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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리와 준법감시인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투명성이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술적 감시와 검증능력이 크게 높아졌다. 실제로 서울 시내를 오가는 시민들은 수시로 CC TV카메라에 포착되고 기록이 남는다.

요즘은 차량용 블랙박스 장비도 꾸준히 보급되고 있다. 운전석 옆에 이 장치를 부착해 놓으면 결정적 상황이 고스란히 녹화된다. 갑자기 차에 뛰어 들어 상처를 입고 돈을 뜯어내려는 소위 자해공갈단 범죄가 들통난 일도 있다.

요즘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대기업들은 ‘준법감시인’을 두고 있다. 기업의 각종 경영활동이 적법하게 그리고 윤리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점검하는 직책이다.

골프는 신사숙녀들의 운동이다. 모든 스포츠가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해야 하고 룰을 지켜야 하는 스포츠맨십이 필요하지만 특히 골프는 심판이 없는 경기이다 보니 더욱더 정정당당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비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룰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다. 룰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아예 룰을 몰라서 지키지 않는 경우와 룰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느 쪽이 더 나쁜가는 따질 것도 없다. 룰을 지키지 않으면 더 이상 스포츠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룰을 모르고 골프를 하는 것은 교통법규를 모르고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공 때리는 법만 배워가지고 필드로 나와서는 안되고 반드시 룰 북을 몇 번씩 읽어 보고 나와야 한다.

벙커에 빠진 공을 칠 때 모래에 클럽이 닿으면 안 된다는 것은 대부분 잘 알고 있고 또 잘지킨다. 그러나 공이 풀이 우거진 해저드 지역에 빠졌을 경우 벌 타를 먹고 공을 빼내는 대신 그 자리에서 공을 칠 수는 있지만 클럽을 땅에 대거나 풀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그런데 어떤 플레이어는 해저드 지역이 공이 빠지니까 그 주변을 벌초하듯이 깨끗이 정리정돈한 다음에 채를 휘두르는 것을 보았다.

상대방을 속이는 것은 경범죄에 속하는 가벼운 것부터 중범죄에 속하는 무거운것 까지 있다. 상대방 몰래 디봇에 빠진 공을 살짝 건드려서 좋은 곳으로 옮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공이 분실됐을 때 주머니 속에서 다른 공을 살짝 꺼내 놓고 플레이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는 5번 아이언으로 치고도 6번 아이언으로 쳤다고 일부러 틀린 정보를 주어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도 있다. 필드에서 불법행동이나 속임수를 쓰는 사람은 일상생활이나 비즈니스에서도 비리를 저지르기 쉬운 사람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사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깎아 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초보자 시절 뉴코리아 CC를 많이 다녔다. 그때 별명이 ‘발바리’인 동반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공이 러프쪽으로 날아가면 반드시 그 사람의 뒤를 따라 다녔다. 상대방이 걸어가면 같이 걸어가고 뛰어가면 같이 뛰어서 따라 다녔다. OB지역 근처 러프에 빠진 공을 찾아주려는 의도보다는 상대방이 알가기를 하거나 OB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정말 부지런히 쫒아 다닌 사람이다.

한 명이 채를 들고 뛰면 이를 악물고 반드시 이 발바리가 따라 뛰었고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때 우리는 이 강박증을 보이는 사람에게 ‘발바리’라는 별명을 붙여주면서 놀려댔었다.

지난해 이 발바리와 친구들이 오랜만에 골프를 함께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대방 공이 OB선상으로 날아가는데도 전혀 뛰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발바리가 벌써 기운이 다 빠졌나? 왜 안 뛰는거야!’
그러나 이 친구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음 저건 확실한 OB야, 그러니까 내가 뛸 필요도 없지,
그리고 너희들도 나보고 발바리라고 부르지 말고 좀 점잖게 불러봐!’

‘뭐라고 부를까요?’

‘요즘 내 별명은 준법감시인이야...’


글: 윤 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