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의 우승을 물세례로 축하해 주는 최혜진. 사진제공=Golf Australia
[골프한국 하유선 기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는 매년 재능 있는 선수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해 박성현(25)이 낸시 로페스에 이어 39년 만에 신인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는 등 3관왕에 오른 지 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대기록이 나왔다. 그 주인공은 201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상 수상자 고진영(23)이다.
올해 미국과 한국 여자 프로골프 무대에서 각각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고진영과 최혜진(19)이 설 연휴 호주에서 나란히 우승과 준우승을 휩쓸며 화려하게 '슈퍼루키'의 등장을 알렸다.


LPGA 데뷔전서 우승…67년 만에 대기록

고진영은 LPGA 투어 공식 데뷔전인 호주여자오픈 1~4라운드에서 한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는 '와이어투와이어' 완승을 거뒀다. 지금까지 LPGA 투어에서 데뷔 무대를 이만큼 화려하게 장식한 선수는 없었다. 1951년 베벌리 핸슨(미국)이 데뷔전에서 우승했지만, 현재 LPGA 투어의 두꺼운 라인업을 감안하면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LPGA 투어 공식 데뷔전만 본다면, 미국 무대 첫해에 3관왕에 오른 박성현이나 신인 시절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한 전인지(23), 그리고 세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 박세리(41)조차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고진영이 세운 것이다. 박성현은 2017년 3월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단독 3위, 전인지는 2016년 2월 코츠 골프 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올랐다.

고진영은 LPGA 투어 루키지만, 무늬만 신인이다. 2014년 KLPGA 투어에 뛰어든 그는 첫해 1승, 2015년과 2016년 3승씩, 그리고 2017년 2승 등 국내 투어에서 통산 9승을 쌓았다. 여기에 지난해 영종도에서 열린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을 추가했다.

고진영은 LPGA 투어 풀 시드를 획득한 뒤에도 미국 진출을 놓고 신중했다. 적지 않은 선수들이 LPGA 투어 적응에 실패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10년 뒤 후회하지 않으려면 가야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철저하게 준비했다.

첫째 언어장벽. KLPGA 투어에서 뛰면서도 한국 선수 경험이 많은 노련한 딘 허든(호주)에게 캐디백을 맡겨 영어와 현지 적응에 도움을 받았다.
미국 진출에 앞서 올 시즌 목표로 '1승과 신인왕, 그리고 영어 인터뷰'라고 밝혔던 고진영은 데뷔전에서 이미 두 가지를 달성했다. 우승을 거뒀고 아직은 완전하지 않지만 현장 중계 카메라 앞에서 영어로 소감과 포부를 말했다.

둘째 체력 강화. 고진영은 2017시즌이 끝난 뒤 한달 정도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하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거리 이동이 많고 출전 대회가 많은 LPGA 투어 일정을 겨냥해 강한 체력이 필수라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LPGA 투어는 비행시간이 많고, 골프를 치는 날들이 많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과 시차 적응에 대해서 많은 노하우가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셋째 스윙 다듬기와 쇼트게임 업그레이드. 드라이버와 아이언이 정확하기로 유명한 고진영이지만 뉴질랜드에서 한 달 동안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 "아무래도 스윙에 기복이 있는 편이라 스윙을 다듬는데 노력을 했다. 또 쇼트게임에서도 부족함을 느껴서 100야드 이내에서의 감각적인 부분에 있어서 연습을 많이 했다. 퍼팅이나 그런 부분에서의 큰 변화는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전지훈련에서 코치 없이 뉴질랜드를 잘 아는 KLPGA 투어 선수 조정민 프로와 둘만 가서 연습했다. 고진영은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이런 준비와 노력은 호주여자오픈에서 고스란히 성적으로 드러났다. 평균 250야드의 드라이브샷은 거의 페어웨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나흘 동안 56번의 티샷 중 단 4번만 페어웨이를 벗어났을 뿐이다. 그린 적중률도 84.7%(61/72)에 이르렀다. 매 라운드 14∼16차례 정규 타수 내에 공을 그린에 올렸다. 특히 16개의 파5홀에서 총 11개의 버디를 잡아냈다.

고진영이 이번 데뷔전에서 보여준 샷감과 경기운영, 정신력이라면 신인왕은 물론 상금왕, 올해의 선수 등 주요 타이틀을 다툴 만하다.


프로 신분으로 출전한 LPGA 투어 첫 대회

작년 7월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서 3라운드까지 공동 2위를 달려 아마추어 선수로 50년 만에 이 대회 우승을 노렸던 최혜진은 마지막 날 공동 선두까지 올랐지만 수차례 최고의 샷을 날리고도 버디 퍼트를 완성하지 못하는 바람에 2위로 만족해야 했다. 우승은 못했으나 이를 계기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며 '월드 스타'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혜진은 호주에서도 뒷심이 돋보였다. 1~3라운드에서 선두권에 머무르면서 우승 기회를 엿보던 그는 마지막 날 고진영보다 2타를 더 줄였지만, 3라운드에서 5타 차로 벌어졌던 간격을 만회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대회에서 단독 2위의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12월 미리 열린 KLPGA 투어 2018시즌 개막전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아마추어 우승 포함 3승째)을 터트린 그는 올해 국내 대회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고진영 외에도 이번 호주여자오픈에서는 유독 신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전날 3라운드에서 단독 2위였던 한나 그린(호주)도 LPGA 투어 루키다. 최종일 챔피언조 고진영과 맞대결을 벌이며 나란히 3타를 줄인 그린은 단독 3위로 마쳤다.

앞서 2라운드에서 단독 2위에 나섰던 에마 톨리(24·미국)는 지난해 2부투어(시메트라투어)에서 상금 9위로 올해 LPGA 투어 카드를 손에 넣었다. 톨리는 3라운드에서 주춤했다가 마지막 날 힘을 내면서 공동 7위에 올랐다. 또 한 명의 신인왕 경쟁자 조지아 홀(잉글랜드)은 공동 13위에 입상했다. 홀은 마지막 날 5언더파 67타를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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