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 골퍼가 된 후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안병훈(24)을 만났다. 한국 골프를 짊어질 대들보로 성장하고 있는 그가 프로 데뷔 첫 우승, 2015 프레지던츠컵 불참에 대한 아쉬움,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인터뷰 직후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 낭보를 전했다.

왕년의 탁구스타 부부인 안재형, 자오즈민의 외아들이자 한국인 최초, 역대 최연소 US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온 안병훈. 한국 골프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받았지만 그의 존재감은 잠시 미약했다. 2010년 프로 전향을 선언한 뒤 PGA 투어 진출을 노렸지만 실패, 바로 유러피언 투어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관심도가 극히 떨어지는 챌린지 투어(유러피언 투어 2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3년 간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레 그에 대한 시선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병훈의 재능과 잠재력은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골프 매니지먼트계의 거물인 앤드류 처비 챈들러가 이끄는 ISM(International Sports Management)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이 그를 방증한다. ISM은 로리 맥길로이의 성공에 혁혁한 기여를 했고, 현재 리 웨스트우드, 루이스 우스투이젠 등 유러피언 투어 출신의 세계적인 선수들이 소속돼 있는 굴지의 매니지먼트사다.

2012년 초에 안병훈과 계약한 ISM의 눈은 정확했다. 안병훈은 2014년 챌린지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메이저대회 브리티시오픈에서는 26위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유러피언 투어 메이저인 BMW PGA 챔피언십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그는 US오픈 출전과 브리티시오픈 3회 출전권 등을 얻으며 더 높이 비상할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9월20일, 3년 5개월 만에 출전한 국내 대회 신한동해오픈에서 동갑내기 친구인 노승열과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ISM과 더불어 스윙 코치 데이비드 리드베터가 그를 지도하고 있고, 아버지가 메던 골프백도 뉴질랜드 출신의 프로 캐디가 건네받아 글로벌한 ‘팀 안병훈’까지 갖췄다. 이처럼 ‘기린아’에서 어엿한 ‘대들보’로 성장하고 있는 186센티미터, 90킬로그램의 거구는 해외파 선수답게 인터뷰 내내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반면 최종 명단에 합류하지 못해 출전이 불발된 프레지던츠컵 이야기를 할 때는 진지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프레지던츠컵 최종 명단 발표를 앞두고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며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2016년 올림픽 출전, PGA 투어 입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최근 근황은 어떤가.
최근 2주 동안 푹 쉬었고, 이번 코리안 투어 신한동해오픈에 초청선수로 참가하게 돼 한국에 오게 됐다. 신한동해오픈 이후에는 다시 4주 연속으로 유러피언 투어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투어 파이널 시리즈를 끝으로 올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프로 데뷔 첫 우승을 경험한 덕분에 안병훈에게 올 시즌은 매우 특별할 것 같다.
그렇다. 데뷔 첫 우승 당시에는 매우 흥분했다. 대회를 완전히 마치고는 기쁜 마음과 함께 기량이 뛰어난 톱플레이어들이 많이 출전한 가운데 우승을 차지해서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이 컸다. 또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3년간 유러피언 투어 2부 격인 챌린지 투어에서 생활했는데, 힘든 부분은 없었나.
대회장 간의 이동거리가 길고 차량도 따로 렌트를 해서 다녀야 한다. 1부 투어보다 당연히 대회 상금액도 적고, 시합 당일이 아니면 밥도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웃음). 전체적으로 조금 열악한 편이다보니 가끔은 투어 경비를 조금 줄이는 환경이 만들어지더라.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힘들었다기보다 다양한 코스와 많은 대회를 경험할 수 있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고 본다.


2009년 US아마추어 우승도 했고, 집도 미국이다. 그런데 웹닷컴 투어가 아닌 유러피언 챌린지 투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PGA 투어와 웹닷컴 투어 모두 퀄리파잉스쿨에서 낙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러피언 투어에 응시했는데 챌린지 투어에 합격했다. 아쉬웠지만 유러피언 투어 역시 대단히 큰 무대이고, 충분히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유러피언 투어에 뛰어들었다.


지난해까지 아버지가 캐디, 지금은 독립. 어떤 점이 달라졌나.
아무래도 투어 전문 캐디이다보니 코스 공략이나 플레이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플러스 요인이 된다. 그 전에 아버지가 캐디를 했을 때는 거의 내가 다 알아서 했는데, 그 때와는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섭섭해 할 수도 있는데. 투어 캐디를 고용한 뒤 플레이가 더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시합 외적인 부분에서는 미국 올랜도 집에서 할머니가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부모님이 도와주는 부분은 없나.
프로로 전향하고 나서는 경기 내적인 부분에서는 딱히 없다. 다만 최근에는 화면을 통해서 내가 잘 못하고 있을 때나 멘탈이 흔들리는 게 보이면 그런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내가 나를 TV 화면으로 봐도 멘탈이 흔들리는 게 딱 보인다(웃음).


아마추어 시절에 라운드 중 화가 나면 클럽을 부러뜨리는 등 승부욕이 과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많이 성숙해진 모습이다. 자신만의 마인드 컨트롤 노하우가 있는지.
정말 많이 좋아졌다(웃음). 그렇게 화를 내는 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후로는 최대한 차분하려고 노력한다. 특별한 마인드 컨트롤 노하우는 없지만 많은 홀이 남아 있고 지금 하는 대회가 마지막 대회가 아니니 실수를 통해 배워나가자는 생각을 자꾸 하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PGA 투어의 메이저대회를 경험했다. 일반 대회와 어떻게 다르던가.
우선 갤러리와 대회 관계자 등 사람이 엄청 많다. 그리고 코스가 일반 대회보다 훨씬 어렵다. 올해 참가한 대회에서는 나름 괜찮았다. 물론 컷 탈락을 하는 등 최종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동갑내기 노승열, 조던 스피스 등 영건들의 미국 무대 활약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일단 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게 부럽다(웃음). 나 역시 집이 미국에 있어 PGA 투어 활동을 하면 더 가깝고 편하게 투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조던 스피스는 올 시즌 엄청나다.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선수다.


이번 프레지던츠컵 출전 선수로 이름이 거론될 때 기분이 어땠나.
세계적인 대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감이 컸다. 최종 명단 발표를 앞두고 전화를 계속 기다렸다. 오죽하면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입술까지 부르틀 정도였으니까. 확실히 명단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다. 그런데 최종 명단 발표를 앞두고 닉 프라이스에게 직접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제외하게 돼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단장이 직접 전화를 했더라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을 텐데.
솔직히 조금 우울했다(웃음).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더욱 실망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BMW 챔피언십 우승 후에 세계랭킹은 높아졌지만 그 이후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캡틴스 픽(Captain’s Pick), 단장의 추천으로 최종 2명의 선수가 뽑히는 상황이니까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단장 추천 선수로 출전하게 된 (배)상문이형이나 스티븐 보디치 모두 매우 훌륭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단장의 의사를 존중한다. 나중에 나를 포함한 한국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맹활약을 하면 다시 한국에서 프레지던츠컵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안병훈의 최대 강점은 드라이버샷인데, 앞으로 보완할 점이 있나.
현재로서 전체적인 샷은 큰 문제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퍼팅이다. 우승했던 BMW 챔피언십에서만 퍼팅이 잘 되고 나머지 대회에서는 형편없었다. 퍼팅이 잘됐으면 아마 더 많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때문에 퍼팅의 중요성에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세계적인 교습가인 데이비드 리드베터에게 교습을 받고 있는데.
리드베터에게도 레슨을 받고, 퍼팅의 경우 대회장에 퍼팅 전문 교습가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기도 한다. 또 퍼팅 관련 레슨서를 볼 때도 있다. 하지만 퍼팅은 특히 자신만의 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 및 목표가 있다면.
사실 올해가 PGA 투어 진출 기회였다. 큰 대회에 꽤 많이 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브리티시오픈 출전이 예정돼 있고, WGC 중국 대회도 출전한다.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서 최대한 빨리 미국 무대에 입성하겠다. 유러피언 투어를 뛰다가 웹닷컴 투어로 가기에는 부담이 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바에는 유러피언 투어의 활약으로도 충분히 미국에 진출할 수 있다. 리 웨스트우드, 로리 맥길로이 등 많은 선수들이 유러피언 투어의 활약에 힘입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조금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많은 경험을 쌓고 미국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친이 자신은 탁구 국가대표 지도자로, 아들은 골프 국가대표 선수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동반 출전하는 것을 꿈꾸더라. 알고 있었나.
아버지의 그런 바람을 잘 알고 있다. 나도 꿈꾸는 멋진 일이다. 올림픽이 당장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세계랭킹이 출전자격에 크게 반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잘할지 모르는 게 골프지만 나 역시 올림픽 출전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고,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꼭 브라질에 가고 싶다.


다른 스포츠 종목 중 탁구가 아닌 축구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특히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라고 들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최근까지도 잘 챙겨보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손흥민 선수가 독일 레버쿠젠에서 잉글랜드의 토트넘으로 이적해 관심이 간다. 한국 선수가 외국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걸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박지성 선수가 있을 땐 열렬히 응원했었는데 요즘 조금 시들해졌다. 응원 팀을 토트넘으로 갈아탈까 생각 중이다(웃음).


롤모델이 있나. PGA 투어에서 함께 플레이해보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딱히 롤모델로 정한 선수는 없다. 단지 많은 선수들이 갖춘 저마다의 장점을 보고 배우고자 하는데, 굳이 1명을 꼽자면 타이거 우즈 아니겠는가. 그리고 최근 맹활약 하고 있는 조던 스피스, 로리 맥길로이, 제이슨 데이와 함께 겨뤄보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샷과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


안병훈을 응원하는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한국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어서 인기를 피부로 느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미디어 관계자들이나 부모님의 얘기를 들어보면 많은 골프 팬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테니 앞으로도 많은 응원 바란다.


안병훈 Profile
생년월일: 1991년 9월17일
신장: 186센티미터
프로데뷔: 2010년
주요기록
2009 US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
2015 유러피언 투어 커머셜뱅크 카타르 마스터스 5위
2015 유러피언 투어 BMW PGA 챔피언십 우승
2015 코리안 투어 신한동해오픈 우승
2015 유러피언 투어 상금랭킹 9위(2015년 9월13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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