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경 주말 스카이72에 다녀왔었다. 한겨울인데다 바닷바람까지 걱정
되어 몇 번씩 일기예보를 살펴보다가 나갔는데 다행히 날씨는 완전한 봄날이었다.
바람이 없고 햇살까지 좋아서 우리 일행은 축복받은 날씨를 마음껏 즐기면서
골프장을 돌았다.

“이런 날 집에 있었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어.”
“바람만 없으면 겨울 날씨가 상쾌해서 운동하기엔 더 좋지.”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요새 날씨는 추운게 아냐. 우리 어렸을 때는 맹추위였잖아.”
“봄이 오기 전에 몇 번 더 나옵시다.”

이처럼 겨울 골프 예찬론을 펼치다보니 어느새 지난 시절 겨울 골프의 추억이 주마등
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초보시절 뉴코리아를 주로 다녔는데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도 그린 위와 페어웨이 한 가운데만 눈을 치워놓고 빨간 공으로 골프를 하던
때가 있었다. 털모자에 목도리 두르고 장갑도 끼고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휘발유
손난로까지 중무장해도 코가 얼얼해지도록 추웠다.

하지만 모두 재미있게 라운드했다. 그야말로 눈구덩이 속을 임전무퇴 정신으로
도전했다. 내리막 세컨드 샷이 그린 위에 맞으면 공이 몇 번 튀어 오르면서 OB나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기도 했다.

꽁꽁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하던 아찔한 샷도 잊을 수 없다.
레이크사이드 연못이 얼어있어서 연못으로 공을 치면 공이 튀어 최단거리로 그린에
상륙하는 묘미가 있었다. 그런데 공이 연못 위에 멈추는 바람에 연못 위에서 공을
친 적이 있다. 연못의 얼음을 클럽으로 몇 번 쳐본 후 이 정도면 되었다 싶어서 연못
한가운데에서 샷을 했는데 얼음을 내려치자 금이 생기면서 여기저기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때 공포심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지금은 연못 위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살아있어야 골프도 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차범근 감독과의 라운드도 생각난다.
수년 전 한겨울 88에서 라운드를 하는데 차 감독이 그날따라 엄청난 거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차 감독을 의식한 나머지 억지로 힘을 주고 치다가 어깨와 허리 근육이
틀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어찌나 통증이 심했는지 한동안 개량한복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강의도하고
방송도 했다. 3개월 동안 골프를 하지 말라는 의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2개월 만에
필드에 나갔다. 조심하며 살살했더니 점수가 좋게 나와서 스스로 감동했다.
역시 골프는 힘 빼고 쳐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겨울골프의 묘미 중 하나는 라운드 중간에 청주를 한 잔 하는 것이다. 금강CC에서
한 겨울에 라운드하면서 마시던 청주와 맛있는 오뎅을 잊을 수가 없다. 한여름 서서울
포장마차나 안양베네스트 천막집에서 마시는 생맥주처럼 겨울철에는 역시 따끈한
청주 한 잔이 최고의 기분을 살려준다.

전에는 가끔 겨울에 골프 할 때 가방에 양주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파를
칠 때마다 한 잔씩 마시며 파안대소했다. 생전의 고우영 화백은 레이크우드에서
특정한 홀 옆에 있는 바위 밑에 양주를 숨겨놓고 그 홀에만 가면 슬그머니 한 잔씩
마셨다는 일화를 이상무 화백에게 들었다.

똑같은 골프인데도 계절에 따라 골프의 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름대로
겨울 골프도 즐기고 여름 골프도 즐겨야한다.
스카이72에서 행복한 겨울 라운드를 하고 난 후 나는 어느새 아름다운 겨울 골프의
추억에 빠지게 됐고 벌써 좋은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지난 날 골프에 미쳐
위험 상황에서 만용을 부린 것과 낭만에 취해 객기를 부린 것을 반성하고 있다.

올 겨울에는 좋은 친구들과 10년 20년 뒤에도 반성하지 않을 멋있는 겨울 라운드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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