇌활동에도 도움이 된다. 게임 외에, 일상을 벗어나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나 직업 이외의 취미생활을 가져야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끝난 라운드에 집착하는 편인가.
다들 나를 너무나 침착하고 평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불같은 성격이다. 화가 폭발할 때도 있다. 속으로 다스리지만 울화통이 나기도 한다. 조용한 분노라고 할까. 내 생활도 늘 장미꽃과 데이지가 만발한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정리하고 잊어버려야 한다. 라운드를 마치고 45분만 지나면 차분해진다. 감정을 분출할 통로가 있어야 한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살면서 좋지 않은 날을 겪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우리는 그럴 경우 온라인과 TV로 중계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쉽지 않은 생활이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낯설지만 앞으로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는 절대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건 알다시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웃음).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안정된 가정생활이 더 뛰어난 선수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나.
물론이다. 선수에게는 균형 감각이 중요한데, 그걸 갖추는 데 도움이 됐다. 조금 더 넓은 시각도 제시해준다. 가정을 꾸리기 전에는 언제나 골프가 우선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는 게임을 멀리하고 눈을 돌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한 주 정도 쉬는 건 괜찮다. 두 주 정도 쉬어도 괜찮다.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당신은 떠돌이 프로에서 초대형 스타가 됐다. 골프계에 어떤 발자취를 남기고 싶은가.
글로 정리될 수 없는 수준의 자취를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막 시작이라는 느낌이며, 그랬으면 좋겠다. 부치는 늘 내게 ‘너는 아직 완성되려면 멀었다’고 말한다. 나도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앞으로 골프에서 더 많은 걸 이루고 싶다. 나는 서른여섯 살이지만 요즘 나오는 어린 친구들보다 샷거리가 더 길다. 칩샷과 퍼팅 실력도 그 어느 때보다 좋고, 샷 실력도 그 어느 때보다 좋으며, 게임을 운영하는 전략은 더 현명해졌다. 그러니까 희망을 이룰 조건이 잘 무르익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빈털터리에서 부자가 되기까지
0승
워커가 첫 시즌부터 일곱 번째 시즌까지 PGA 투어에서 거둔 승수

5승
워커가 지난 두 시즌 동안 PGA 투어에서 거둔 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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