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가 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KPGA
[골프한국 조민욱 기자] “부담 없이 경기에만 집중하겠습니다.”

메이저 대회에 필적하는 권위를 지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2타 차 역전 우승에 나서는 김시우(22)의 각오는 예상보다 담담했다.

15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 TPC 스타디움 코스(파72)에서 열린 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4라운드. 김시우는 그의 말처럼 매홀 경기에만 집중했다. 만 21세 영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관록의 미를 내뿜는 베테랑다운 모습이었다.

이날 18번홀(파4) 그린 주변에 몰려든 갤러리들은 김시우의 퍼트에 이목이 집중됐다. PGA 투어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김시우는 이미 3타 차 단독 선두로 우승이 결정돼 있었고, 이 홀에서 파를 기록할지 버디를 잡을지가 남아 있었다. 여유 있게 파로 막아낸 김시우는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를 기록, 챔피언조의 결과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했다.

김시우가 이처럼 압박감과 흥분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함을 유지하며 PGA 투어 두 번째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과거 미국 무대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험난한 고행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 6월 28일 서울에서 태어나 6살 때 골프채를 처음 잡은 김시우는 ‘골프 신동’을 거쳐 고등학생이던 2012년 PGA 투어 관문이었던 퀄리파잉(Q)스쿨에 최연소(17세5개월6일)로 합격해 크게 주목 받았다.

화려한 세계 무대 데뷔였지만 PGA 투어에 가는 길이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만 18세가 되기 전이라 투어 카드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김시우는 이듬해 PGA 투어에 입성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랐다. 2013년에 고작 8개 대회에 출전, 7차례 컷 탈락에 한 차례 기권이라는 암담한 시즌 성적표를 받았다. 당연히 손에 쥔 상금도 없었다.

2014년 2부 투어로 강등된 이후에도 김시우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19개 대회에 출전해 네 차례 컷을 통과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클래블랜드 오픈에서 단독 3위를 차지한 것이 유일한 ‘톱25’ 기록이었다. 그해 받은 상금은 대략 4만5,000달러로 당시 2부 투어에서 시즌 상금 96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힘든 성장통을 겪어낸 김시우는 단단하게 성숙했다. 2015년 2부 투어에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1부 투어를 목표로 재도전한 김시우는 25개 대회에 출전해 스톤브래 클래식 우승을 비롯해 18차례 컷을 통과했다. 상금랭킹 10위(약 22만5,000달러)에 올라 지난해 PGA 투어 무대를 다시 밟을 수 있었다.

2년 동안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내실을 다진 김시우는 2013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작년 8월 정규시즌 마지막 대회인 윈덤 챔피언에서 2위를 5타 차이로 제친 압승을 거뒀다. 당시 김시우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연상시키는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우승을 자축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 큰 기대 속에서 출발한 김시우는 올해 들어서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지난해 말 허리 부상 탓인지 14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을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 대회 전까지 김시우는 페덱스컵 랭킹에서도 132위에 그쳤다. 특히 초반엔 4개 대회에서 연속 컷 통과에 실패하는 등 ‘2년차 징크스’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우려 속에서도 김시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퍼팅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집게 그립'으로 바꾸는 등 부단히 노력했고 샷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그는 "올해 들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지만, 2~3주 전부터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실패를 통해 압박감을 이겨내는 법을 배운 김시우는 세계 남자골프계의 정상급 선수들이 모두 참가한 이번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나흘 동안 흔들림 없는 견고한 골프로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두 제쳤다. 김시우가 ‘한국 남자골프의 미래’로 언급되는 이유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