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파머. 사진출처=ⓒ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의 스윙은 지문과 같아서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미국의 프로골퍼 제임스 로버트 허먼(James Robert Herman)이 남긴 명언이다.

신시내티대학을 나와 2000년 프로로 전향, 2부 리그인 네이션와이드 투어에서 1승, PGA투어에서 1승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프로골프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이 한 마디는 골프라는 불가사의한 험로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에게 영원히 풀기 어려운 화두로 남아있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골프의 스윙도 사람마다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설파한 이 한 마디는 스윙의 무궁무진한 수수께끼를 전해준다.

허먼은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스윙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말했지만, 골프라는 망망대해를 헤매는 골퍼들에겐 사람마다 스윙이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도 스윙마다 같을 수 없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손을 씻을 수 없다. 강물은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이다. 지금 손을 스쳐 간 물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자세나 리듬이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샷을 최상의 덕목으로 여기는 골프에서도 두 번 다시 같은 샷을 날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많은 연습을 하더라도 비슷하게는 칠 수 있을지 몰라도 똑같은 샷은 만들어낼 수 없다. 복잡하지 않고 간명한 샷을 자랑하는 닉 프라이스나 프레드 커플스 등도 같은 샷은 두 번 다시 만들지 못한다.

골프에서 ‘똑 같은 샷’이란 꿈일 뿐이다. 아무리 이상적인 스윙을 터득하고 최상의 조건을 유지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같은 샷은 만들어낼 수는 없다. 내 몸의 컨디션이 같지 않고 코스의 여러 조건이 다르고 날씨나 동반자가 다르기에 거기에 대응하는 나도 한결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골프의 이런 속성 때문에 골퍼들은 습관처럼 ‘…했더라면’ ‘…만 아니었더라면’하고 곧잘 가정법의 발언을 하곤 한다. 

‘잡아당기지만 않았으면 OB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 
‘3퍼트만 아니었더라면 신기록을 낼 수 있었는데…’ 
‘바람만 안 불었더라면 벙커에 빠지지 않고 버디 찬스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 홀 더블보기만 없었으면 생애 최저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는데…’ 

골프장에서 가정법은 끝이 없다. 그러나 골프를 제대로 즐기려면 가정법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가정법이란 잘못된 실수에서 태어난 것이기에 지난 실수를 생각할수록 속이 상하고 후회스러울 뿐이다. 골프는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않아야 즐거운 운동이 될 수 있다.

골프의 제왕 아놀드 파머도 ‘한 번만 더 칠 수 있다면…’하고 말했지만 가능한 한 ‘…했더라면 …했을 텐데’는 금물이다.

아놀드 파머는 1966년 US오픈 마지막 날 9홀을 남기고 같은 미국의 빌리 캐스퍼에게 무려 7타나 앞서 있었다. 파머의 우승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골프기자들은 다투어 파머 우승을 미리 타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종 라운드가 끝난 뒤 기자들은 미리 보낸 기사를 취소하고 급히 새 기사를 타전하는 소동을 벌여야 했다. 

나머지 9홀을 파머는 보기를 연발했고 캐스퍼는 연거푸 버디를 잡아내 마침내 동타를 만들고 연장전 첫 홀에서 파머를 무너뜨렸다.

연장전 첫 홀에서 홀아웃하면서 파머가 뱉은 “만일 볼을 한 번만 더 칠 수만 있었다면….”이란 혼잣소리는 진정이었을 것이다. 

PGA투어 최다승(82승) 기록 보유자인 전설적인 프로골퍼 샘 스니드도 1939년 US오픈서 마지막 홀을 보기인 5타만 쳐도 우승할 수 있었는데 8타를 쳐서 자멸했다. 마지막 홀에서 파는 물론 보기만 했어도 우승을 차지하고 더블보기를 해도 연장전에 들어갈 수 있었던 스니드는 두 명의 추격자가 동타인 것으로 착각, 무리하게 공략하다 트리플 보기를 범해 크레이그 우드에게 우승을 안겼다. 

스니드에게 “티 샷을 다시 한번 할 수 있다면…”이라는 아쉬움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그 후 스니드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만 네 차례 했을 뿐 끝내 우승은 하지 못했다. 

내로라는 명 프로골퍼들도 후회하며 가정법의 발언을 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이런 습관이 배지 않도록 삼가야 한다. 

물은 이미 흘러갔다. 지난 홀의 실수를 후회하지 말고 다가올 홀에서 멋진 샷을 날릴 것을 기대할 일이다. 

그러나 흘러간 물, 미스 샷이 결코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의 성공을 이루기 전에 수많은 실패가 바탕이 되듯 지금 이 순간의 멋진 샷은 수많은 미스 샷들을 밑거름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왜 미스 샷이 나왔는지를 찬찬히 뜯어보면 미스 샷을 내지 않는 방법은 그 안에 있다. 미스 샷이 많을수록 그 해법 찾는 일 또한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많은 미스 샷이 결국 멋진 샷을 만들어내는 텃밭임을 깨닫기만 한다면 골프는 결코 고행이 아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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